사도행전 8:2-3 대규모 박해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 중 특별히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하니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빌립이 전하는 말씀을 계속해서 소중히 간직했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게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경건한 유대인들은 통곡하며 공회에서 금지한 장례를 위험을 무릎쓰고 치렀지만 반대로 사울은 맹수처럼 날뛰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믿는 자들을 끌어냈다. 이제 대규모 박해로 인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사람들이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두루 다니며 열심히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집중해서 듣는 사람들이 짝을 이루며 비교가 된다.
원어에서 4절은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라는 말로 3절과 연결이 된다. 사울이 이렇게 포악하게 교회를 박해했으므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두루 다니면서 말씀을 전했다고 했다. 그렇게 사나운 맹수처럼 교회를 물어 뜯고 삼키려 했다면 모두가 흩어져서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기에 이러한 박해가 예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씨앗처럼 흩어져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말도 1절에서 흩어졌다는 말과 같이 널리 골고루 흩어 뿌려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흩어 뿌린 씨앗들은 가만히 한 곳에 있지 않고 그 지역을 계속 돌아다니는 씨앗이다. 흩어졌다는 말이 널리 골고루 씨앗이 뿌려졌다는 말이라면 두루 돌아다닌다는 말도 널리 골고루 다닌다는 뜻이다. 널리 골고루 흩어 뿌려진 씨앗들은 이제 살아 움직이며 계속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했다. 것이다. 새로 흩어 뿌려진 씨앗들은 주로 이미 오래 전에 흩어 뿌려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5절은 원어에 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4절에서 한편으로는 흩어진 성도들은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5절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곳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내려갔다는 말을 쓴 것은 예루살렘과 유대지역보다 사마리아 지역이 낮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흩어 뿌려진 씨앗들 중에 빌립이라는 한 씨앗이 특별한 곳에 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NLT는 이해하기 쉽도록"for example" 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했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 중에 빌립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사마리아의의 한 도시로 내려갔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사마리아로 갔을 것이다. 그곳은 유대인들이 지나가기 조차도 꺼리던 곳이다. 그러나 빌립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곳에 갔다는 것이다. 빌립은 어쩌다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으로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그러나 빌립은 포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찾으러 간 것이다.
대다수의 사본들에는 정관사 없이 기록되어 있기에 사마리아의 어느 한 성이라는 뜻이다. NIV는 대다수의 사본들을 따라 개역이나 새번역처럼 “a city in Samaria” 로 번역했다. 그러나 오래되고 권위있는 일부 성경 사본들에는 관사가 있다. 그러면 사마리아의 바로 그 도시 라는 뜻으로 개역이나 새번역과 같은 의미이다. 영어 번역도 대부분 정관사를 넣어 “the cicy of Samaria” 라고 번역했다.
이 도시는 먼저 당시 네압볼리라고 불리웠고 지금은 나블러스인 고대의 세겜일 가능성이 있다. 또 이 도시는 사마리아라고 불리우다가 헤롯이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하여 Sebastos라고 이름을 바꾼 도시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도시이든 간에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였을 것이다. 빌립은 사마리아의 중심도시에 가서 그리스도가 메시야라고 선포한 것이다. 이미 도시 이름이 바뀐 상태에서 누가는 그 도시의 옛이름을 쓴 것은 유대인들이 적대감을 갖던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오실 메시야라고 했는데 빌립은 그것을 다시 확증해서 전한 것이다.
사마리아는 주전 10세기 이스라엘의 10지파가 북왕국을 세운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가 점령하면서 앗시리아는 이방인들을 이 지역에 이주시켜서 섞어 놓았다. 주전 6세기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돕겠다는 것을 거절해서 깊은 골이 생겼다. 주전 4세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모세오경 이외에는 모두 거부하게 되어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으로 취급했지만 이방인 취급하지는 않았다.
6절은 4절의 흩어 뿌려진 씨앗과 같은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한 것과 짝을 이루는 내용이다. 4절에서 그렇게 열심히 전하던 사람들은 6절에서는 귀를 기울여 듣던 무리들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귀를 기울였다는 말은 본래 앞에 갖고 있다는 뜻이다. 소중한 것이기에 앞에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앞에 갖고 있다는 뜻이기에 계속해서 소중히 여기며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치되어 그렇게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말씀을 전하던 사람들 그 중에도 특히 잃은 양인 사마리아를 찾으러 가서 열심히 말씀을 전하던 빌립과 모두가 마음이 일치되어 숨을 죽이고 듣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짝을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에게 집중한 것은 8:10절에 보면 본래 시몬이 받던 것이다. 시몬보다 훨씬 놀라운 능력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다. 빌립이 전하는 말을 듣고 또한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보면서 빌립의 말에 계속 집중해서 듣고 있었던 것이다. 빌립이 보여 준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준 것일 뿐이다. 핵심은 말씀이기에 계속해서 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고 한 것이다.
7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째서 그렇게 빌립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표징은 두가지로 설명이 된다. 첫째는 더러운 영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 장애인들이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지상 사역기간 동안 말씀 전하시면서 보여주신 기적들이다. 사도행전 앞부분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보여주었던 기적들이다. 이처럼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사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도 사도들과 똑 같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소중히 여겨 계속 간직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다. 기적은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한 것 뿐이다.
8절은 "그래서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 라고 말한다.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나았기 때문에 그 성 전체에 기쁨이 넘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복음이 선포되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보여졌기 때문이다. 6-7절의 중심은 빌립이 전하는 말씀에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경청하고 있었다고 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빌립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빌립의 말을 경청해서 들은 것이다.
이들이 경청해서 듣고 큰 기쁨이 넘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오랫동안 유대 사람들에게 집나간 탕자 같은 취급을 받고 멸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빌립이 이들을 찾으러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잃은 양인 당신들을 찾으러 왔다고 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두가 함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했기에 모두가 기뻐한 것이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서 보여주신 놀라운 기적이다. 모두가 빌립의 말에 경청한 것도 기적이요. 그래서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큰 기쁨이 넘치게 된 것도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