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았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3ㄴ~8)
마태오 복음 13장 1~52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이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은 말씀을 거부함으로 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 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은 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
(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즉 '파라볼레'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은 '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호'(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파종하는 자) 즉 농부
(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 씨 뿌리는 네가지 밭은
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 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
인데, 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 여기서 '길'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 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은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를 상징한다
(마태13,19).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 밖으로
싹이 돋지만, 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
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마태13,21).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는 '가시'나
'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마태13,22).
그래서 그 마음에서 복음의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의 원형 '칼로스'
(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호'(ho; some)는 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
(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 그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質)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