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개역개정판)
평생 경찰서고, 검찰청이고, 법원이고, 심지어 소방서나 변호사 사무실조차도 드나들지 않는다면
참 복된 인생일 것이다.
검찰청이 중수청과 공소청으로 나뉘든지
경찰청이 보안청 등으로 태그 갈이를 해서 보안관 아저씨, 아줌마로 바뀌든지
관계자들 외에 따로 뭐 깊게 신경 쓸 일은 사실 별로 없다.
말이 되건 안되건 간에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면 된다.
더 긴급하게,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바는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수능 제도의 변화와 같이)
우리네 삶을 괴롭게 하지 않으면 된다.
뭐, 불편해 지는게 눈에 보이기는 하다.
부조리한 측면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공의와 정의, 정직과 모든 선한 길을 내가 먼저 걸으면 된다. (잠 2:9)
남들에게, 나라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 길을 걷는 것이 우선이다.
황무지 같이 버림 받은 이 땅에
주의 긍휼이 임하길
그래서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와
쁄라(결혼한 여인이나 부인, 또는 그런 존재)로 불러주시는 은혜가 임하길..
그런 날이 오길
기도하면 된다.
다만...
남들에게 칼끝을 향하는 것은 좋지도, 옳지도 않다.
교계 내 지도자 목사님들의 성비위와 금전 문제를 지적해온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을 주창해온) 어느 기독 단체의 대표가
본인의 불륜 문제로 대표직에서 사임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정신이 번쩍 든다.
공의와 정의와 정직, 모든 선한 길을
남에게 강요하기 전에
나에게 강요해야겠다.
아니
강요해도 소용 없으므로
헵시바와 쁄라로 불러주시는
그 은혜를 사모해야겠다.
첫댓글 https://youtu.be/AaOnpWc7kMY?si=SXXlk2CRAOX79Z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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