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보며
시인 정해룡
부활절 다음날인 2023.4.10.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2번째 시국미사를 접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이 관여해서는 안 될 분야에까지 주제넘게 참가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일이 떠올랐다. 2004년 필자가 통영문인협회 회장이었을 때 청마가 생전에 수천 통의 편지를 붙인 통영시내 중앙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코자 했다. 청마가 친일문학가라며 ‘전교조경남지부’, ‘천주교정의구현마산교구사제단’ 등이 청마에게 없는 친일 혐의를 덧씌우는 일에 앞장섰던 것이다. 심지어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청마를 친일문학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온갖 구실을 만들었으나 필자가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표 시 그들의 의도를 결국 무산시켰다.
이처럼 문학의 분야를 마치 환경이나 노동문제처럼 흑백으로 편 가르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제 인식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아프다. 소위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씌우자는 것인데 이게 성직자로서 할 일이던가. 문학의 분야는 문학인들이 더 잘 안다. 대다수 문학의 원로들은 ‘청마가 친일이라면 우리나라 문인들 중 친일 아닌 문인이 없다.’고 한 말을 ‘정의구현사제단’은 깊이 새겨들었어야 했다.
성경에도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유명한 구절을 상기해보면 우리 사회가 과거처럼 군사독재시절이었다면 또 모를까 민주화가 된 오늘 이 시대에서는 종교인의 목소리는 가급적 종교 본연에 충실하는 것이 좋다. 종교가 사회 갈등을 치유하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고 증폭시켜 편을 가르고 적대적이라면 소금이 짠맛을 잃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