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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철강’ 연맹 성격 GASSA의 파급력에 업계 예의주시
최종 채택될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에 초미의 관심
‘가보지 않은 길’... GASSA 완성까지 지난한 과제 산적
지난 6월 6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서한을 보내 미국 내 철강·알루미늄 생산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GHG) 배출 수준을 평가 후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USTR은 해당 조사 결과를 미국과 EU가 진행 중인 ‘지속가능한 철강·알루미늄을 위한 국제 합의’(GASSA) 협상에 참고자료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USTR의 조사 요청을 두고 현재 비공개로 협상이 진행 중인 GASSA 향배에 업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GASSA의 잠재적 파괴력에 업계 예의주시
2021년 10월 미국과 EU는 전격적으로 ‘철강·알루미늄 합의’를 발표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당시 국가안보를 이유로 EU산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했던 232조 관세를 중단하고 EU도 맞대응 성격의 대미 보복관세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EU를 설득해 ‘지속가능한 철강·알루미늄을 위한 국제 합의’(GASSA) 추진에 동의를 얻어 냈다. 양측은 GASSA 협상 개시 후 2년이 되는 2023년 10월 말까지 합의 성과를 도출하되, 만일 실패하게 되면 232조 관세를 재가동하는 단서를 붙였다.
이는 글로벌 양대 수입시장인 미국과 EU가 주도권을 쥐고 글로벌 철강산업 재편을 위해 본격적인 영향력 행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기준 EU와 미국이 연간 수입하는 철강은 총 7780만 메트릭 톤으로 전 세계 수입량의 약 28%를 차지한다. 중국도 연간 2780만 톤을 수입해 글로벌 3위 수입국이나 순수입 기준(수입-수출)에서는 순위 밖에 있다. 따라서 GASSA를 체결함으로써 미국과 EU는 중국에서 비롯된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과 고탄소 집약 문제 해결에 공동 대응하고 궁극적으로 역내 산업, 노동자, 소비자 권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미국은 일차적으로 EU와 합의를 마무리 짓고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Like-minded) 우방국의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국제 규범의 형태로 ‘클린 철강’ 클럽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철강 수입 상위 10개 국가(2021년)>
[자료: World Steel in Figures 2022]
비교적 자국산 철강의 탄소 집약도가 낮은 미국과 EU가 ‘클린 철강’을 기치로 대중국 철강 블록화를 이뤄낸다면 글로벌 업계에 미칠 파급력이 막대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2019년 기준 중국 내 철강 생산으로 연간 배출된 탄소량은 약 19억7000만 메트릭톤으로, 이는 전 세계 철강 생산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의 과반(54.1%)에 달한다. 한편, 미국 내 철강 생산은 주로 고철을 재활용하는 전기로(EAF) 방식 비중이 높아 용광로에서 쇳물을 녹여 철을 만드는 고로(BF/BOF) 방식을 위주로 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탄소 집약도를 보인다.
‘World Steel in Figures 2022년’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미국 철강 생산에서 전기로 방식이 고로에 비해 7:3으로 우세하다. 중국의 전기로 생산 비중은 10.6%에 불과하고 EU 43.9%, 우리나라 31.8%, 일본 25.3% 등으로 집계됐다. 참고로 전기로 방식으로 열연강판 1톤을 생산할 때 0.48톤의 탄소가 발생하지만 고로 방식에서는 이보다 4배 이상 많은 1.94톤의 탄소가 발생한다.
<국별 철강 생산 탄소 집약도 비교(2019년)>
[자료: Global Efficiency Intelligence(2022)]
<국별 철강 생산방식 비율(2021년)>
[자료: World Steel in Figures 2022]
미-EU GASSA 주요 내용 및 협상 경과
미국과 EU는 GASSA 참여국으로 다음 사항을 이행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 비시장적 공급과잉을 유발하는 비참여국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며, 이를 위해 무역 방어(Trade Defense) 조치를 포함한 적절한 수단을 모색한다. ⑵ 저탄소 집약도 기준에 못 미치는 비참여국의 시장 접근을 제한한다. ⑶ GASSA의 목적과 취지를 지지하며, 탄소 집약도 개선을 위한 국내 정책 지원을 보장한다. ⑷ 고탄소 집약도 및 공급과잉을 유발하는 비시장적 관행을 자제한다. ⑸ 탈탄소를 위한 정부 투자를 위해 가입국 간 협의를 활성화한다. ⑹ 비시장적 행위자로부터 유입되는 투자(Inward Investment)를 공동 감독한다. ⑺ 미국-EU 작업반(Working Group)을 구성해 협상 촉진 및 양자 협력을 증진하고 철강·알루미늄 탄소 집약도 산정 방법론 협의 및 데이터 공유에 힘쓴다.
2022년 2월 미국과 EU 협상단은 첫 번째 GASSA 협상을 개시하고 철강 생산의 탄소 배출 저감 방안과 양측 간 환경 규제 운용을 위한 정보를 공유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GASSA 협상 추진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의회에 비공개 보고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2월 7일 자 보도에서 미국이 EU 측에 GASSA 제안서 초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USTR이 작성한 컨셉페이퍼 형식의 제안서 초안(비공개)에는 기후 대책과 무역 정책을 연계하는 바이든 정부 무역 정책이 충실히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재까지 구체적인 규제 메커니즘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존 철강 232조 관세(25%)를 대체하는 ‘차등적 관세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 등은 전망했다. 즉, 국가별 철강 공급과잉 및 탄소 집약도 수준에 따라 0~40%의 관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 비중 있게 거론된다.
GASSA 규제 메커니즘과 시나리오별 영향 분석
현재 미국-EU 당국이 상세한 협상 내용 공개를 유보한 가운데 중국산 등 고탄소 철강 수입을 규제하는 장치(메커니즘)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나왔다. 미국의 기후 위기 대처를 촉구하는 초당파 비영리 단체 '기후리더십위원회(CLC)'는 작년 12월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GASSA의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의 평균 탄소 집약도 또는 집약도 상위 10%를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관세율은 탄소 집약도에 따라 0%, 15%, 25%, 40%가 차등 적용된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배출되는 탄소에 비례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철강 생산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에 따라 톤당 80~85달러를 부과하게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시나리오별 시뮬레이션 결과 미국과 EU 시장에서 △ 철강 수입 감소 △ 산업 부가가치 상승 △ 탄소 집약도 감소 등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별로 제재 수위를 두 배 높일 경우에는 비시장경제권 국가의 철강을 역내 시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GASSA 시나리오 및 영향 분석>
[자료: 미국 기후 리더십위원회(CLC)]
USTR의 철강·알루미늄 온실가스 배출 조사 요청
미국과 EU가 GASSA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지난 6월 6일 USTR은 국내 철강·알루미늄 생산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현황을 조사하도록 ITC에 의뢰했다. 해당 조사를 통해 ⒧ 국내 기업별(외국계 기업 포함) 온실가스 배출량, ⑵ 제품별 최고·평균 배출량(2022년 기준) 등을 규명하도록 했다. 또한, △ (Scope 1) 철강·알루미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 △ (Scope 2) 구매 전력 및 에너지 등에 내포된 배출 △ (Scope 3) 전체 공급망에 걸친 간접 배출까지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한편, USTR은 해당 보고서 기한을 GASSA 타결 시한(올해 10월)보다 한참 뒤인 2025년 1월 28일로 요구하여 이와 관련한 언론의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현지 언론이 취재한 한 업계 관계자는 USTR이 협상 시한 10월까지 GASSA 타결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번 조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최종 ITC 조사 결과가 나올 시점까지 GASSA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미국 철강 업계를 대표하는 전미철강협회(AISI: American Iron and Steel Institute) 케빈 뎀프시(Kevin Dempsey) 회장은 이러한 해석에 이견을 밝혔다. 뎀프시 회장은 “USTR이 요구한 조사 결과는 GASSA 협상에 필요하다기보다는 협상 타결 후 ‘탄소 집약도별 차등 관세 제도’ 집행을 위한 것”이라며, GASSA 협상 차질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GASSA 규제 장치를 두고 미국과 EU의 이견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탄소 집약도에 따른 차등 관세 제도를 주장하고 있으나, EU 측은 배출거래제도(Emissions Trading System)에 기반한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CBAM)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보지 않은 길’... GASSA 완성까지 지난한 과제 산적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섹터 기반한 탄소국경조정제도인 GASSA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우선 미국 철강업계와 노동단체 등은 GASSA가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에 환영을 표했다. 미국 내 대표 철강 노조인 US steelworkers는 성명을 통해 “GASSA는 중국의 비시장적 관행에 대처하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철강 업계의 고탄소 집약도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싱크탱크 Bipartisan Policy Center는 GASSA를 “국제 무역과 기후 문제 해법을 연계하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공공정책 연구소 Third Way는 “미국 노동자, 산업, 기후 대응 노력의 괄목할 만한 승리”라며, 미국식 기준의 국제화 노력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GASSA의 국내외 법․규정 충돌 소지에 따라 국제 분쟁 심화 우려도 제기된다. 주EU 미상공회의소(AmCham EU)는 공급과잉, 탄소 배출 규제 등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국제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는 WTO 등 국제 규범의 초석 위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기후변화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주장하며 GASSA 제도의 근거로 무역확장법 232조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월 WTO는 미국의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 관련 232조 철강 관세가 국제 무역규범(GATT Article I, II, IX, XXI)을 위반했다고 판정한 바 있으나 미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GATT 21조 ‘국가안보 예외’(National Security Exception) 적용은 주권 사항이라고 주장하며 WTO에 상소할 뜻을 비쳤다.
당장 중국 정부는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GASSA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외교부는 “WTO 규정을 위배하는 일방적 관세 조치에 반대를 표하며, 중국 기업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일부 중국 언론은 GASSA가 중국 업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랜 기간 걸친 미국의 고강도 철강 수입 규제(반덤핑, 232조 관세 등)로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 축소는 이미 상당 수준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2014년 340만 톤에 달했던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2021년 85만 톤으로 급감했고 알루미늄 산화물 수출도 같은 기간 5311톤에서 1730톤으로 줄었다.
현지 통상전문가들이 밝힌 GASSA 성공의 선결 조건을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보편타당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되 자국 중심 보호무역주의는 배척한다. 둘째, 국제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과학적이고 공정한 탄소 배출 측정 방법론을 창안한다. 셋째, 미국, EU의 폭넓고 호혜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 가입국 참여에 인센티브를 준다. 마지막으로, 국가별 친환경 보조금 경쟁을 둘러싼 국제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등 국제 기업 및 단체 등은 현재 진행되는 미국-EU 간 협상 과정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정부나 업계 대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료: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스, World Steel Association, Climate Leadership Council,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및 KOTRA 워싱턴 무역관 보유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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