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기억하오? 미스터김은 정보과 채증요원이었소(교통 체증말고 증거수집 채증).
이때가 아마 4개월째 채증을 하던 때 같소. 4달 동안 머리를 안깎으니까 상당한
장발이 되더이다. 쫄병이 머리를 안깎으니 고참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엄청난 갈굼을 주었소,
그렇지만 어쩌겠소. 본햏 사진기들고 시위장소에서 시위대를 찍어야하니 스포츠머리로
다닐수는 없지 않소. 정보과에 발령나니까 본햏도 모르게 반 직원(직업경찰)이되더이다.
본햏 근무열외, 점호열외였소. 일과가 끝나면 본햏 맘대로 복무했소. 집에는 가지 않았소 토큰이 없어서...
시위, 집회가 열리면 본햏 사진기 두 대와 300미리 렌즈, 스트로브, 필름 10롤을 가방에 넣어
시위장소로 향하오. 작업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시위장소로 향한다는 것. 맨처음에는 상당히 아햏햏했소.
방패를 들고 첫 시위대와 부딪힐때보다 더 떨리더이다. 시위대에 붙잡히면 반 죽음된다는 소리를 너무 들어서..
어쨌든 본햏 경찰같지 않게 생겨 시위대들이 방기더이다. 20대 초반의 나이니까 기자라고 뻥칠수 없고
그렇다고 경찰이라고 할수도 없지 않소..
본햏 학생이라고 말하기 전에 시위대들이 알아서 학생이냐고 하더니 알아서 포즈도 취하면서 잘찍어달라고
하더이다. 그러나 학생시위는 다르오. 그들은 어느 정도 정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해야하오. 한번은 대학생들이 불법점거한 시위장소에서 스트로브를 터뜨렸소.
그랬더니 사진에 민감한 학생들이 <저 새끼-짭새다 잡아라>라고 하더이다.
그런데 본햏이 긴장도 하기전에 시위주최자가 <학생입니다! 여러분 수고하고 있는 저 동지를 위해 박수>하더이다.
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천명이 넘는 인파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소.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했소.
참 아햏햏하더이다. 나중에 미7이 미쳤냐고 하더이다. 사진을 왜 찍었냐고... 더 아햏햏했소.
찍으라고 할땐 언제고....
의경신분으로 사진기 가방 들쳐메고 이런저런 모든 시위장소에 다 다녀봤소.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그들에게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그늘을 필름에 고이 담았소.
본햏 신분이 의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었을 것이오.
본햏 기자의 관심이 있어서 사진기자들과도 어울리곤 했었소.
특히 시위장소(쇠파이프,화염병 나오는데)에만 꼭 만나는 외국 통신사 기자하고도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는구려~
여러가지 시위가 머릿속에 담겨있지만 오늘은 본햏의 젊음이 끝난 어둠의 그날을 적을까하오.
94년 2월 1일이었소.
서울은 몇달째 우루과이라운드로 도심이 시위대의 물결로 가득차 있었소.
본햏 소속중대는 이리저리 진압하러 다니는데 본햏 혼자 남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참으로 아햏햏하더이다.
동기와 고참, 쫄병들은 며칠동안 계속된 철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본햏 혼자 사진찍으려니 참으로
미안하더이다. 한번은 본햏도 방패를 들고 싶어서 새벽출동때 몰래 짐차에 올랐던 적이 있구려...
그러나 얼마 못가 정보과에서 본햏 데려오라고 독촉하더이다~
2월 1일 그날은 무지 추웠소.
서울에 있는 모든 진압중대가 우루과이 라운드 상황대비로 서울 중요 거점에 배치돼 있던 때였소.
이날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탑골공원까지 이어지는 집회가 있더이다. 본햏 평소대로 쫄래쫄래
을지로2가와 종로2가로 이어지는 청계2가 쁘렝땅백화점-한화빌딩 사이에 있었소.
오늘따라 날씨가 엄청춥더이다. 평소같으면 깔깔이를 입었을텐데 어쩌오.
그러다간 시위대에게 붙잡혀 가는 지름길이니...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시위대가 탑골공원에 도착하더이다. 의경중대가 그들을 차단하고 관할 직원이
신고한 집회신고상 행진장소가 여기까지이므로 시위를 끝내달라고 사정하더이다. 그러나 농민, 학생이
참여한 시위성격상 끝내달라고 하면 오히려 시위는 더 격해지는 법. 집회를 끝내기 전에 대부분의 시위자들
은 의경들과 몸싸움 한번하고 욕한번하고 끝내야 속이 풀리는 것 같더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위주최자들이 하는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그들끼리 그러더이다. 몸싸움한번
안하면 신문이나 TV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몸싸움 이상은 한번해야 언론과 방송에 나올수 있다는 말...)
역시나 몸싸움을 벌이고 점점 시위는 격해지더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각목과 쇠파이프가 등장했고
방독면을 착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루탄을 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백병전을 펼치더이다.
의경들은 이미 농민들이 던진 똥과 오물, 달걀 등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소.
그런데 갑자기 돌발상황이 벌어졌소.. 시위대 선두가 탑골공원에서 막히니까 뒤에 있던 시위대들이 도중에
청계천으로 빠져나와 청계2가쪽으로 다가오더이다. 엄청난 인파였소. 그들은 이미 무장된 상태였소.
탑골공원 앞에 있는 중대는 포위상황을 면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고 이 주변에서 타격대로 대기하던 의경4개
중대와 전경1개중대가 부리나케 광교에 투입됐소. 시위대의 물결은 광교에서 시작되는 청계고가까지 다가오
고 있었고 긴급히 출동한 대원들이 사팔지에 도착해 하차할 때쯤에는 이미 일부 시위대가 그들을 지나 광교
로 돌진하더이다. 오늘 시위대들은 우루과이 라운드 철회를 목적으로 청와대로 가 03을 만나는게 목표였소.
그래서 이미 종로, 청계천, 을지로에서 시청,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쓰레기덤프차의 대형 컨테이너박
스가 바리케이트 역할을 하고 있었소.
타격대로 이곳에 긴급투입된 대원들은 이미 대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시위대의 갇히게 됐소.
밀집대형을 이루기도 전에 각중대와 각중대가 연결이 안됐고 특히 시위대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금방
포위되더이다. 순식간이었소. 상황이 다급하니까 아무래도 곧장 깨스발사를 할려고 했던 것 같은데
대원들이 잠시 방독면을 착용하는 과정에서 각 중대에 무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그 잠시 틈에 5개 중대가 시위대에 포위되는 상황이 벌어졌소. 대원들은 시위대가 휘두르는
각목과 생나무, 쇠파이프에 무참히 짓밟히더이다. 방독면을 쓰다 말았는데도 상황이 급박하니까 목표물을
잃은 sy-44가 불을 뿜더이다. 그러나 이미 낮부터 집회에 참가한 농민들은 이미 반쯤 술에 취해 있었고
대학생들도 오늘은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소. 겁에 질린 대원들은 투척용최루탄과
분말최루탄을 계속 던졌지만 마스크와 랩으로 얼굴을 가린 시위대는 끄떡도 안하더이다.
3-4개 중대가 전열을 잃고 뒤죽박죽 동그랗게 한덩어리가 되었소.
서로 엉켜 넘어지는 대원들. 그 위에 또 넘어지는 대원들. 이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 그리고 쓰러진 의경들을 무리에서 끌어내는 시위대 이곳에서 분리된 다른 중대는
이미 풍비박산이 되어 모든 대원이 뿔뿔이 흩어졌고 시위대에게 끌려간 대원들은 수십 명의
시위대가 발로 밟고 쇠파이프로 가격하더이다. 이성을 되찾은 일부 시위대가 동료들을 말리
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더이다. 하이바가 벗겨진 또 다른 의경, 전경은
벌써 머리가 깨져 있었고 의식을 잃더이다. 어떤 시위대는 대원의 진압복과 깔깔이를 벗기고
작업복마저도 강제로 벗기더이다. 이때 내 눈에 펼쳐진 집단의 광기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소. 의식을 잃고 길바닥에 누워 있는 의경을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 항복의사를
밝히는 대원들에게도 쇠파이프를 날리는 사람. 계속해서 대원들이 피를 토하고 맞고 쓰러지니까
주변에 있던 가게주인들이 대원들을 가게 안으로 숨겨주려고 하더이다. 그런데 시위대는 이마저도
끌어내어 무참하게 짓밟더이다.
대원들이 타고 온 짐차에는 이미 시위대가 불을 놓았고 한 겨울이라서 그런지 불길은 훨훨
무섭게 일면서 잘 타더이다. 주변에 있던 소형 쓰레기차도 시위대의 방화에 그대로 노출됐소.
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출동했는데도 시위대들은 소방차에도 광기를 부리더이다. 그러나 소방차에는
불을 붙이지는 않았소. 몇대의 소방차가 유리창이 깨지고 시위대에게 공격을 당했소. 소방관이
진화를 하는 가운데에도 시위대의 집단 폭력은 계속됐소.
포위를 당했던 대원들은 종로쪽 골목으로 비무장상태로 도망을 쳤소. 그런데 이미 그골목에는
무장해제를 당한 중대가 책상다리 의경차려 자세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더이다. 그들의 표정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정도로 어두웠소. 20대 젊은이의 열정과 의욕은 어디서도 찾아볼수없었소.
장비를 제대로 갖춘 대원은 하나도 없더이다. 머리가 깨진 대원. 진압복과 작업복을 빼앗긴 대원
내복만 입고 있는 대원 등이 내 눈에 들어오더이다. 그곳에서는 지휘관인 직원은 찾을 수 없었소.
아까 포위될때도 어떤 지휘관은 중대원들을 버리고 부리나케 도망갔었소. 아직도 비겁한 그사람의
얼굴이 기억이 날 정도요.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거의 5개 중대가 시위대들에게 무장해제 당했소.
시위대들은 대원들의 진압장비를 들고 승리에 도취해있더이다. 1호차를 뒤집어 그 위에 올라가
깃발을 휘날리는 사람. sy-44를 마치 전리품인양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여대생. 경찰 무전기를
빼앗은 사람은 무전기에 대고 엄청난 욕을 하더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시위대들은 더 이상
시청 광화문 쪽으로 진출하지는 못했소. 왜냐하면 이곳에 타격대로 출동한 5개 중대가
무장해체 당하는 동안 다른 곳을 막고 있던 연합중대가 긴급 투입됐고 시위대를 차단했기 때문이오.
이곳에 타격대로 왔던 의경,전경중대가 시위대들에게 깨지는 동안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번 것이었소.
본햏은 아직도 5개 중대가 무장해제 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던 뒷선의 연합중대 지휘관을
혐오하고 있소. 이날 시위를 총괄한 서울 경비청 담당자도 물론이오. 시위대들에게 다섯 개
중대가 깨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를 지켜만 보는 것이오. 본햏 사진을 찍느라 이리저리 뛰어
다녔는데... 뒷선에 서 있던 대원들은 머리를 숙이고 흐느끼더이다. 어떤 대원은 시위대를
향해 뛰어가려다 직원에게 제지를 받더이다.
어쨌든 몇시간동안 본햏 앞에서 펼쳐진 상황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소.
그러나 시위대는 이곳에서 차단돼 더 이상의 진출은 어려웠소. 뒷선의 중대는 시위대 해산을
위해 6호차에서 다연발 최루탄을 발사했소. 그러나 시위대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더이다.
무장해제 당한 대원들은 아직도 골목에서 차려 자세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소. 땅꺼미가 어둡게 깔리자 경찰 지휘부에서는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무장해제 당했던
곳으로 다른 진압중대를 긴급 투입하더이다. 이때 시위대들은 기습을 당해 청계2가까지 물러났소
그러나 그들의 시위는 계속됐소. 본햏 이 틈바구니속에서 진압복과 장비를 모두 빼앗기고
작업복만 입고 있던 전경대원을 발견했소. 상당한 충격을 받은듯한 그는 시위대속에서
멍한히 서 있기만 하더이다. 그의 얼굴을 보니 신병이 틀림없더이다. 패닉에 빠져있는 그에게
본햏 신분이 의경이라고 말했소. 의심의 눈빛이었지만 악의가 없는 것을 눈치챈 그는 받아들였소.
시위대와 진압중대간의 공방전은 계속됐고 sy-44와 6호차에서는 최루탄이 발사됐소.
전경신병과 시위대를 뚫고 진압중대 뒤로 왓더니 예비군마크가 선명한 야상에 간진을 입고
있는 전경이 <야 너 어디 있었어>하더이다. 보니까... 아까 무장해제 당했던 중대가운데
일부가 다시 진압장비를 챙겨서 이곳에 다시 투입된 것이었소.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됐소. 본햏 이때 필름을 수십 롤 썼던 기억이 나는구려. 그러나
이곳은 대원들이 죽을 힘을 다해 막았지만... 을지로와 퇴계로가 뚫렸는지 시위대들은
시청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알게 됐소. 경찰은 시청-광교-종로1가를 선으로 이어 마지노선을
구축한 것이었고 이곳에 모든 경력을 집중배치해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지못하도록 차단했소.
시위는 밤12시까지가 넘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소. 본햏 여러곳을 헤맸더니.. 온 도시가
폭격을 맞은 듯 폐허같더이다. 화염병에 그을린 도로. 그위에 최루탄 분말이 눈처럼 길바닥에
깔려있더이다. 이 시간에도 청와대로 향할 수 잇는 목길에서는 계속해서 공방전이 일어났소.
본햏 몇 시간째 셔텨를 둘러대느라 정보과에 보고하는 것도 잊었소. 그러고 보니 방독면도
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느라 온몸에서 최루가스가 나더이다. 본햏.. 사진을 찍으면서 최루탄
때문에 간간히 쭈그리고 앉아 한없이 눈물과 콧물을 흘렸소.
본햏 이날을 되돌아보니 엄청난 쇼크를 받은 거 같더이다. 경찰서로 돌아가는 길가에서
큰소리를 막질렀던 기억이 나는구려. 무슨 내용이엇는지는 모르갰소. 무언가에 억눌려 있던
것을 외친것 같은데.. 헛소리 같구려. 이날 기분은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소.
나중에 본햏의 상태를 보니 양발 위에 최루탄이 떨어져 엄지발가락 두개는 검정색으로 변해 있고
시위대에게 왼쪽 팔을 또 맞아 퉁퉁 부어 있더이다. 아직도 본햏 머릿속에는 이날의 시위로
머리가 깨져 의식을 잃은 대원들이 떠오르오. 특히 시위대에게 질질 끌려가던 의식잃은 대원이 잊혀지지가
않는구려. 그 추운 날 내복만 입은 채 얻어맞던 대원들....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런 고통과 악몽을 간직해야했던 거요.
본햏 이날 이후로 며칠동안 심하게 앓아 누웠소. 그리고 몇주후 채증을 때려치웠소. 다시
방패를 잡고 짐차에 오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오. 또한 이때부터 사진기를 들지 않았던 것
같구려 본햏 한때 사진기자를 꿈꿨지만 이젠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싫더이다.
복무할 땐 몰랐는데... 제대한 뒤 이날의 상황이 자꾸 꿈으로 리플레이 됏소. 이날의 꿈을
꾸다 깨보면 온몸이 샤워한 것처럼 푹 젖어있더이다. 그러면 그날은 더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멍한히 천장만 바라보아야했소. 이런 날이 얼마전까지 되풀이됐소.
본햏 아직도 그날을 회상하면... 의경, 전경대원들에게 미안할 뿐이오. 지금도 반성과
후회를 하고 있소. 그날 사진기를 버리고 그들을 돕지 못한 내 자신의 행동이 협오스럽소.
그대들이 건강히 잘 살고 있길 바라오. 대원들이여 미안하오. 그때 난 정말로 용기가 없었소.
첫댓글 2월1일이면 내 생일인데...경사스런 날에 저런 사태가 일어났다니...-_-
ㅋㅋ 난 미7 항해사 였는데 암튼 만감이 교차하네요~! 아! 그리고 음어조심 합시다~ 일팔~ ㅎㅎ
드르륵
변하자님....삼오전만~ㅋㅋ
ㅡㅡㅋ 넘길다
삼오전만???? 사오종만 아닌가??? 오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