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작년 3급이상 150명 물갈이… 이달 또 100명 직무배제 추진
[국정원 인사파동]
국정원內 충돌 ‘내전 수준’ 격화… 對北-美-日 정보 핵심보직 공백
金원장 측근 ‘인사전횡’ 불만 고조, 金측 “反개혁 세력의 공작” 반발
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현안 질의를 기다리고 있는 김규현 국가정보원장. 김 원장은 이달 초 국정원 1급 인사를 단행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재가 5일 만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철회했다. 이에 따라 여권 내에서는 "김 원장이 거취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진공동취재단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3급 이상 간부 150여 명을 직무 배제하거나 한직으로 배치한 데 이어 이달 인사에서 3급 이상 100여 명을 추가로 직무 배제하는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물갈이에 앞서 이달 국정원 1급 간부 7명에 대한 인사에 김 원장의 측근 A 씨가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 뒤 인사를 뒤집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인사 파동 책임 소재를 둘러싼 국정원 내부 충돌은 내전 수준으로 격화되고 있다. 인사가 철회된 보직에는 미국과 일본의 정보거점장인 정무2공사 두 자리, 대북공작 업무를 담당하는 국장이 포함됐다. 정보전쟁의 최전선인 미국과 일본, 북한의 핵심 보직 공백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며 혼란에 빠진 국정원에 대해 “이래선 안 된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 “담당 차장 패싱해 A 씨에게 인사보고” 주장도
이번 인사 파동의 핵심에는 김 원장의 측근 A 씨가 있다. 국정원 국내정치과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때 한직으로 밀려났던 A 씨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김 원장이 추진한 ‘국정원 정상화’ 드라이브의 중심에 있었다. 외교관 출신인 김 원장이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A 씨에게 인사와 조직개편의 큰 그림을 맡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 인적 청산 차원에서 1급 간부 20여 명을 퇴직시킨 김 원장은 이달 초 국정원 1급 간부 보직 인사를 추진했다. 윤 대통령은 7일 인사를 재가한 뒤 A 씨 인사 전횡 의혹을 여러 경로로 접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를 들은 김 원장이 대통령실을 찾아가 인사 배경을 설명했지만 윤 대통령은 A 씨 관련 의혹이 사실관계에 부합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5일 만인 12일 1급 7명에 대한 인사를 철회했다.
A 씨는 지난해 3급 이상 간부 150여 명에 이어 이달 100여 명을 추가로 직무 배제하려는 물갈이 인사 과정 등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인사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한 간부들의 불만이 높아졌다고 한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올해 3, 4월경 해외 정보파트장 인사 때도 인사 담당자가 담당 차장과 국장을 패싱하고 A 씨에게만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A 씨가 지금은 원장의 지근거리에 있지 않은 보직인데도 원장과 장시간 독대하고 원장이 A 씨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정보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이 때문에 A 씨를 통한 김 원장의 개혁이 국정원 직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A 씨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는 대통령실과 여권, 정보당국 인사들은 “김 원장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일-北 핵심 보직 공백 사태에도 내부싸움”
반면 김 원장과 A 씨 측 인사들은 “인사에 불만을 가진 반개혁 세력들의 반격이자 김 원장 흔들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협조했던 간부들을 물갈이하고 국정원을 바로 세우려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공작”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 파동을 “김 원장 반대 세력의 ‘인사 쿠데타’”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번 인사 파동을 ‘반개혁 세력의 반격’으로 보는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정원 일부 고위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미는 인물들을 민원했다가 인사에서 배제되자 원장과 A 씨의 인사 전횡 의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북한 등 정보 최전선 핵심 보직에 사실상 공백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내부 싸움을 벌이는 국정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국정원은 경쟁자끼리 ‘내부 총질’을 하는 조직은 아니다”면서도 “인사에 탈이 나는 건 전혀 해당 분야 일을 안 해본 사람을 꽂아넣을 때”라고 지적했다.
신진우 기자, 고도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