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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和會 (종교간 화합을 위한 모임) 會報
푸른 들소리[제 16권 9호](통권 269호)(2014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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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와 나의 이야기
- 특히 아낙시만드로스와 스피노자 -
장 기 홍
서양철학의 발상지인 밀레토스는 고대(古代) 이오니아지방의 주요도시였지만 지금은 부근의 명소들(예, 에페소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폐허이기 때문에 필자는 터키의 서해안 일대를 두루 관광을 했어도 밀레토스를 비켜갔음을 후에야 깨달았다. BC 7세기말에 밀레토스에서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3인이 처음으로 학문(‘과학’)을 시작하여 소위 밀레토스학파를 이루었다. 그 당시 비로소 사람들 마음에 학문을 할 만큼 어떤 여유가 생겼었다.
밀레토스학파 사람들은 아르케(arche, 原初의 것)를 추구했다. 궁극적인 것이 무어냐 하는 문제였다. 탈레스는 그것이 물이라 하였고,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두 사람의 중간이었던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는 물이나 공기는 이미 분화(分化)된 기성품이어서 아르케의 자격이 없다고 보고 아르케는 무한한 그 무엇이어야 하리라 생각하여 무한자(無限者, apeiron)를 주장했다. 학파를 창시했던 탈레스도 심오했지만,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도 대단히 심오했다. 후자는 너무나 심오하여 사람들은 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필자는 오랜 탐구 끝에 아낙시만드로스의 펜이 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르케인 無限者에서 분화(分化)되어 부분품(部分品)들 곧 만물이 나왔다고 보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의 저서는 다 분실되었다. 어쩌다 남은 단편적 문장들을 가지고 후세사람들이 그들의 사상을 복원했다. 짜깁기해서 읽어낸 사람들의 깊은 통찰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들 중 아낙시만드로스는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서양철학의 대중적 입문서들은 흔히 그를 빠뜨리고 지나간다.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100인의 철학자 사전’(2003)에서도 빠져 있고, ‘철학의 책’(2011)에서도 빠졌다. 사상의 심오함 때문에 오히려 소외당하다니!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상
기원전 7세기의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르케를 무한(아페이론)이라 했던 것과 17세기의 스피노자가 실체(實體)를 ‘자연’이라 했던 것은 말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 자신 그런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사람들은 나의 인식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리라. 그러나 나는 스피노자의 사상적 시조가 아낙시만드로스였다고 본다. 지나간 나의 철학적 추구의 언덕에 올라 나는 아낙시만드로스와 스피노자를 아울러 나의 철학적 선조로 생각하게 되었다. 스피노자는 중(中)시조 쯤이라고나 할까?
탈레스는 당시 상당히 발달했던 이집트의 천문학을 현지에서 배우고 돌아왔던 사람이다. 그를 계승한 아낙시만드로스도 천문 지식이 상당했던 것 같다. 그는 지구를 원통형이라 하면서 지구는 우주 안에서 다른 천체들과 함께 떠다닌다고 보았다. 그는 최초로 세계지도를 만들었으니, 지리적 다양성을 종합하여 질서지우는 통일작업을 했던 셈이다. 그는 자기가 경험한 모든 다양한 부분들이 자기가 apeiron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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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부른 無限한 것에서 유래했음을 갈파했다. 나는 아페이론을 두고 생각을 거듭한 결과 무한한 것이란 대우주 (혹은 대우주적 요소?) 밖에는 없다는 착상에 이르렀다. 스피노자가 자연 곧 우주가 신(神)이라 한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무한한 것이 궁극자라고 한 것과 뜻이 같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사람이나 만물이 제 몫보다 더를 넘보는 경향을 문제 삼았다. 그는 그런 넘보기를
‘불의(不義)’라 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영생을 꿈꾸면 아낙시만드로스 보기에는 그것은 불의이다. 지금 상태로 있다가 거기(지금 상태) 숨었던 반대 상태로 순조롭게 복구되면 그것이 정의(正義)인데, 그 과정은 시간(時間)의 소관(所管)이니만큼, 시간이 심판관이다. 여기에서 그는 ‘대립’이라는 말을 써서 “대립적(對立的) 요소들은 시간의 질서라는 심판관에 의해 불의에 대한 심판과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이는 질서(秩序) 자체인 우주(cosmos)의 법칙이라고 아낙시만드로스는 보았던 것이다. 죽음이란 바로 그런 속죄(贖罪)의 예이다. 생성되는 것마다 소멸되고 멸망함으로써 속죄된다. 우주의 어떤 부분적 존재와 과정도 이 시간의 질서의 심판에서 면제될 수 없다는 비극적인 세계관이다. 죄스러운 존재(存在)들이라는 뉘앙스를 읽어낼 수 있다. 위대한 통찰이 아니었던가? 학문은 우주의 법칙을 밝혀내는 일인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초로 우주 전반에 걸친 어떤 법칙을 밝혀냈다. 학문 혹은 과학이 처음 태동할 때의 모습이다.
엘레아학파 사람들
고대그리스철학은 이태리남부의 도시 엘레아에서 크세노파네스(570-480 BC), 파르메니데스(515?-445? BC) 그리고 제논, 이 세 사람의 엘레아학파로 꽃피었다. 창시자 크세노파네스는 고대그리스신화의 여러 신들과 다신론(多神論)을 비판하고 세계의 본질은 ‘하나이며 모든 것’이니 신(神)도 그렇다고 보아 유일신(唯一神)론과 범신론(汎神論)을 함께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신은 하나이고 모든 것이다‘로 요약된다.
파르메니데스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감각적 대상)과 그렇지 않는 것(사유의 대상)을 함께 볼 줄 아는 지성 혹은 이성을 크게 신뢰하였다. ‘비존재란 없으며,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
필자는 이 두 사람에게서 힘입은 바 크다. 노자는 ‘유무(有無)상생(相生)’이라 하여 有와 無가 상대적임을 말했는데, 나는 이 말도 곰곰 생각했다. 일상생활의 경험은 무엇이 있다가 없어질 때 비로소 없음(無)을 안다. 주위를 볼 때 有無가 섞여 있다.
그러나 有無가 섞여 있는 그 세계는 무냐? 유냐? 묻는다면 그런 세계가 통틀어 있다(有)고 대답하리. 대우주는 있음이지 없음이 아니다. 대우주라는 무한하고 영원한 ‘유’ 안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고 절대 유일의 하느님을 일컫는다. 무한하고 영원하고 절대 유일한 것은 대우주 밖에 없다.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
필자는 우주의 빅뱅기원설에 대해 그것은 부분적 우주의 기원에 관한 설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대우주만이 (크세노파네스가 ‘세계’에 대해 말했듯이) ‘진정한 하나’이다. 사람은 유한하고 상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며 과학은 그런 세계에서 개발된 도구이므로, 과학은 상대적 유한 세계에서는 유용하나 대우주 자체에는 적용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익숙한 세계는 부분이다. 전체인 우주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알기 어렵다. 최근 과학잡지 뉴턴은 무한우주에 가까운 최신의 평행우주론을 소개했다. 평행우주론은 필자의 우주관을 뒷받침하는 좋은 자료로 보인다(뉴턴, 2014년 5월호, 특집 ‘평행우주론’ 참조).
우주의 부분들은 인과율이 적용되어 서로 연기(緣起)적으로 존재함을 석가여래는 밝혔다. 그러나 대우주 자체는 무시무종(無始無終), 무(無)종말의 것이고, 인과(因果)율과 목적을 초월하는 “다만 있어서 있는” 존재 그 자체이다. 창조주가 따로 있어서 우주를 만든다는 것은 유치한 그림이다. 신(神)은 곧 창조성(創造性)이며 창조이다. 우주는 창조과정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우주 그 자체가 창조이며 창조성이며 창조과정이다.
우주는 자생적 자동적 자발적으로 운행되도록 오묘한 원리들이 내장(內藏)되어 있다. 내장된 원리들 중 필자가 ‘쌍인(雙因)구조’ 혹은 ‘짝’이라 부르는 이 대립쌍의 원리는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잘 천명되었다. (또 피타고라스도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대립 등 10개 대립쌍을 일컬었다.) 불이 아르케라고 보면서 변화(變化)라는 요인에 주목했던 헤라클레이토스는 서로 대립(對立)하는 상태들이 쌍을 이루고 있음에 주목했다.
대립쌍의 예를 들면 질병과 건강, 전쟁과 평화,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둠, 빈곤과 풍요, 행복과 불행, 선과 악,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 등등이다. 예를 더 들어보자면, 물체(천체)와 중력(重力), 작용-반(反)작용, 아(我)-비아(非我), 정신과 신체, 남과 여, 원심력과 구심력, 음양, 좌우대칭, 상하 등이다. 같은 길인데 오를 때는 오르막, 내려올 때는 내리막이다. 물체는 중력을 가지므로 그것들은 서로 불가분리이다. 이렇게 디지털(digital)의 두 요인이 짝을 이루어 작용, 모순, 갈등, 경쟁, 협력 등의 거동(擧動)을 한다.
내장(內藏)된 ‘쌍인(雙因)구조’의 예를 더 들어보면 시종(始終), 물질/에너지, 에너지의 보존/엔트로피의 전후(前後), 증가, 성쇠, 명암 등이다. 이들 내장된 쌍 혹은 짝이 서로 작동하면서 우주를 생동(生動)시킨다. 우주는 짝(쌍인구조) 때문에 살아 있다. 필자는 짝 서로의 충돌, 투쟁, 포식(捕食), 갈등을 중요시하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그리고 음양이론의 주역(周易)과도 같은 맥락이다. 짝은 서로 필요함으로써 되어간다. 우주는 이렇게 상호 필요성으로 내장되어 자동(自動)한다. 생물계 특히 인간계에 이르러서는 아(我)/비아(非我)의 관계(雙因구조)가 첨예화되어 포식, 약탈, 투쟁, 사랑, 선행의 구별이 있게 되었다. 선악(善惡)의 대립쌍은 도덕적 행위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만일 악이 우세해지면 파멸에 이를 것이므로 삶이 있자면 선이 요청되는 것이다. 악은 선을 부르는 필요성이다. 사람은 선악의 갈림길에서 도덕적 자유를 발휘할 기회를 가진다. 도덕적 선택이요 결단이다. 인간만이 이 자유를 누린다. 도덕적 필요 앞에서 인간의 자유는 빛을 발휘하며 창조에 동참한다.
여기서 대립쌍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우주가 그것들을 이용하여 자치적으로 운영되게 점지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따로 있는 하느님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자치(自治)라 이름할 수 있으니, 창조주가 처음에 그렇게 내장(內藏)해 두었다고 하기보다 우주는 본질적으로 그런 자치단체임을 뜻하는 바이다.
스피노자의 사상
17세기 사람인 스피노자(1632-1677)는 이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1401-64)와 죠단노 브루노(1548-1600)와 같은 선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크자누스에 의하면 세계(우주)는 시간공간적으로 무한하며 중심(中心)이 따로 있지 않고 모두가 중심이며, 세계는 곧 신성(神性)의 전개이다. 신으로서의 세계가 세계내의 개개(箇箇)물물(物物)로 나타난다고 보았으니 이것이 범신론이다. 그는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를 논하면서 극대(極大)인 신과 극소(極小)인 개물(個物)은 반대이면서 일치(一致)한다고 보았다.
브루노(Giordano Bruno)는 쿠자누스의 영향을 받았다. 우주 내에는 무한히 많은 세계(태양계)들이 있다 하고 신은 우주의 생명이요 ‘낳는 자연’(natura naturans, 能産的 自然)이라 했다. 브루노는 쿠자누스의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 개념을 가지고 우주는 극대(極大)이지만 그 물질은 극소(極小) 단위인 단자(單子, monad)로 구성되어 운동 변화하되 단자 자체는 불멸이라 했다.
스피노자는 신은 자연 혹은 우주 그 자체이며 만물은 신의 상태요 표현이라 했다. 그는 물질/물체 그리고 정신/사유(思惟)를 신이라는 한 실체의 두 속성으로 보았다. 그는 인격적 초월신을 부인했다. 신 곧 우주자연은 자인(自因)적 자발적 자동적 기계(機械)이며 본성상 필연에 따라 작동 운행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무한이기 때문에 유일하며, 시작과 끝이 없고 창조와 종말이 없는 자가(自家)발동(發動)적 우주이다. 사람은 죽음을 통해 비인격적 요소를 가지고 신과 합일하는 것이니, 이와 모순되는 개인의 영혼불멸은 그가 인정할 수 없었다.
스피노자를 그리며
서양철학사는 ‘참으로 있는 것’ 곧 실체(實體)의 추구로 일관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실체를 인정하는 물심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는 신(神)도 실체라 하였으므로 물(物), 심(心), 신(神)의 3원론을 주장한 셈이다.
기독교의 기본철학은 참으로 존재하는 이는 신이라는 생각이다. 서양인들은 그런 개념 아래 자라나므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연히 신을 실체(實體)라 본다. 실체란 진정으로 있는 것을 뜻한다. 필자도 주위에는 신자들이 많아 가끔 ‘당신은 신을 믿소?’ 하고 묻는다.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신은 우주와 같으며 엄밀히는 宇宙性, 우주이성(理性)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理神論자라 할 테다.
나 자신의 경험과 과학에 비추어 보면 육체와 정신은 별개가 아니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도 흐려진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진다. 몸이 있는 동안 영혼이 있지 죽으면 개인의 영혼 같은 것은 없다. 이렇게 아는 나는 정신과 육체가 각각 실체라 하던 데카르트를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자연’(우주자연)이 신이라 생각했다. 어느 철학교수는 스피노자의 신은 기도의 대상이 아니므로 기독교적인 신이 아니라고 썼다. 이는 스피노자의 사상을 잘 지적하는 일면은 있으나 정확한 말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피노자만큼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은 보기 드물 것이다. 그는 생활 전부가 기도였다.
자연이나 우주를 하나의 실체라 보는 일원론은 위대하다. 스피노자가 물(物)심(心) 양면을 한 실체의 속성이라고 보았던 것은 탁견이다. 구약성경에는 신은 ‘있어서 있는 이’ 즉 존재원인이 밖에 있지 않고 ‘자기 존재 자체가 존재원인’이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체이다. 스피노자는 유대교-기독교의 신과 같은 신을 믿으면서 다만 해설이 탁월할 뿐이다. 우주 또는 자연 그 자체라고 했던 그의 해설 말이다.
스피노자는 34세 때(1656년) 이단이란 혐의로 유대교 장로들의 호출을 받았고, 굴복을 거부하여 유대교에서 파문당했다. 그 후 아무 종교에도 속하지 않고 고독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그를 집에서 쫓아냈다. 그의 누이가 그의 유산을 횡령하려 들었을 때 스피노자는 법정에서 누이에게 승소했으나 유산은 누이에게 주어버렸다. 파문 후 그는 어느 날 밤 광신도의 습격을 받았으나 겨우 경상(輕傷)에 그쳤다. 그 후 그는 암스테르담 교외 도로변의 한 지붕 밑에 다락방을 얻어 은거하였는데 메노나이트 교도인 집주인은 관대히 이해(理解)심이 깊어 잘 대해주었다. 그는 렌즈 닦는 직업을 얻어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파문, 이종離宗)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존경을 받아 1673년에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 교수로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단이라는 마찰에 부딪칠 것을 예상하고 교수직을 거절하고 자유와 평정(平靜) 쪽을 택했다. 1677년 44세에 폐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진리추구에만 정진했던 성자였다.
그는 마음의 덕(德)이란 사유의 힘으로 참된 인식에 이름이라 했으며 그것이 선(善)이라 보았다. 그에 의하면 사람이 만일 온전한 관념과 인식에 도달하면 각 사물이 필연의 법칙에 따라 서로 인연(因緣)하여 존재함을 여실히 보게 된다. 이것이 ‘영원(永遠相)에서 봄’(sub specie aeternitatis)이다.
영원相의 자리에 서면, 마치 “광명이 명암(明暗)을 동시에 밝히듯, 진리는 진위의 분별을 제공한다.” 감정에 치우침, 마음의 번뇌, 단견(短見)적 목적관 등은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데서 생겨나는 공상(空想)이라 했다. 그는 자유의지의 개념과 선악미추의 구별도 그러한 단견이요 공상이라 공언했으니 너무나 높은 견지에서 보았으므로 비현실적이었음을 나는 감히 지적한다. 나는 나이가 그이의 두 배 가까이 되었으므로 그런 지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약 십오 년 전 대구에서는 아이 얼굴에 황산을 부어 치명상 때문에 숨진 사건이 있었다. 선악의 구별은 뚜렷한 것이다. 너무 관념적으로 평준화시켜서는 안 된다.
참 인식(認識)에 이르러 번뇌를 벗어나면 마음의 본성인 덕(德)에 이르게 되어 참 자유를 얻는다고 그는 말했으니 진실로 성자의 말이다. 그가 실제로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 주민에게 그런 자유를 권고할 수는 없다. ‘영원상(相)에 비추어’ 보는 일은 사물의 필연의 리치를 깨닫는 일과 같다고 그는 말했으나 그가 필연을 너무 강조했음은 숙명론과도 같아서 그의 철학의 한 흠이다. 이(理)를 따를 때 번뇌가 사라진다 했음은 깨달음을 강조한 불교와 같다.
‘영원상(相)에 비추어’ 볼 때면 한없는 기쁨이 솟는다 했음은 그의 신앙고백이다. 만물을 신(우주)에 연관시킴에서 오는 기쁨이므로 이는 우주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오는 우주애(宇宙愛) 곧 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 합일(合一)의 경지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Amore Dei intellectualis)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지복(至福)이었다. “복은 덕에 대한 보수가 아니라 덕 그 자체이다.”
불멸은 개인의 영혼이 무기한 존재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자와 합일함을 의미한다. 세계질서는 신(우주)의 본질에서 오는 필연이므로 영구(永久)하다. 인식의 인도함을 따라 우주질서에 나를 보태고 합일함으로써 영원에 참여한다. 슐라이엘마허가 종교를 정의하여 “유한의 세계 복판에서 무한자(無限者)와 합일하고 찰나에 서서 영원에 드는 일”이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우주)에 대한 우리 사랑은 곧 우주의 자애(自愛)일 터이다. “드높은 경지는 드물고도 귀하다”고 스피노자는 말했다.
나는 어떤가?
스피노자는 필연이 지배하는 기계관(機械觀) 우주 앞에서도 희열을 느꼈다고 하나, 나는 장엄한 우주의 얼굴을 보며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여호와가 “나를 보는 순간 너는 죽으리라”고 했다는 구양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내가 우주를 보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슬픔에 그친 것은 아직 우주를 정면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유보는 나의 희망이지만, 허망하다, 허무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허무를 즐기는 수밖에 없다. 스피노자의 경지에 미달이어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