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
2023.05.12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2021)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관
찰함으로써 학습하는가에 관한 연구를 통해 ‘모델링(modelling)’의 개념과 과정을 소개하였
다. 누군가를 보고 배우는 것은 인간의 선천적 경향성이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 환경의 자
극에 무의식적으로 영향받지만, 인지가 발달할수록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모델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모델의 사고와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기억한 정보를 삶에 적용하
고자 시도하는 과정이 관찰학습의 핵심이다.
내가 닮고 싶은 모델이 생길 때마다, 그는 내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다행스러운 것
은 내가 직접 알고 지내는 사람만 모델로 초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나 현
재에 잘 알려진 명사들이나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 등 마음먹기만 하면 누구나 내 삶의 모델
이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다양한 문학적 경험을 통해 편협한 관점을 벗고,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과 흡사하다.
모든 음악가의 연주는 수업의 모델이 되곤 했다. 학교에 있을 때 해마다 동일한 전공 교과
를 맡아 수없이 많은 수업을 했지만, 한 번도 똑같은 수업을 한 적이 없다. 수업내용이 비슷
했을지 모르나 그때 그 순간 학생들과 힘을 합해 만들었던 수업 과정과 결과는 그날의 분위
기, 감정, 경험 등 여러 가지 변인이 어우러져 빚어진 독특한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학교 현
장을 떠나고 보니 이제 나의 눈에 음악가의 연주뿐 아니라 삶에 관심이 간다. 더 좋은 연주
를 위한 음악가의 노력에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나의 삶도 좀 더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은
내적 동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백혜선은 모두 닮고 싶은 점이 많은 피아노 연주자이자 매력 넘치는 나
의 롤모델이다.
#1. 시모어 번스타인
관심 가는 것을 꼭 붙들고 열매 맺을 때까지 매달리기
90대의 현역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영화
배우 에단 호크가 감독을 맡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타 >다. 그는 여섯 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아흔 살이 넘도록 평생 피아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촉망받
는 피아니스트로, 지금은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그러면서도 여전히
피아노 연주자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90 넘은 현역 피아니스트를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만
으로도 놀라움인데, 누구보다 맑고 또렷하게 자유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위대
해 보였다. 비결은 관심 가는 것을 꼭 붙잡고 열매 맺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는 삶의 태도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Seymour: An Introduction> 중에서
“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재능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독주자 경력을 접고 나서도 연주에 대한 욕망은 항상 있었어요. 연
주의 욕망은 연습을 통해 이어지고 있죠. 그리고 나는 최고의 연주자들과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실내악 연주는 계속합니다. 나
는 연주를 그만두면 훌륭한 교사와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시모어 번스타인, 앤드루 하비,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2. 백혜선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성장하기
세바시 강연에서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알게 되었다. 그가 걸어 온 삶의 여정은 평범하지 않
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유학해서 유명한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을 한다. 29세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이 되어 10년 만에 사표를 쓴다. 마흔에 다시
연주자의 길을 걷기 위해 달랑 두 아이를 데리고 생면부지 뉴욕으로 간다. 그 후 역경을 딛
고 다시 피아니스트로, 교수로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서울대 교수직을 가진 거를 후회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제가 피아노 연습할 때 습득한 건데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이란 끊임없이 성장하고, 내 그릇
안에서 내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세바시 강연<낯선 환승역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중에서-
세바시 강연 <낯선 환승역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그가 좋은 연주자로 거듭나기 위해 가졌던 삶의 태도는 비단 음악뿐 아니라 삶에 큰 영감을
안겨주었다.
–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집중하기
– 자신이 선택한 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
–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까 의심이 들 때도 매일 꾸준히 자신을 연마하기
–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간에 의미를 두고 자기 삶을 긍정하기
이러한 태도는 그가 좋은 피아노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 비법이자 삶을 아름답게 연주하기
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통하는 마법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by 쿠나 https://brunch.co.kr/@kylee8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