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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13> 스페인 르네상스기의 서정시인 루이스 데 레온의 작품세계
자연에 대한 관조ㆍ동경 곳곳에 담겨
영혼의 평안갈망…「도사상」과 상통
당대의 종교ㆍ문화적 요소 융합시도
서반아 르네상스기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자 수사였던 루이스 데 레온 (Lu-is De Leon) 은 1527년 벨몬트 (Belmont) 에서 출생했다. 어린시절의 교육은 마드리드와 바야돌리드에서 받았다. 14세때「살라망까」로 갔고, 그후 살라망까대학에서 수학했다. 이 도시로 온지 얼마 안되어 그는 아우구스띠누스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1544년 수도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살라망까 도시와 대학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됐고, 그의 활동이나 작품들과도 연관을 맺게 된다.
32세에 살라망까대학 에서 신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당시 이 대학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던 다른 수도회, 특히 도미니꼬회와의 적대의식과 성서해석을 논하고 서로 상이한 신학적 견해, 그리고 루이스의 개인적 성격 (그의 지칠줄 모르는 활동은 그를 대학내의 여러 문제에 끼어들게 했음) 등이 그를 종교재판까지 몰고 가 마침내 1572년 희생자가 된다.
대학내의 그의 적들은 루이스가 구약성서의 히브리어교본을 라틴어로 번역한「불가따」(Vulgata) 보다 더 옹호한다고 비난했는데 이것은 루이스의 어머니가 유태인이라는데 대한 적대자들의 감정적 요소가 많이 작용했다. 또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성서」를 속어로 번역해서는 안된다는 금지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약성서중「아가」편을 대중 구어체인 서반아어로 번역한 사실을 놓고 또한 맹렬히 비난하고 공격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5년간을 바야돌리드 감옥에서 지냈고, 거기서 그는 온갖 수모를 겪었다. 이 불행한 사건은 어리석은 몰이해와 개인적 질시 및 적대감, 그리고 상반된 이념등이 상호 결합하여 그의 사상이 정통교리에 어긋난다는 구실을 내세워 한 인간을 해치는 무서운 도구로 이용된 좋은 본보기이다. 또한 16세기 서반아의 사상과 생활의 다양한 이면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마침내 루이스는 무죄로 판명되어 교단으로 다시 돌아온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가 다시 강단에 서서 강의를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어제 우리가 말했듯이…』이것은 그의 고결한 성품의 일면을 보여준다. 5년동안 무고한 옥살이를 한 그의 입에서 적대자들에 대한 비난의 소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후 그는 철학과 성서연구를 강의하기도 했다. 1591년 까스띠야에 있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관구장으로 임명된지 얼마후 마드리갈 (Madrigal) 에서 사망했다.
루이스 데 레온은 심오한 문화인이었다. 당대에서 명성을 누렸고 저명한 인사들과 우정을 맺었으며 제자들에게는 심오한 지식과 겸손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일단 옳다고 판단되는 일에는 타협과 침묵을 모르는 격정적이고 투쟁적이며 고집스런 기질도 있었다. 그래서 잘못 돼가고 있다고 판단할 때는 사람이나 기관을 상대로 때로는 저돌적으로 투쟁을 했고, 이것은 그의 상대방들에게 적대감과 불쾌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평화나 고독같은 주세는 그가 열렬히 바라는 정신적 평안을 향한 갈망의 결과로 봐야 한다.
그는 선견지명이 있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당시의 사상을 앞질러 갔다. 그러나 진부한 사고를 지닌 당시 살라망까 대학의 교수들에게는 위험한 사실로 비쳤던 것이다. 감옥생활에서도 놀라운만한 끈질김과 자존심과 용기로 어느 한순간도 의연함을 잃지않고 자신을 방어하여,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악화시켰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루이스의 대담하고도 남자다운 성격이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루이스는 한 인간의 모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의 모든 열정을 진실로 진리의 봉사에 두었다. 그에게서 보이는 극단성, 비타협성, 격분 등은 위선이나 어리석음을 견디지 못하는 그의 정의를 사랑하는 활기찬 성향의 자연스러운 반동이라 보아야 한다. 그는 그 시대에서 부딪쳐야만 했던 것들을 피하지 않고 투쟁했을뿐이다.
그러나 루이스의 진정한 모습은 그의 글에서 보는 것처럼, 고요함에 대한 끝없는 동경, 자연에 대한 조용한 관조와 기쁨, 그리고 열정과 능력에 대한 통제 등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독방이나, 한적한 과수원에서 글쓰기에 전념하려고 했다. 그는 타고난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신비주의 작가가 되기에 루이스는 너무 지적이라고 20세기 서반아의 석학이요 문학평론가인 라뻬사 (Lapesa) 는 말한다.
그는 결코 하느님과의 영혼의 결합을 원치 않았다. 다만 창조주이신 하느님곁에서 모든 사물의 총체적 지식에 도달하고픈 가능성을 생각했다.
서반아 르네상스기때 누구도 루이스 데 레온처럼 당시의 고전적, 이태리적, 서반아 전통적 요소와 종교적 내용등 주요 문화흐름을 총괄적으로 응합시키지 못했다. 이 작업은 성서주해자이고 신학자였던 루이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 루이스의 작품을 산문과 운문으로 구별하여 간단히 알아보겠다. 그는 라틴어로「성서」에 대해 많은 글을 썼다. 여기서는 당시 대중구어체인 서반아어로 쓴 작품 두편을 골라 감상해 보려 한다.
■완벽한 기혼녀 (Lap-erfecta casada)
1583년에 썻고, 결혼한 여자들의 의무를 다룬 책으로 성서에 기반을 둔 이상적 아내를 묘사하고 있다. 당시의 여자들의 용품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의복, 화장품, 향수등-가 생동감있고 색채감있는 문체로 흥미를 끌고있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성들을 분류해 보면 주책바가지형과 성당에만 메달린 형, 알뜰형과 낭비벽형, 게으른형과 부런한형, 정숙한형과 경거망동형, 잠꾸러기형과 새벽근면형, 수다쟁이와 불임성 없고 재미없는형, 집지키는형과 쏘다니는 형, 자비로운형과 깔끔한형, 늙은 중매쟁이형, 남의집 분란 일으키는 형, 치장이나 사치 허영속 도덕문란형…등등.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서주해자인 루이스는 완벽한 기혼녀의 모델을 강한 여성에게서 찾고 있다. 그는 아내의 덕성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가정생활의 예에서 들고 있다. 결혼생활의 경험이 없는 루이스이지만 놀라운 직관과 통찰력으로 당시의 가정생활과 여성들의 정서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리스도이 이름들에 대하여 (De los nombres de Cristo)
루이스 데 레온의 대표적 산문작품으로 1583년에 쓰여졌다. 마르쎌로라는 등장인물이 다른 두명의 종교인과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이름에 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부르는 이름에 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싹, 하느님의 얼굴, 길, 목자, 산, 미레세기의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 왕, 평화의 왕자, 남편, 님, 예수, 어린양 하느님의 아들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루이스가 옥중에 있을 때 그 시작했다는 이 책은 그 당시는 금지된 일반 구어체인 서반아어로 썼는데 이것은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적인 책대신 이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목자」편에 나오는 다음의 글은 루이스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들판에서 살며 자유로이 하늘을 즐긴다. 그는 고독과 평화를 속의 삶에서 벗어나 침묵속에서 기쁨을 맛본다. 들판에서 체득된 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단순 하고 또한 근본적이다.
우리 주님이 살고 계시는 이곳은 순수한 진리이고, 순박한 하느님의 빛이며 모든 존재의 본질이고 만물이 생성되고 기반을 이루는 확고한 뿌리이다.
이곳은 영원한 꽃의 옷으로 덮힌 들판이며, 생수의 원천이고 지고의 선을 잉태한 산이고, 그윽한 계곡이고 시원한 숲이다. 너도밤나무, 올리브나무와 노회나무가 꽃을 피우고, 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귄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과 이곳을 비교함은 평화와 공포, 도시의 소란, 불쾌한 고요, 평화 순수와 비교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열광하고 악이 공포에 떨게하고, 들판에서는 진리가 숨을 쉬고 있다. 세상은 암흑이요 소란이고, 들판은 영원한 안식의 순수한 빛이다…』
루이스의 문제는 시적이고 음악적이다. 투명함과 조화를 이룬 간결함으로 절제된 깔끔함을 보여주어 전형적인 르네상스의 자연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에는 그의 운문을 보자. 그는 세권의 책에 그의 시들을 수록하고 있다. 제1권에 주로 그의 독창적인 글들이 실려있고 나머지는 번역서들이다.
그이 도덕적 송가중에서 대표적인 한편을 골라 감상해 보려 한다.
■한적한 삶(La vidaretirada) : 이 시는 5행시로 된 17연으로 구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김소월의「진달래 꽃」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서반아에서 모든 사람들이 즐겨 애송하는 시이다.
『소란스런 세속에서 벗어난 삶은/얼마나 평온한 삶인가! /이 세상 소수의 현자들만/숨겨진 이 조그만 길을/뛰따르노라』
루이스는 첫 연에서 명예나 부나 권력을 등지고 속세를 벗어날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의 현자들이라고 읊고있다.
…중락…
『오오, 산이여, 들판이여, 강이여/오오, 믿을만한 즐거운 비밀이여!/나는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이 풍진 속세로부터/그대의 아늑한 휴식처로 가노라』
찌들은 세속의 생활에서 벗어나 산ㆍ들ㆍ강등 자연의 품으로 돌아감을 쓰고 있다
…중략…
『나 홀로 살고 싶어라/사랑, 질투/증오, 희망 그리고 근심에서 벗어나/목격자도 없이, 나 홀로/하늘의 천복을 누리고 싶어라』
위의 글에서 우리는 자연대도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기는 동양의 도가 (道家) 사상을 보는 듯 하다. 속세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홀로 자연에 파묻혀 천복을 염원하는 루이스의 사상이 보인다.
루이스 데 레온은 계속해서 산밀둥에 과수원을 만들어 손수 과실을 가꾸며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꽃들ㆍ과일향기등을 예찬하며, 마음 편히 먹는 소찬의 밥상으로 충분하다는 유유자적의 경지를 노래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덩굴손, 월계수가 만들어 주는/그늘에 누워/부채질과 더불어/감미로운 소리에/귀 기울이노라』
한 여름 우리나라 농촌의 어느 한풍경을 연상시키는 귀절이다.
루이스의 시에서는 신성한 천상적 교신이 보이는데,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에 붙어넣는 영감이다. 그에게 있어 시의 관심은 아름다운 형식보다는 시가 내포하고 있는 영적인 내용과 정화의 힘에 있다. 그의 시는 항상 관념의 세계에서 맴돈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구체성없는 영적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지적내지 정서적 이식이라고 봐야 한다.
루이스의 시의 내용 구성요소중 빼놓을 수 없는것이 하늘에의 향수이다.
이 천복에 대한 갈망은 하느님의 관조 명상안에서 행복에 도달하고픈 열망이요, 또한 영혼의 절대적 평안ㆍ평화의 필요성이다. 거짓과 허세로 가득찬 현세가 고통스런 유배지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독과 칩거속에서 영혼은 현세를 잊을수 있고, 자연이나 예술같은 반영물의 관조를 통해 영원한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크리스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인자 <마리나ㆍ효성여대 서어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