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광화문 대첩'을 200여 년 전(1789)에 일어난 프랑스 시민혁명과 대비시키는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동의하면서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격차’와 ‘경제’라는 것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기득권층에서는 어지간해서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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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다시 누를 기회를 엿본다는 말입니다.
‘순실 의 남자들‘ 명단이 비박 계에 의해 밝혀져 너 죽고 나죽자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는데 그동안 잠수하고 있었던 서 청원 의원의 이름이 수면위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정현, 조 원진, 이 장우, 서 청원, 최 경환, 홍 문종, 윤 상현. 김 진태. 이상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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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작렬인 대통령의 가신들 명단이 하나하나 확인될 때마다 야쿠자 보스들입니다.
태자 뺨을 때린 노익장에, 초원 복 집 사건, 자해한 현기완, 현상금까지 붙은 우 병우,
가소로운 이 정현, 와, 어디서 그런 깡패 불한당들을 모으셨는지 임을 ‘조폭마누라’로
임명합니다.“억울해서 피 눈물이 난다.”고 했고 조윤선, 강 은희 장관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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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도 서열이 있으니 저도 슬프고 국민들도 슬픈데 왜 눈물이 나지 않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동시대를 산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 서문에 쓴 내용입니다. “사회에는 법률과 풍습으로
말미암은 처벌이 존재하여 그것(그 처벌)이 문명 속에 인위적으로 지옥을 만들어내어
신성한 운명을 불행으로 뒤얽히게 하는 한, 그리고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 프롤레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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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으로 남자가 낙오되고, 굶주림으로 여자가 타락하고, 어둠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어떤 지역에서 사회의 질식 상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한,
좀 더 넓게 보아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있는 한, “ 시민혁명은 계속될 것이고 합니다.
보수의 개념을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사람도 있고, ‘안정을 바라는 어른들’이라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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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디다만 저는 우리 ‘아버지세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새 아버지인 저는 보수입니다.
제 나이 쉰셋이니 50년 안에 분명히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야합니다.
부모를 여읜 20대의 장발장은 가지 치는 일을 해가며 혼자된 누나와 일곱 조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었습니다. 겨울이 오고 일거리가 없어 온 가족이 굶어가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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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빵집 유리창을 깨고 빵 하나를 훔칩니다. 곧바로 체포된 장발장은(1796년 25세) 5년
형에 처하고 뚤롱 감옥에 수감됩니다. 감옥에는 자베르라는 간수가 노역 중에 무너지는
기둥을 떠받치는 장발장의 완력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 것은 요셉을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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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탈옥시도는 수감 4년째 되던 해에 시작되는데 행불된 누나의 목격 소식을 듣고서
입니다. 고대에는 탈옥이 가능했겠지만 현재는 탈옥이 불가능합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연이은 탈옥시도로 처음의 5년형이 19년으로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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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로빵 하나 훔쳐 먹고 19년 살았는데 가석방(모범수)이 된 걸 보면 장발장은 내공이
요셉 못지않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가석방 제도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항소는 판사에게
하지만 가석방은 교도소장의 권한입니다. 물론 가석방 조건이 있기 때문에 실형이3년이면
2년은 무조건 살아야합니다. 통행증을 보고 그의 신분을 알게 된 모든 사람이 그를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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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전과자를 혐오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자 팔찌 찬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지붕을 찾아 들어간 개집에서마저 개에게 쫓겨나는 장발장은 노숙을
위해 자리를 찾고 있을 때 주교 여동생의 친구가 나타나 주교의 집을 안내합니다.
주교는 위험한 죄수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음에도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나 내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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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촛대와 은 접시를 꺼내놓고 그를 진심으로 환대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주교는
성직자답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부분을 모면서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를 능가하는 것은
지도자의 도덕성인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주교의 편견 없는 선의에 의아해하다가 잠자리에
든 장발장은 불현듯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을 떠올리고, 한밤을 틈타 은 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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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 달아납니다. 당시 925은은 24K가치이었을 것입니다. 장발장은 얼마 못 가 경찰의
검문에 걸리고, 그의 꾸러미에서 은 식기가 발견되었고, 장발장은 주교가 자기에게 준
거라고 둘러대지만, 경찰은 그를 연행해 주교의 집으로 갑니다. 이때까지 장발장은 주교의
살림이 너무 허름해서 그가 하급 사제인 줄 알고 있었는데, 경찰과 함께 주교를 보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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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직급을 알게 됩니다. 그들을 맞이한 주교는 오히려 “함께 준 은촛대는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며 사회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장발장의 마음에 충격을 줍니다.
“당신의 영혼은 내가 샀으니 앞으로 선을 위해 살아야 한다. “
그날 오후 장발장은 덤불 그늘에 앉아 자신을 용서해준 주교에게 정체 모를 분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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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던 굴뚝 청소부 소년(쁘띠 제르베)이
갖고 놀던 동전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무의식 속에서 그 동전을 밟았습니다.
소년은 돈을 돌려달라고 울며 애원하지만, 소년을 쫓아낸 것까지 본능이었다면 도망가는
소년과 뒤늦게 발견한 발밑의 동전이 생각날 때쯤 장발장은 한참 소년을 찾아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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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미 멀리 사라진 뒤였습니다. 후에 소년의 신고로 장발장은 가석방기간중의
범죄로 가중 기소됩니다. 비로소 위대한 주교와 끔찍하게 타락한 자신을 적나라하게 직시
하게 된 장발장은 그날 밤 인적 없는 주교의 집 앞에 무릎을 꿇고 평생 주교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성경에 바울이 빌레몬에게 빵 동기 오네시모를 부탁하는 본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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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데 주교가 성경묵상을 한 후에 제대로 적용을 한 것입니다. 그해 말 1815년 12월경
형량을 채우고 출소한 장발장이 개명(마들렌느라)을 하고 몽트뢰이유 쉬르 메르라는 도시에
나타납니다. 아마도 죄악과의 단절을 위해 과거를 지우기로 결심하고 신분을 위장한 것일
테지요.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공장을 세워 스스로 엄청난 부자가 되고, 마을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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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제를 부흥시킵니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는 기부와 선행으로 명망이
높아지던 1820년, 드디어 정부는 몇 번을 고사해온 그에게 시장 직을 맡깁니다.
그러고 보면 사회란 정글의 속성이 가지고 있습니다. 병 주고 약주는 것이 말입니다.
1821년, 은혜를 입었던 주교의 부음을 전해 듣고 상복을 입은 장발장의 모습은 복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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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입니다. 이후 장발장은 양녀 코제트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상대가 열혈공화파 청년 마리우스이라니 두렵고 화가 났습니다.
늘그막에 겨우 얻은 삶의 빛을 젊은 사내가 나타나 가로채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장발장의 마음속을 스쳤을 다른 그늘도 상상해 봅니다. 첫눈에 반한 불같은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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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가 모를 리 없고 게다가 딸의 상대가 하필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이루겠다는 부잣집 도련님이라니 이 도련님이 바라는 꿈이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격동의 프랑스를 온몸으로 살아온 장발장이 또한 모를 리 없지를 않겠는가?
장발장은 질투와 근심을 묻어두고 마리우스의 편에 서서 싸웁니다.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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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쳐 업고 천신만고 끝에 소요 속을 빠져나와, 그를 코제트의 곁으로 보내줍니다.
다 겪어봤는데 별 거 아니더라. 네 나이 때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지.
늙은 장발장은 훈계하는 꼰대가 되는 대신 그저 젊은이들을 도운 후 가만히 뒤로 물러납니다.
열정은 앞뒤를 꼼꼼히 살피지 않습니다. 그것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심정. 첫 경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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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요. 남는 건 처참한 패배감과 뼈저린 후회뿐일지라도
젊음의 이 특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 뭣 모르고 달려드는 열정이 이 세계를 약간이나마
움직인다는 것. 장발장의 고독한 죽음에서 이런 마음을 읽는 건, 그런 마음의 소유자를
만나고 싶은, 혹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내 바람의 오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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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내게는 가정과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또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조국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신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주님, 거처할 가정이 없이 방황하는 자들과, 박해받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근로 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격무에
시달려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과, 가정에서 동정을 받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학대를 당하는 자들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들과, 정신 이상에 걸려 정신요양소에 수용
되어 있는 자들과, 옥에 갇혀 있는 자들과,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오! 하나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의 불행을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물질에 소망을 두지 않고 여호와께 소망을 두며 살게 하소서. 바른 말을
하며 바른 교훈을 듣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2016.12.1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