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할인 동창회 제휴식당
세종대왕 후손이 운영, 시진핑·교황도 다녀간 집
서울 수서동 ‘필경재(必敬齋)’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18호(2021.05.15)
필경재는 1987년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됐다.
긍지실과 그 앞 조경(사진 위). 손님들이 꼽는 최고의 메뉴 보쌈김치(사진 아래).
각종 견과류가 고유의 맛을 내며, 별도 구입이 가능하다.
500년 종택 한정식집으로 개조 - 19가지 음식을 한 상에서 만끽
‘들어가지 마시오.’
이름 높은 고택의 툇마루엔 으레 이런 팻말이 놓여있다. 방안을 어떻게 꾸몄을지 채광이나 통풍은 어땠을지 암만 궁금해도 목을 빼고 문지방 너머를 기웃거릴 뿐이다. 그러니 500년 된 전통한옥에 들어서 궁중 한정식을 맛보는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서울 수서동에 있는 ‘필경재(必敬齋)’가 홍보도 마케팅도 일체 없이 20여 년을 이어온 비결이다.
1987년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된 필경재는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증손이 15세기에 세운 가옥으로 본래 99칸으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50여 칸이 남아 있다. 숙종 때 영의정 이 유, 효종 때 우의정 이후원, 헌종 때 우의정 이지연 등 3정승을 비롯해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장군,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위종 열사의 종가(宗家)이기도 하다. 쟁쟁한 가문의 내력에, 어르신 취향에 딱 맞춘 상차림, ‘반드시 웃어른을 공경하는 자세를 지니고 살라’는 뜻의 옥호까지 더해져 결혼을 앞둔 두 집안의 상견례 명소로 손꼽힌다. ‘필경재에서 상견례를 하면 잘 산다’는 소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왕족의 종택을 음식점으로 재탄생시킨 이는 광평대군의 21대손 이병무 필경재 대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조상 대대로 나라에 봉사해온 가문이니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일해달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를 찾은 국빈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선보일 수 있게끔 식당 개업을 요청 받은 것. 비빔밥 불고기 삼계탕이 한식의 전부인 줄 알았던 외국 사람들에게 정통 궁중요리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신문에 해외 유명인사가 입국했다는 기사가 나면 다음 날 바로 예약이 들어올 정도.
조선시대 주거문화에 음식문화, 묘지문화까지. 선조들의 생활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필경재엔 숙종이 내린 교지와 이 유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 조선시대 왕실족보인 ‘선원속보’ 등 가문의 유물이 곳곳에 전시돼 있기도 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교황 베네딕토 16세, 할리우드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 홍콩 영화감독 서 극 등 해외 유명인사들이 필경재를 다녀갔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2007년 꼭 다시 오겠다는 감사편지를 남긴 후 불과 1년 만에 아내와 함께 재방문해 약속을 지켰다.
만찬엔 국화정식(12만원), 난정식(14만원), 매화정식(18만원), 수라정식(24만원) 등 4가지 코스 요리가, 오찬엔 미정식(5만4,000원)과 죽정식(8만8,000원)이 추가된 6가지 코스 요리가 제공된다. 코스당 적게는 13가지, 많게는 19가지 음식이 줄을 잇는다.
오찬은 오늘의 죽, 만찬은 전복죽으로 시작해 계절 냉채가 뒤를 이어 식욕을 돋운다. 다음 메뉴는 문어 숙회. 최고급 코스인 수라 정식에선 도미찜이 대신 바통을 이어받고 색색깔의 칠절판이 상에 오른다. 전 코스 공통 메뉴인 탕평채와 소고기 잡채가 뒤를 잇고, 코스에 따라 돼지 편육 또는 사태 편육을 맛본 후 갈비찜·갈비구이에 이르면 미식의 절정에 다다른다. 이 대표가 꼽은 최고의 음식은 신선로. 그의 아내 김명순씨가 시어머니한테서 비법을 전수받아 옛 조리법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손님이 꼽은 최고의 메뉴는 보쌈김치. 절이는 과정은 일반 김치와 비슷하나 잣·호두·밤 등 견과류와 낙지, 목이버섯이 들어가 고유의 맛을 낸다.
또 다른 맛의 비결은 신선한 제철 식 재료. 이 대표가 직접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장을 보고, 전국 각지의 생산자와 제휴를 맺어 산지의 특산물을 공수해온다. 직원을 시키면 비용에 신경 쓰느라 좋은 재료를 놓치기 쉬워 개점 이래로 한결같이 이병무 대표가 전국 각지의 시장에 다녀온다. 세종대왕의 후손이 장을 본다니. 자존심이 상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 대표는 책임감과 사명 의식으로 답했다.
“종택을 한정식집으로 탈바꿈시켰으니 종손으로서 저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운영비 때문에 돈을 받긴 하지만 필경재를 통해 한식의 건강함, 다양함을 세계에 알린다는 사명 의식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에요. 제 정성과 노력이 통했는지 외국 손님이 전체 고객의 80%를 차지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국제 교류가 어려워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곤 있으나, 방역 지침이 풀리면 또 그만큼 예약이 밀려드는 데가 이곳 필경재예요. 잘 아는 댁에서 좋은 대접 받고 간다는 인상 받으실 수 있도록 최상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총 14개의 객실이 있으며, 50명까지 단체 수용이 가능하다. 동문 우대증을 제시하면 1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매일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영업. 명절 당일 휴무. 발렛 파킹. (나경태 기자) ☞ 서울 강남구 광평로 205 /02-445-2115
명절 당일 휴무. 발렛 파킹. (나경태 기자) ☞ 서울 강남구 광평로 205 /02-445-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