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춘추시대였다. 어느 날 조양자(趙襄子, ?-B.C.425)가 공자(孔子)를 만났다. 조양자가 공자에게 말하기를,
“선생은 경의를 표하며 70여 제후를 만났으나 선생의 도(道)는 먹혀들지 않았소. 이 세상에는 현명한 임금이 없다는 것을 어찌 모르시오? 선생의 도에 뜻을 둔 이들이 있으나 그 도가 통하지 않소?” 공자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조양자가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 B.C.542~B.C.480)를 만나 말하기를 “일찍이 나는 그대 스승에게 도를 물었는데 그대의 스승께서 대답을 하지 않았소. 알면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세상을 피해 숨어사는 것인데, 숨어 살면서 어찌 어짊(仁)을 행하겠소. 만일 정말 알지 못한다면 어찌 성인(聖人)이 될 수 있소.”
자로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천하의 큰 종을 걸어놓고 작은 막대기로 치면 어찌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建天下之鳴鍾,而撞之以挺,豈能發其聲乎哉(건천하지명종, 이당지이정, 기능발기성호재)!
한나라 때 유향(劉向, B.C.77~B.C.6)이 쓴 『설원(說苑)』 권11 「선설(善說)」에 나오는 대목이다. 공자가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할 때 조양자라는 진(晉)나라라는 일개 제후국의 영수(領袖)가 공자를 비웃는 대목이다. 역시 공자의 제자답게 자로라는 사람이 한 방에 조양자라는 사람을 넉아웃(knockout)시키고 있다. 자로가 말한 대목은 식견이 짧고 얕은 너희들이 어찌 공자의 깊은 치국(治國)의 도를 알겠느냐는 것이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한마디로 입 다물고 네 할 일이나 하라는 말인데 듣는 이가 가슴이 움찔하였을 것이다. 아니 아예 제후국 임금들에게는 뼛성을 부린 입찬말로 들렸을 것이다. 큰 종을 걸어놓고 작은 막대기로 쳐 봐야 댕댕댕, 거리는 소리만 들릴 것이다. 소리는커녕 잡음만 들릴 것이다. 큰 종에 맞는 타종기구가 있어야 종은 웅숭깊은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주유열국(周遊列國)을 하면서 숱한 고난과 시련을 겪었음은 사마천이 쓴 『사기』「공자세가」에 보인다. 공자는 어짊을 정치의 이상으로 보고 이를 제후국에 알리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후국 임금들은 뒷귀(사리나 말귀를 알아채는 힘)가 없이 전쟁과 권모술수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일 뿐이다. 仁이란 무엇인가? 惻隱之心(측은지심)이다. 측은이란 무엇인가? 이는 곧 ‘남의 위급하거나 난처한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남의 잘못된 점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仁의 정치란 바로 춘추시대 제후국간 전쟁의 틈바귀에서 신음하고 고통 받는 민초를 구제하려는데 있었으며, 각 제후국이 전쟁을 멈추어 줄 것을 호소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제후국들은 ‘땅따먹기’에 골몰하여 민중은 거들떠보지 않고 피를 흘리는 일에 열중하였다.
큰 종이란 仁의 본 모습인데 작은 막대기로 쳐서 仁을 알려고 하니 알 턱이나 있느냐는 반어(反語)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큰 종을 울려 仁의 본 모습을 알리려고 하나 仁에 대하여 건깡깡이(어떤 일을 하는 데에 아무런 기술이나 기구도 없이 맨손으로 함)인 제후국의 작은 임금이 인을 어찌 알랴, 하고 자로는 조양자에게 힐문(詰問)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제후국 임금들이 仁을 헤아릴 깜냥이나 있는가 하고 자로가 입찬말을 뱉어낸 것이다. 仁의 실천은 일상생활에 있음을 공자께서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 必於是 顚沛 必於是(군자무종식지간위인 조차 필어시 전패 필어시. “군자는 밥 한 끼 먹을 동안에도 인을 거스르지 않으며 다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인에 머물며, 엎어지고 자빠지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인에 머물러야 한다.” 인은 늘 우리 곁에 있는, 우리가 늘 행해야 할 인륜(人倫)이다. 仁 의 실천방법은 『논어』 「옹야(雍也)」에서 “무릇 어짊이란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부터 세워주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먼저 남부터 그의 목적을 달성케 하는 것이다.” 夫仁者 己欲立而立 己欲達而達人(부인자 기욕립이입인 기욕달이달인).
작금의 상황을 보건데 옛날의 상황과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남을 억누르고 자신이 입신양명하려는 게 과연 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는 빙충맞은 이들이 하는 희대의 코미디인 것이다. 얼마나 남을 밟고 자리에 오르려는 짓인가! 자신의 생각과 입에 맞지 않으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틈새를 파고드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너무 한다. 오지랖이 넓으면 눈에 뵈는 게 없다. 눈에 뵈는 게 없으면 희뿌연 안개만 드리운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된다. 눈앞의 이끗에 가리면 모든 게 구부러지게 보이고 삿된 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고샅에서는 마을 앞에 훤히 뚫린 큰 길을 보지 못한다. 이게 늘 문제이다.
인간의 얕은 세상보기를 설파한 대목이 『한서(漢書)』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보인다.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고, 표주박으로 바다의 물을 헤아린다, 라는 대목이다. 以管窺天, 以盠測海(이관규천, 이려측해). 대롱으로 하늘을 다 볼 수는 없다. 표주박으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은 작대기로 큰 종을 치려하면 잡음만 일고 도리어 작대기는 부러지게 마련이다. 아직도 작은 작대기로 큰 종을 치려는 무지렁이 같은 이들이 있고, 드넓은 하늘을 대롱으로 보려하고 바가지 하나로 세상의 민심(民心) 퍼 올리려는 이들이 있다. 아흐, 미련한지고!
첫댓글 심오한 뜻이 있는 좋은 글을 두번 읽어 봅니다.
작금의 어지러운 세태를 빗댄 정곡을 찌르는 글!
일가님들 위해서 좋은 글 올려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미진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네

정말 좋은 글이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자료글 올려주심 감사드리고 잘 읽고 갑니다 
거운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족한 내용의 글입니다.
평안한 주말 맞으세요.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되겠어요 ~~^*^
부족한 글솜씨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