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는 엄격하고 나머지는 관대하게
로마서 14:18~20,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찬송가 250장(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전체에서 믿음의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고 용납하라고 가르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의 결정이나 태도에 대하여 비판 대신에 받아주라고 길게 설명합니다. 당시 음식 규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절기 문제에 대하여서 여러 의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한 문제는 자유롭게 자기의 마음으로 확정하고 각자의 믿음대로 하면 족하다고 가르치면서, 서로 다른 문제로 비판하고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지켰으면 참 좋았겠다는 역사적 장면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이 한참이던 유럽 기독교계에서 성찬론에 대한 지도자들 간의 이견이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칼빈과 찌빙글리 세 사람이 모여서 성찬식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화체설이라고 해서 실제로 예수님께서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로 변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 자체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떡은 지금도 신부님들이 성도들에게 하나씩 그 입에 넣어주지만 잔은 나눠주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잘못 받아 흘리면 예수님의 피를 흘린 것으로 여겨 불경죄를 범할까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인식을 반대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공재설이라고 하여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에 주님께서 영적으로 전후좌우에, 위와 아래에 함께 계신다고 보았습니다. 쯔빙글리는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상징적으로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보여준다고 보았습니다. 칼빈은 성찬식에 영적으로 주님께서 임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세 사람이 모여서 심각한 토론을 하였으나 결국 의견일치를 못 보고 천주교와 싸우는 연합 전선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 헤어졌습니다. 성찬에 관한 논쟁은 중요한 신학적 논쟁이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가지고 천주교와의 종교적 대응을 연합하여 다루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연합하였다면 더 좋았을 뻔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만한 신앙적 본질의 문제가 아니면 각자의 믿음의 확신에 따라 행하면 족합니다. 서로 비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감리교는 자유의지를 강조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예정론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어서 독설적인 비난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의 친구이자 후배인 죠지 휘트필드는 웨슬리의 의견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감리교 운동이 개혁적인 감리교와 웨슬리적인 감리교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휘트필드는 존 웨슬리와 개인적으로는 화해하고 서로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휘트필드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천국에서 존 웨슬리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오. 나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깜짝 놀라며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 휘트필드는 이런 말을 계속했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주님과 너무 가까이 계시기에, 나는 너무 멀어서 그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휘트필드가 존 웨슬리를 존경하고 사랑하기에 이렇게 겸손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비록 신학적으로는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했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휘트필드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존 웨슬레가 그의 장례식에 찾아와 설교를 하면서 휘트필드를 기렸습니다. 이 두 사람의 태도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다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것은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르기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질적인 신앙의 문제에는 결코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복음 진리를 믿는 것 외에 할례도 행하고 율법의 규례들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을 주는 거짓 교사들의 활동 소식을 들었을 때에 편지를 써서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8~10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본질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구원 진리는 거기에 무엇인가 빼거나 더하면 안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동일한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 절기나 음식 문제나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는 나와 다를지라도 이해해주고 화평의 일에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화평하고 덕을 세우는 말과 행실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자는 신앙의 본질에서는 엄격해야 합니다. 단호하고 분명하며 결코 양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제에서는 관대해야 합니다. 너그러움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굳건한 여부가 다르고 생각과 기질도 다릅니다. 자라온 환경들도 다릅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 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씩 다르고, 주님을 섬기는 방식에서도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할 때에 약한 자를 돕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서로 발을 맞추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