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7/29)
-고행과 고난-
먼저 ‘고난’과 ‘고행’의 뜻에 대하여 국어사전에서 확인해 보면,
‘고난’은 ‘괴로움과 어려움’이며 ‘고행’은 ‘육신을 일부러 고통스럽게 하면서 그것을 견뎌내는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받는다고 하여서, 성도가 행복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도는 고난 중에서도 행복을 누리며 또한 고난없이 예수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자들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을 뜻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기에 행복한 삶이 아닌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고행이지 고난은 아니다.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고난의 길은 갈지라도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행복을 누리는 자들이 많다. 바울 역시 그랬다.
‘이렇게 살아야 신앙이다’는 것으로 자기 규칙과 틀에 매여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고행이지 고난은 아닌 것같다. 그것은 구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인간은 기회만 되면 규칙을 세우고 틀을 만들어 자신을 그 속에 가두고 그 틀 안에 존재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만족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탄이 성도들로 진리로 인한 자유를 잃게 하고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의식에 매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 고행을 함으로써 죄의식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생각을 주므로 자기 자신의 행위로 구원에 이르고자 하게 하거나 자기 의지로 주께 가까이 간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우리 성도는 예수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 증거가 ‘세례’요 나의 입에서 나오는 ‘아바 아버지’이다. 예수님과 한 몸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영생과 천국 백성이 된 성도가 이 땅에서 갇힌 유일한 곳은 ‘예수 안’이다.
예수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난은 육체적으로는 힘겨울지라도 내면에는 즐겁고 기쁨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께 받는 고난은 곧 예수님과 한 몸임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 백성이다는 확증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인간은 끝없이 하루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존재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고자 고행과 하는 척을 하게 된다.
참 신앙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 자신은 부인하고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것이며, 행위를 우선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예수께서 나의 중심인지 일상에서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며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