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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14. 파스칼의 명상록「팡세」
“신없는 인간의 비참과 신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관 제시”
신음하며 추구하는 모든 신앙인들의 벗
저자의 삶안에 과학과 신학이 한쌍이뤄
A)『나는 신음하면서 추구하는 자들만을 시인할 수 있다』파스칼(Pascal)의 생애와 사상을 일관하는 이 단장은 39세의 짧은 생애로 진지한 과학자의 삶에서 경건한 신앙인의 경지에 이른 그의 근본적 삶의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1623~1662) 그의 불후의 명상록 「팡세」 (Pensees) 라는 한 권의 책 만으로도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많은 벗들의 가슴에 길이 살아 있다.
과학도로서의 놀라운 실험과 발견, 철인으로서의 예리하고 명철한 지성, 그리고 신학적 논쟁의 결과로서의 「한 지방인에의 서한」 (Les Provinciales)이란 18통의 재치와 여유, 그리고 가까운 벗들에게 남긴 우정어린 서신들과 소품들 안에 서린 그의 메시지들은 신음하며 겸허하게 추구해 간 한 신앙인의 값진 사상적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성과 마음, 과학과 신앙은 그의 생애에서 불가분의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원추곡선론(1639) 계산기의 제작 (1645) 토리헬리 진공의 실험 (1646) , 싸이크로이드 연구(1658) 등의 과학적 업적은 지칠줄 모르는 그의 강한 지성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은총의 해』라고 스스로 고백하던 1654년 결정적 회심 이후의 파스칼은 1646년 쟝세니즘 신앙에 귀의한 최초의 회심 때의 파스칼은 아니다.『확신, 환희, 평화…라고 외치는 은총의 체험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호교론 곧「팡세」를 구상하기에 이른 주춧돌이 되고 있다.
수년에 걸쳐 사상을 집약하고 구상 집필 중이던 그의 호교론은 천 여개의 무질서한 단장들로 그 자체 압축되고 요약된 형태로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최근의 여러 평가들은 이문제 이해에 많은 빛을 가져다 주었지만 미완성 단편들의 집합에서 유래되는 근원적인 난해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 그의 명상록의 (Pens'ees)원문에 가장 충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Lafuma편찬에 따라서 그의 메시지의 골자를 요약해 보기로 한다.
B)『사람들은 종교를 멸시한다. 이를 혐오하고 그것이 진실의 것일까 두려워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종교가 우선 이성에 모순되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며 따라서 존경할 만한 것임을 알려주고 마땅히 경의를 갖도록 한다. 다음으로 종교가 사랑할 만한 것임을 보이며…』그의 명상록의 계획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들, 신앙을 이성에 복종시키기를 거부하는 무신론자 또는 불신자에 대하여 종교를 변호하고 나아가서는 그들로 하여금 이를 수락케 하는데 목적이 있다.
명상록의 윤곽은 크게 두영역으로 구분되고 있다.
제1부에서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을, 제2부에서는 「신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을 제시한다.
즉, 제1부는 인간성이 타락해 있다는 것은 그 인간성 자체에 의해 증명하고, 제2부는 이 타락에서 일으켜 줄 구원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성서에 의해서 입증하려는 것이다.
실존적 현상을 통해서 종교적 구원의 필연성을 밝히고 성서에 의해 역사에 근거한 사실을 통하여 구원의 진실성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제 1편에서 11편에 이르기 까지는 인간과 최선의 문제, 그리고 전반부의 결론을 맺고 있다.
인간의 문제에 있어 파스칼은 두개의 상반된 쌍을 이루는 비참과 위대를 제시함으로써 모순적 존재임을 밝히며, 신 없는 인간의 비참한 의식속에 머무는 몇몇 어둠의 주역들을 그리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인간은 감각에 기만당하고 오류를 범하는 공허한 존재요 진실을 등지고 항상 허구한 외관에 잡혀있는 실존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자랑하는 이성은 무모한 상상력에 눌려 도처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저 재판관은 옳은 재판을 하리라』
『저 목사는 반드시 진리를 말하리라』
『저 학자는 대단한 천재이리라』
『저 부호는 반드시 행복을 누리리라』
사람은 세상에 지배되어 인간에게 편견을 갖고 선임관념을 만들고 이성의 눈을 흐리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신 만을 사랑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애심과 그의 딸』이라고 일컫는 허영심 이들 자매는 인간 행동의 온 구석에 드리우고 있어서 『군인도 포졸도, 요리사도, 하역인도, 철인 그 누구도 예외없이』사소한 남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인간의 이성이란 갖가지 기만적인 세력에 매여있어서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은 물론 나아가서는 그 진실을 피하는 극도의 모순을 연출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인간성을 예리하게 제시한 그는 인간의 사회학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제도 및 법질서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여기서도 그가 발견하는 것은 비참한 의식의 연속적인 흐름 뿐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정의가 얼마나 허망하고 그 법률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으며 인간의 진리가 얼마나 우연한 것인가를 신랄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위도 3도의 차이로 뒤바뀌는 법』『한 자오선으로 판가름 나는 진리와 정의』가 무슨 보편성을 지녔는지를 묻고 있다.
『기묘한 정의여, 한 줄기 강에 의해서 제한을 받다니』『피레네 산맥 이 쪽에는 진리인 것이 저 쪽에는 오류이다』
정의를 발견할 수 없어서 힘을 발견하고 옳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수의 힘 때문에 따르는 현실적인 사회의 모순 속에서 그는 진정한 정의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어디서나 비참과 마주치면서 인간 근본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는 그에게 펼쳐지는 휴식과 소란, 끝 없는 공허와 동요가 곧 인간의 진정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인간의 공허와 비참을 느끼는 의식은 곧 인간의 위대를 입증한다고 주장하므로써 새로운 차원의 길을 열고 있다. 『인간은 비참하다. 그러나 그 비참을 아는 까닭에 인간은 위대하다』
결국 인간이란 비참과 위대의 풀수 없는 혼합, 모순,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속에 허우적거리는 극적존재로 그리고 있다. 인간사고의 가장 위대한 철인들은 독단론과 회의론이란 두 유형으로 갈아 입고있다.
전자는 「인간의 위대함을 주장한 점에서 위대하지만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였고, 후자는 인간의 결함과 무력을 의식한 점에서는 위대했지만 본래의 위대함을 무시함으로써 인간을 짐승의 위치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서로 원을 그리며 인간의 한 면만을 고수하는 이 두 철학은 인간은 무한히 인간을 넘어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파스칼 인간관의 특징은 인간은 인간자체로서 설명될 수도 충족될 수도 없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밝힌 파스칼은 이 새로운 조명 아래서 최고선 곧 행복의 문제를 제시하고 어디서 이 해답을 찾을 것인지를 문제삼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불행을 생각케 하는 휴식이다』도박이나 사냥등을 그처럼 추구하는 것은 「의식의 마비」가 인간행동의 근본 원리 이기에 진실에서의 도피야말로 행복을 위해 연출된 인간의 전부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진리와 행복의 탐구에 있어서 철학자에 실망한 파스칼은 그리스도교에서 그 해답을 찾자고 권하고 있다.『그리스도교는 이렇게 가르친다. 인간은 과거 위대한 순수 상태에 있었으나 죄로 인하여 그상태에서 타락하였다. 만약 타락하지 않았다면 완전한 진리와 행복을 누렸을 것이요, 만약 원래부터 타락한 것이였다면 진리와 행복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갖지 못했으리라.』이렇게 볼 때 인간의 위대함은 실재의 능력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상실한 것에 대한 희미한 자취만이 남아 있다는 결과가 된다.
비참이라는 현실만이 인간의 실재요 위대는 다른 차원에 속하고 있다. 이 비참은 본능적이고 육적인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깊은 의미에서 구약의 인간관과 일치하는 의식적이고 전적인 존재로서의 비참이다. 그러기에 이 인간 위에 내리는 신의 은총으로서의 위대함은 인간 자체로서가 아니라 초월성의 개입에서 그 해답을 찾음으로써 그리스도교야말로 가장 『이치에 합당하다』는 논증에 이르고 있다.
결국 파스칼이 전반부에서 인간 비극에 대한 모순을 극도로 노출시킨 것은 비극 그 자체 보다 그뒤에 맥맥히 흐르는 신에 대한 필연적인 요구와 그 가능성에로의 방법적 접근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 1부에서 인간을 실존적 한계 상황에 직면케 한 그는 인간 구원이 인간의 손에 있지 않다는 한계를 인정케하고 밝힘으로써 신앙을 이성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을 설득시키고 제2부에서는 성서를 통하여 그 역사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느낌의 영역인 마음의 관점에서 신앙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새로운 차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논증을 받아들이기 위한 장으로서 12편에서 17편에 이르는 분류하기 어려운 단장들은 이 필요에 답하는 것으로서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를 이루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파스칼은 무신론자들에 대해서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적 시도의 장으로 「내기」(Pari)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미 배에 올라타고있는」삶은 각 순간마다 의지의 결단을 강요한다. 선택은 필연적인 것이기에 신의 존재에 건다는 데에 무한히 유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내기의 이론은 이성에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서 무한한것이 있음을 시인하며 그에 굴복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교의 본질은『이성을 굴복시켜 이를 사용하는데 있다』
파스칼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은 인간조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자아 비참의 인식이다. 비참을 인식하고 무한 앞에 굴복하는것 신앙하는 길에 있어서 갖가지 장애물을 제거하고 은총의 터를 닦음으로써 신과의 결합을 가능케하고 구세주의 출현을 영접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18장에서 부터 파스칼은 그리스도교를 입증하는데 온갖 노력을 집중시키고있다. 그리스도교는 「빛과 어둠」「자연과 은총」을 그안에 포함하고 있어 진실된 마음의 눈으로만 그 어둠을 뚫고 그 본질을 깨닫는다고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의 모호한 존재방식은 바로 자연 속에, 역사 속에, 인간 속에, 살아가는 「숨은 신」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전체가 「하나의 표징」으로 입증되며 메시아는 영적 세계의 왕으로 소개함으로써 구약의 예언자들은 진정한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의 상징성을 드러내고 우리 가운데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성을 입증하고 있다.
사천년에 걸쳐 예언되어 온 그리스도의 생애를 신비적인 열성으로 증거하고 있는 파스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최후의 예언을 성취시킴으로써 교회의 모든 외적 증거는 마음의 눈으로만 투시할 수 있는 내적 위대함으로 이 세상을 구하는 유일한 길로 제시하고 있다.
23장부터 「생의 세 질서」의 주제로서 세상에는 각기 차원을 달리하는 세개의 질서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육의 질서, 정서의 질서, 사랑의 질서」가 그것이다. 아무리 큰 육적 위대라 할지라도 정신의 가장 작은 움직임을 낳을 수 없고 육과 정신의 온갖 위대를 합한다 하더라도 사랑의 한 원자도 이루지 못한다. 예수는 곧 사랑의 질서요, 이 사랑이야말로 만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숭고한 세 질서의 표현은 그리스도안에 구현된 사랑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또 영혼의 참된 목표로 인정하는 그의 신앙 고백이며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명시한 것이기도 한다.
이제 신앙으로 전환한 회심자들의 생활 지표는 분명해진다.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의 순종, 그리고『오직 신 만을 사랑하고 자신만을 미워하는』구도자의 겸허한 「자세」여기에 신앙과 은총의 빛이 서리고 신과 함께 있는 인간의 위대함과 참다운 행복의 서광이 비추고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종착역에 이른 호교론적 명상록의 결론, 증거란 아무리 명료한 것이라도 그 자체 충분한 것이 못된다고 단언하고 있는 파스칼은 자신을 알고 스스로 낮추어 신 앞에서 은총을 기다리는 것, 여기 이성의 존엄과 역할이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위해 신의 도움을 구하자고 우정어린 호소를 하고 있다.
파스칼은 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종교의 진실성을 논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원리에서 출발하지 않고 구체적인 인간현실 그 자체로서 확인하고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 현실의 답사는 그 자체를 넘어 또하나의 현실과 관련을 맺으므로써 비참의 주제는 필연적으로 위대의 주제와 결부되고 자연은 은총과 교차하며 대응을 이루고 있다.
결국 파스칼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의 간섭에 놓임으로서 존재의 의미와 목적이 주어지는데 팡세는 인간학에서 신학에로의 단계적 이행으로 「인간의 인식에서 신에로의 이행」이라는 독창성과 위대함을 지니고 있다.
인간과 신, 자연과 은총이라는 이중적 구조 안에서 외적인 모든 현상은 내적이며 초자연적인 암시로 생각하는 파스칼은 자연 안에서 초자연적인 세계를 지향하여 계속 추구해 나간다는 풍부하고도 독특한 신앙관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와 같이 우리의 소명을 다해 그리스도의 충만함 가운데 완벽한 인간성을 달성할 수 있을때까지 신음하며 신을 추구할 때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할수 있다고 신뢰하고 있다.
호교론자의 인간적 노력으로 성실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상을 향하여 끝까지 신음하며 추구해 온 파스칼, 그는 시대를 초월한 살아있는 복음의 사도요 모든 신앙인들의 벗이다.
『인간 혼의 위대함이여…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하여도
저는 당신을 알았습니다. 환희, 환희, 환희의 눈물…』
김길자 수녀 (예수성심전교수녀회수녀·효성여대 불문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