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공중에 흩날리게 하였고, 쌀쌀한 겨울 날씨에 새까만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내 팔과 다리는 찬 바람이 칼날같이 불어와 살을 에는 듯 했다.
내 온 몸에 전해오는 감각들마저도 이젠 싫다. 다 짜증이 나고, 질리고 그냥 정말 싫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도 싫었고, 그냥 한시라도 빨리 여기에서 뛰어내려 잠시라도 날아보고 싶다.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건 그게 다이다.
늘 나를 괴롭히는 이 세상이 싫었다. 늘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이 싫었고, 늘 내게 강요만 하고 이거해라 저거해라 명령하는 사람들과 세상이 싫었다.
난 자유롭고 싶은데…왜 사람들은 날 속박하려고만 하는 걸까.
그저 일등. 일등. 일등... 왜 일등이 아니면 안 되는 거지? 어째서 ‘최고’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그래서.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누가 공부를 안 한데? 공부를 안 한다고 했냐고! 해. 한다고, 공부 한다고.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공부하라고 설교 같은 거 하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서 다 한단 말이야.
“하아.....”
새 파아란 하늘이 보인다. 두둥실 두둥실 뭉게뭉게 떠있는 하이얀 구름도 보인다. 뭉실 뭉실 떠내려가는 구름. 한 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구름..
‘여유로움’. 나는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 것. ‘난 여유로워’라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바쁘게 지내고 있는 이 꽉 막힌 세상.
나는 정말........이런 세상이 미치도록 싫다.
“안녕........”
그래, 이제 정말로 안녕. 갑갑한 세상, 이젠 안녕-.
“누구한테 인사한거야?”
놀랐다.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누군가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정말 내게 말을 걸어 온 게 맞을까? 아파트 옥상 난간 밖으로 나가 서서 그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 대고 있는 우리 아파트에서 꽤나 젊은 남자 관리인이 서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정말 놀랐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은 시간. 정말 깜깜한 와중에 나를 어떻게 발견하고 올라 온 건지....
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무덤덤하게 대답해 주었다.
“세상.”
“........세상-이라........”
그리고 길게 내뿜은 담배 연기.
난 관리인 남자가 물고 있던 그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주시하고 있었다.
곧, 그 사람이 담배 필터만 남겨 놓고 깔끔하게 담배를 발로 지져 꺼, 마무리를 짓고는 픽- 웃으며 내게 말해왔다.
“안 가?”
“......?”
“저어- 밑으로.”
“.....”
“아까 세상한테 작별 인사 했잖아. 안가냐고.”
“.....”
난.........
........난 왜 저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죽기 위해서 여기에 섰는데. 어째서.......
“밀어 줄까? 두려우면. 정 무섭고 힘들면. 도와줄게. 기꺼이.”
그 남자의 말은 조금 섬뜩했다. 나는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 사람이 오기 전에는 그냥 확 뛰어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곧은 마음이었다. 하지만......저 사람이 오고 나서 조금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조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가 나를 밀어주는 것을 허락했다.
뚜벅뚜벅- 그 남자의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고, 곧 그 남자는 내 어깨를 와락 붙잡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 어깨를 붙잡은 그 남자의 손에 갑자기 큰 힘이 들어가더니 나의 몸은 옥상 난간 안으로 들어가 그의 품에 안겨 엎어지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남자는...나를 꽈악 껴안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죽는 줄 알았어.”
“......”
“네가 정말 죽은 줄 알았어. 난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어.”
정말이었다. 그의 가슴은 정말 100M 전력질주 한 것 마냥 숨 가쁘게 뜀박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그의 따뜻한 품에 안긴 그 순간, 눈물을 쏟아 내버렸다.
........무서웠어........무서웠어.................
정말로 정말. 진짜로 죽고 싶어 미치겠는데.....이런 갑갑한 세상 따위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살아갈 의미도 없는데. 정말......무서웠다.
.....인간이라는 건, 이렇게 한 없이 나약한 존재구나. 정말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약한 인간 중에서도 최고로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알았다.
“....왜 구해 주신 거예요. 도와 주신다고 했으면서.....나 밀어 준다고 했으면서.....
나 정말 그 순간 아니면 더 이상 죽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단 말이에요........이제 정말.................”
“.........사랑하니까...”
“.....”
“널 많이 사랑하니까....그러니까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난 이 사람을 오늘 처음 보았는데 이 남자는 나에게.....사랑한다고.....이야기 한다.
“쭉..... 널 지켜봤어.”
“....”
“그때 마다 너의 눈동자에서는 삶의 의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기계처럼.....그래, 기계 같이....
그래서 늘 너한테 신경이 쓰였고 어느 날 갑자기 너의 그런 축 쳐진 뒷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아파왔다. 그제서야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죽지마......죽지마라.........”
따뜻하고, 정말 애절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들어온 목소리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눈물을 나오게 하는 그런 목소리.
그 사람은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작게 웃어보였다.
"내가 네 삶의 이유가 되면 안 될까?"
"....."
"네가 내 삶의 이유가 되면 안될까?"
기쁘다. 정말로 행복하고 정말로 기쁘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사랑해도 될 것 같고 내가 의지 해도 될 것 같다.
정말로 믿음직스럽고, 나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
난 그를 밀어 내고 벌떡 일어 났다. 동시에 어질-하는 현기증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그에게 꾸벅,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옥상 난간 밖에 기대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에게서 난 멀어져갔다.
그 사람이 나를 붙잡지 못한 것은 단지....'머엉'했기 때문이 아닐까.
"고맙습니다."
고개를 살짝 돌아 그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미안해요........
"........안녕히 계세요."
".....아......"
펄럭- 내 원피스 자락이 내 머리카락과 함께 흝날리며 그대로 저 아래로. 아래로.....
나는........날았다.
"안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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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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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 같이 바보 같은 애 잊고.....좋은 사람 만나세요.
....저 같이 미련한 애 생각하지 마시고, 금방 잊어버리시고 훨씬 더 멋진 여자 만나세요.
엄마, 아빠, 모두들. 미안해요.
저는...............이미 저를 버렸어요.
저는 이미............이 세상을 등지고 날았습니다....
.......모두들 잘 사세요. 제 몫까지.......
첫댓글 ● 아. 결국은 죽어버렸군요ㅜㅜㅜ 죽이지말죠, 드디어 아군이 나타났는데...너무안타까워요. 잘읽고갑니다. 작가님, 좋은하루 보내시고 앞으로도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