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전진, 전진이다!
문호 괴테는 노래했다.
"자, 새로운 생(生)을 위한 발걸음을 / 자, 내디뎌라 / 밝고 맑은 마음을 지녀라. /
그러면 새로운 노랫소리 / 거기에 울려 퍼지리라!"
지금, 전 학회에 천둥소리와 같은 희망찬 새 애창곡이 만들어져 발표되고 있다.
9월 본부간부회에서는 닥터부의 '생명의 세기', 단지부(團地部)의 "빛나라 '행복의 성'",
그리고 스포츠부의 '용승(勇勝)의 노래'가, 약동하는 노랫소리로 선보였다.
학회가와 더불어 환희와 승리의 춤을!
이것이 광선유포(廣宣流布)가 전진하는 실상이다.
이 1978년 당시, 제1차 종문 문제의 흉포(凶暴)한 폭풍이 불어닥쳤다.
대저 창가학회의 정성어린 외호로 대흥륭을 이룩한 종문이 아닌가.
그 종문이 학회를 반역한 악인들과 결탁해서 학회를 공격했다.
이 얼마나 광기 어린 사건인가. 그들의 소행은 창가 사제의 유대를 파괴하려는 모략이었다.
학회원을 노예처럼 굴복시키려는 책략이었다.
전국 각지의 절에서는 냉혹하고 무참한 중들이 학회원을 몹시 괴롭히며 박해했다.
그래도 우리 동지는 분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너무나 부당한 악구 중상을
참고 견디며 연조 대성인에게 직결하는 '창가의 깃발'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야말로 '경훼매리(輕毁罵詈)'의 박해를 참은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수행이었다.
은사(도다 선생님)는 "창가학회의 조직은 도다의 목숨보다도 소중하다!"라고
사자후하셨다. 이 최고의 사제(師弟) 결합을 비열한 악당들에게 짓밟혀야 되겠는가!
이 와중에 나는(이케다 선생님) 간사이의 노래 '상승의 하늘'을 비롯해
방면과 현의 애창곡을 계속 만들었다. 학회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동지를 격려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 우리는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말씀대로
광선유포를 위해 '사제불이(師弟不二)', '이체동심(異體同心)'으로 싸우며 나아가야 한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이 외침을 담아 애창곡을 만들었다.
"천둥이여, 쳐라. 그러면 나는 더욱더 강하게 외칠 테니까."
문호 빅토르 위고가 한 불요불굴의 선언이다.
대음악가 베르디의 명작에 이탈리아 팔레르모를 무대로 한 가곡이 있다.
내가(이케다 선생님) '명예커뮤니케이션학박사' 학위를 받은 팔레르모대학교를 에워싼
보석과 같은 지중해다. 13세기, 사악한 권력자에게 지배당한 팔레르모를 되찾기 위해
용자가 투쟁을 맹세하는 가사의 한 구절이다.
"아, 모욕을
언제까지 참으리오"
"자, 서라 일어서라
승리를 향해
자, 서라 번영과
승리를 향해"
권력은 어차피 '일시적인 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체를 간파하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용기 있는 민중의 노랫소리 앞에는 덧없이 사라진다.
성훈에는 "각자는 사자왕(師子王)의 마음을 발휘해서 남들이 아무리 위협할지라도
겁내지 말지니라." (어서1190쪽)는 말씀이 있습니다.
'규슈 노래'가 완성된 그날 밤, 지바현 다테야마에서는 간토에서 제1호가 되는
'지바의 노래'('저 멀리 아침 해가')가 보소권 총회에서 당당히 대합창되었다.
이 노래는 내가(이케다 선생님) '간사이의 노래'와 동시 진행형으로 작사한 노래로
이미 지바에 보낸 것이다.
몸은 이동하는 열차에 있어도 마음은 사랑하는 시코쿠에 있었다.
'시코쿠의 천지는 우리 천지'라고 구술을 거듭해서 완성했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필사적이었다. 저녁시간 요나고문화회관에 도착해 곧바로
'시코쿠의 노래'를 현지 간부에게 전했다.
돗토리 방문은 5년 만이었다.
회관 정원에서는 벗의 진심을 비추듯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며 추는,
환상적인 아름다운 춤을 바라보며 환담은 활기를 띠었다.
그 사이에 곡을 붙인 '주고쿠의 노래' 테이프를 들으며 회중전등 불빛 아래서
가사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몇 군데를 수정해 드디어 완성했다.
울려 퍼지는 환희의 주고쿠에
광포의 출범도
활기차게
… … …
뛰어 나가자
손과 손을 잡고
"어떤가? 주고쿠 동지가 기뻐할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웃는 얼굴이 빛나며
박수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가사 작업은 회관 로비에서, 이동하는 차에서, 동지와 간담하는 자리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회원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떠올리며 노래를 만들고,
시를 지었다. 그리고 바로 동지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금 밖에 없다! 지금 이때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연달아 노래와 시를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적이 있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즉석에서 대답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동지를 격려하겠다고 진심으로 마음을 정하면!
진심으로 마(魔)를 잘라 버리겠다고 필사적으로 투쟁하면!"
그대도 서라
나도 나아가리라
사제불이
광선유포는
참으로 존귀하다
삼세(三世)까지
함께 광선(廣宣)
행복의 노래
"늘 전인(全人)으로 행동한다면 하나하나의 행위와 말이 얼마나 힘이 있겠는가."
미국 사상가 에머슨이 외친 날카로운 말이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필사적이었다. 진지했다. 전심전력을 다했다.
연일 혹서였다. 그 더위에도 동지를 지키고 격려하기 위해 한층 더 뜨거운
투혼을 불태우는 매일이었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시코쿠연수원에서
'도쿄의 노래'를 완성하는 데도 전력을 쏟았다.
어떠한 폭풍이 불어 닥쳐도 명랑하게 불요불굴의 마음으로 싸우며 전진해야 한다.
나와(이케다 선생님) 함께 사제불이의 '이 길'을!
'이 길의 노래'를 함께 노래하면서 우리 동지의 얼굴은 빛나고
사제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불전에는 설해져 있다.
"반드시 마음의 견고함에 따라 신(神)의 수호도 즉 강하니라." (어서 1186쪽)
성훈에는 씌어 있다.
"교주석존을 움직이시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초목이 있으랴,
소란하지 않는 물이 있을 손가." (어서 1187쪽)
광선유포(廣宣流布)를 맹세한 필사적인 기원의 일념은 불천(佛天)을 움직인다.
일체가 제천선신의 움직임이 된다. 이것이 불법(佛法)의 진수다.
제천을 질타하고 엄명할 수 있는 강한 대확신의 일념이 바로 '절대 승리의 신심'이다.
"노래를 만들었어요." 간사이를 비롯해 내 연락을 받은 각지의 리더들은
'대체 어느새'라고 놀라며 감탄했다.
물결이 치지 않는 수면 아래, 선수를 치며 승리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시켜야 한다.
약2주 동안 사자분신한 여정은 막바지를 맞았다.
직접 만난 동지는 2만 수천 명에 달했다. 가정 방문도 개인 지도도 가는 곳마다 거듭했다.
간사이는 일어섰다. 주고쿠도, 시코쿠도, 규슈도 일어섰다.
그리고 주부도 일어섰다. 씩씩한 노랫소리는 사제의 마음을 잇고
전격적으로 동지를 고무시켰다.
이 인생
결코 지지 마라
승리하기 위한
창가의 신심
결의도 새롭게
8월 전반에는 가나가와에 '아 태양은 뜬다', 호쿠리쿠에 '아 서원의 노래',
그리고 8월 후반에는 홋카이도에 '아 공전(共戰)의 노래', 나가노에 '시나노의 노래'를 증정했다.
가을 10월에는 '어머니의 노래' (부인부), '개가의 인생' (이바라키), '광포의 깃발' (사이타마),
'지용의 깃발' (세타가야), '설산의 길' (니가타).
'창립의 달' 11월은 '맹세의 벗'(도치기), '영원의 청춘'(지도부),
'문화 향기로워라' (야마나시), '환희의 성 빛나라' (센슈), '광포의 종'(군마),
'시즈오카 건아의 노래'(시즈오카).
이해 내가(이케다 선생님) 만든 노래는 남녀청년부와 대학부, 부인부, 장년부의 노래를 비롯해
방면, 현, 구의 애창가, 지부가(네리구마의 '기타마치 광포') 등에 이르기 까지 총30곡에 달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신생 규슈의 노래 '대규슈의 벗은 당당하게'를 선사했다.
홋카이도의 노래는 이번에 제목을 '삼대성(三代城)의 노래'로 바꿔 일부를 가필해
새로운 방면가로 다시 태어났다. 상쾌한 가을의 홋카이도 천지에 우리 동지의
의기 드높은 노랫소리가 울리고 있다.
권력의
허무한 관(冠)
썩지 않는
민중 상찬의
왕관 불멸하도다
지난해(2007년) 10월, 나는(이케다 선생님) '세계시가협회'에서 영광스럽게도 '세계민중시인'
칭호를 받았다. '계관시인' '세계계관시인'에 이은 영예다.
인도의 첸나이에서 열린 수여식에서 대시인인 스리니바스 회장이 쟁쟁한 내빈 700명 앞에서
말씀하셨다. "이케다 박사는 '세계 민중'에게 용기와 희망을 계속해서 보내고 계십니다.
박사의 시는 이렇게 혼을 뒤흔듭니다. '우리는 전진한다! / 착실하게 전진한다!'라고"
지금은 고인이 된 참으로 고마운 박사의 신뢰와 격려에 부응해 나는(이케다 선생님)
세계 민중의 전진 승리의 시가를 지어 계속해서 노래할 결심이다.
"나는 전투에서 이겼다. '라 마르세예즈'가 우리를 지휘했다."
이 말은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격동기에 어느 한 장군이 자랑스럽게 적은 글이다.
본디 이 곡은 1792년, 무명의 한 장교가 싸움에 임하는 열정을 담아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낸 노래다.
대혁명기인 6년 동안 약2300곡의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라 마르세예즈'라는
노래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우리 창가(創價)의 대전진에도 같은 방정식이 있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자주 학회가 지휘를 했다. 전국 각지에 그 황금의 추억이 있다.
오키나와본부 준공식(1962년)에서 부른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도 잊을 수 없다.
식장 밖에 있는 벗을 위해 몹시 무더운 날씨에도 옥상에서 지휘했다.
1969년 12월, 아픈 몸을 이끌고 방문한 와카야마에서는 동지가 부르는 '다케다부시' 대합창에 맞춰
춤을 췄다. 모두가 기뻐한다면 기꺼이라는 마음으로 큰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듯!
창가 정의의 묘음(妙音)을 울리는 곳, 음험한 악당들은 부들부들 떨고 사악한 어둠은 타파된다.
학회가를 명랑하게 부르며 전진할 때, 사제 공전의 발소리는 승리를 향해 드높이 울린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기세 등등한 새로운 노래가 계속 탄생하는 것은 학회가 발전할 승전의 서상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불가사의하게도 신세기, 신시대를 장식하는 새로운 노래가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가나가와의 '승리의 무지개', 신 '창가반가', 신 '아성회가', '농어촌부의 노래',
'사회부의 노래', '청년교육자의 노래', '학술부의 노래', 신 '세이쿄신문사가'.
진지하게 작성해 도전한 벗의 기원과 분투를 찬탄하고 싶다. 특히 격무 속에서
작곡, 편곡 그리고 합창, 녹음 등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해 준 우리 음악대 등
창가의 위대한 음악의 영웅들에게 우리는 최경례를 하고 싶다.
추악한 책략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에서 우리 학회는 늘 상쾌한 노랫소리와 함께 승리했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위풍당당한 노랫소리로 연속 승리해야 한다!
명랑하게
낙원의 노래
부르며
용약 환희하며
상승(常勝) 장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