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초 (禁 草)
이 미화
초록이 지쳐갈 즈음이면 날마다 나를 심란하게 하는 그리움이 있다. 아버님의 산소가 그 대상이다.
처음 산소를 찾았을 때를 생각하면 오랫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하여 잔디보다 잡초가 더 많았다. 잡초를 뽑아내고 나면, 산소 봉분에 흙이 드러나 비에 다 쓸려져 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 잡초를 가을까지 두면 잔디가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서 싹이 돋아날 무렵, 한식 때와 칠월 흐린 날을 잡아서 하루, 추석 전에 미리 성묘를 하면서 한번, 이렇게 한해에 세 차례 잡초를 뽑아냈다. 풀의 종류는 많기도 하다.
작년에는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산자락을 오르내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못다 피운 꽃봉오리까지 작은 포기도 남기지 않고 뽑아냈었다. 근접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자라던 화초들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뽑혀져 나가야 했었다. 잔디를 살려 봉분을 보호하려면 노란색 꽃이 보기에 좋아도 뿌리도 남기지 않고 뽑아내야만 했다. 미안한 마음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내 본분이거늘 ‘다시는 이곳에 네 이쁜 모습을 뽐내려 하지 말아라.’ 멀찌감치 던졌다.
그렇게 돌보아 오고 있는 것이 삼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원주 태장동 동사무장님으로 계실 당시 돌아가셔서 시립 공원묘지에 모셔졌다. 경사가 가파른 자리라서 더 신경이 쓰이는 위치이다.
산소의 어느 자리에 어떤 잡초가 자라고 있는지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힘이 센 억세며, 가시 가득한 산딸기나무, 잔디의 천적인 쑥, 잡나무는 뽑아내기가 더 힘들다. 쪽수리 나무, 오리나무, 뿌리가 유난히 깊은 아카시아 나무, 손으로 뽑아내다 보면 손마디가 부어 한참을 고생을 해야 했다.
혼자서 하는 그 힘든 작업은 꾀가 날만도 하련만 새벽에 나서서 원주에 도착하면 아홉시, 준비해간 안주에 술 한 잔 부어드리며 ‘아버님 저 왔어요. 다들 바빠서 못 왔어요. 섭섭해 하지마세요’ 내가 극성인 것인지, 아들을 두고 혼자 온 것에 대한 변명을 고하며 인사를 드린다. 원래가 풀 한포기 뽑아낼 줄 모르는 사람이거니 내가 하는 것이 수월했다. 도리 없이 내 몫이 돼 버린 것이다.
살아생전 좋아 하셨다는 소머리 수육에 젓가락을 놓아 드린다.
아예 편안히 퍼지고 앉아서 풀을 뽑다보면 서너 잔 부어드리고 남은 술병은 야곰야곰 내 차지다. 안주도 든든한 요기가 되니 하루를 아버지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고맙다 구요, 그동안 많이 쓸쓸하셨지요?’ 큰 아이는 어떻구요 작은 아이는 이렇구요….
중언부언(重言復言) 혼자서 쏟아내는 얘기는 틀림없이 아버님은 듣고 계신다고 믿는다. 부부의 연을 다 해야 되는 길은 때로는 외롭고 버거워서 보이지 않는 영혼 앞에 스스로를 다지듯 마음을 다잡는다.
장갑이 두어 켤레가 낡아 졌을 때는 해가 산에서 한발은 남아 있었다. 이젠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에서야 산소는 훤해진다.
아버님은 아이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그 옆에서 지켜주는 것을 많이 좋아 하셨겠지. 어느 날이던가 소나기가 퍼 붓던 날은 그만두고 가거라. 고 하시는 것만 같았다.
앞을 가로막은 소사나무를 베어냈을 때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시는 것만 같았고, 청주에 사는 너희들을 산을 넘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과 산소에 갈 때면 내심 ‘내가 그랬듯이 너희들도 훗날 조상에 대한 정성을 잊지 말아라,’ 내가 하던 것을 보았으니 내가 하지 못할 때는 너희들이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보았으니 말로 굳이 이르지 않아도 해 주면 좋으련만….
한편 삼년 전 시어머님의 장례를 생각해 본다. 가야산 자락 한 사찰(寺刹)에 있는 수백 년이 되었을 벚꽃나무아래 수목 장 을 하였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머니 스스로 바램이셨고, 아들들의 결정이었다. 일부종사(一夫宗寺)를 못하신 분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함이 깊었다.
장례절차는 장남인 우리 뜻대로는 했지만 혼백(魂帛)은 모셔 올 수가 없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아버님 산소에 다녀왔다는 말씀을 드리면 “고맙다. 너는 복 받을 거다.” 흐려지는 말끝은 언제나 허전함이 묻어있었다.
혼백이라도 한곳에 모시지 못한 것이 자식의 죄라도 되는 것처럼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내 가슴까지 써늘하여 멍하니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늘 산소에 도착하여 잡풀이 있는 봉분을 볼 때는 작아만 보이다가, 하루 종일 금초를 하고 나면 윤기가 흐르는 번듯한 봉분이 된다.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산 날망에 올라 뒤돌아본다. 아버님 산소가 제일 훤하고 근사하게 보여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파란 하늘에 닿는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도로가에 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벌초 대행 해줍니다.’ 참 편한 세상이다. 보나마나 대행을 해 준다는 벌초는 “사돈 벌초하듯 한다.” 라는 겪으로 잡풀을 뽑아 낼 리도 없을 것이고, 정성인들 있을 리 만무 하겠지. 유년시절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벌초와 금초는 구분이 되는 것이다.” 어떤 뜻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굳이 따지지 않으려 한다.
올해의 가을은 유난히 바쁘다. 한식 때 산소를 찾았을 때는 작년겨울 동해 때문이었는지 풀이 적게 나 있었다. 올 여름 잦은 비로 풀은 움쑥 자라 있겠지. 아버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괜찮으니 바쁜 일 잘 끝내고 오너라’ …….
첫댓글 착한 며느님의 금초(금초: 禁火伐草의 준말)하는 정성과 고인과 대화하는 정성이 아름답습니다. 남다른 효행의글이 마응 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今草: 라는 한자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내시려는 의도가 있으신것 같아 조심 스럽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자를 어떻게 쓰는지 면밀하게 짚어내지를 못했습니다. 사전을 다시 들어가 보니 풀이불 금(衾)이 있더군요. 금할금(禁)을 써야 하는지 뜻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효심이 눈에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요즈음 자손된 도리를 저버리는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다복하실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유년시절 보아왔던 것이 아마도 암묵적인 교육으로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밖에 풀 깎는 예초기 소리를 듣고 생각나서 글을 올렸습니다.
"청주에 사는 너희들을 산을 넘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 정성과 마음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머물엇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참 대단하십니다. 늘 놀랍니다.
감상 잘하고 갑니다.
저도 아이들을 대동하고 선산에 올랐습니다. 수술 후 몸을 챙기라는 만류에도 쉬엄쉬엄 선산에 올라 벌초하는 아이들을 감독(?)했지요. 어찌나 풀들이 무성한지 여름내내 물을 켜서 그런지 키는 또 얼마나 자랐는지...낫이 풀에서 자꾸만 미끄러진다는 아이들 말에 가지고 간 숫돌에 날을 세워 주었습니다. 다 깎고 나니 앞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내가 직접 깍지는 않았지만,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선생님의 '금초'를 읽으면서 선산에 계신 부모님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