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가을에 무늬를 더하다
(나호열 시인)
한 걸음 더디게
늘 그랬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 걸음 더디게 꽃 진 자리에 당도하여
섬광이 사라진 가지를 잡아보거나
그리하여 다음 해의 부질없는 약속을 중얼거렸다
바람이 목덜미를 간질일 때
저 바람도
이곳에 닿기 전까지
시간의 육탈을 견디며 달려온 누구였음을
안타까운 포옹으로
허공에 그려보는 것이었다
문득, 가을이다!
누군가 내게 트라우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엉뚱하게 “인간성을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몇몇 개별적 인간의 호불호를 떠나서 과연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거나 가끔 불편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회의懷疑하는 일이 나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종심從心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트라우마인지 콤플렉스인지 그런 악령惡靈과 싸우면서 시를 방편 삼아 선연善緣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십여 년 전, 영월 산골짜기 창녕 사지에서 오백나한상이 발굴되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로 석가모니를 수행하던 오백 명의 깨달은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여열반에 이르지 않고 현세에 남아 중생제도의 원을 세웠다고 한다. 웬만한 규모의 절에 나한전이 빠지지 않고 있는 까닭이 그런 수행자의 모습이 우리와 같이 삶에 일희일비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몇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수백 점의 창령사 나한상을 춘천박물관에서 만났을 때, 근엄하지도 않으며, 수수한 옷매무새하며, 웃고 있거나, 슬픈 표정이 얼굴에 가득한 것이 마치 오늘의 장삼이사를 마주한 듯한 친근감을 느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삶은 외롭고 고달프다. 경쟁에서 이겨야 보다 안락한 삶이 찾아오고, 한 걸음 빨리 앞서 나가야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기에 선善이 아니면 악惡이고, 내가 옳으면 너는 맞지 않아야 하는 강박감을 신앙처럼 떠받들고 있다. 나도 상황에 따라 가끔 착하고, 가끔 악하다. 서비스가 형편없다고 점원에게 큰소리치고, 어느 날은 힘센 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령사지 나한상을 떠올린다. 그들의 질박한 모습에는 고준담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저 제행무상의 덧없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
그러다 보니 내게 험담을 던지는 당신도, 내가 준 것도 없이 미워하는 당신도, 길가의 야바위꾼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꾼도 사실은 나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지금은 속이고, 으스대고, 윽박지르고, 탐욕에 찌들어 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문득 가을이 오듯, 우리는 모두 어느 날 문득 나한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중얼거려보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