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가 결국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당연히(?)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이 지긋한 세대는 한때를 風靡한 名俳優로서의 그를 잘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가 생존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1916년 生으로 104세였기 때문이지요. 생전에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이며, 7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버트 랭커스터는 80세를 넘기며 長壽했어도 이미 26년 전에 세상을 떴습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열광했던 '海底 2만리', '율리시즈', OK목장의 결투'. '바이킹', '건힐의 결투', '스파르타쿠스' 는 아직도 추억의 한 켠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유난히 깊숙하게 패인 턱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지요. 비록 受賞은 不發이었지만, '챔피언', '악당과 미녀', '열정의 랩소디'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던 연기파이기도 합니다.
그는 가난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신문 배달, 노점상, 정원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쳐 대학생 때는 학비를 벌기 위해 레슬링을 하기도 했고, 배우가 되기 이전에 40여 개의 다른 직업을 가진 珍記錄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1946년 '위험한 사랑'으로 데뷔한 이래 평생 83 편에 출연했습니다. '넝마주이의 아들' 등 일곱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두 번 결혼했고, 아들이 바로 마이클 더글러스 입니다. 마이클은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를 제작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제작자이기도 히며, '월 스트리트'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유명 배우입니다. 아름다운 女優 캐더린 제타-존스가 부인으로 나이 차이가 많지만, 오랜동안 잉꼬부부로 잘 살고 있습니다.
커크 더글러스는 키가 175센티미터로 배우로선 다소 작은 편이어서 촬영 때 키높이用 받침대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언젠가 함께 출연 중이던 切親 버트 랭커스터가 장난삼아 그걸 감춰놓자 몹시 역정을 내며 심하게 다퉜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집니다. 랭커스터에 대해 더글러스가 했던 말 중엔 ''나는 마침내 랭커스터에게서 벗어났다. 이제 내 運이 좋은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내 영화에도 멋진 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는 1950년대 내내 많은 영화인들을 망치며 할리우드를 괴롭혔던 '불랙 리스트 정책'을 뒤엎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아주 오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104세까지 삶을 누리고 떠난 커크 더글러스, '試鍊은 있어도 絶望은 없다'라는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그의 인생은 꿋꿋했지요. 오래도록 그가 그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