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풀이란 풀은 꽃망울 맺히고
사명대사(四溟大師)
풀이란 풀마다 꽃망울 맺혀 있고
솔이란 솔마다 학이 앉아 있으니
낫을 가져갔으나 댈 곳이 없어
소를 타고 서쪽 계곡으로 내려왔지요.
草草花孕胎(초초화잉태) 松松鶴架處(송송학가처)
携鎌無着處(휴겸무착처) 騎牛下西溪(기우하서계)
[역사이야기]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젊어서 한때 어느 집에서 머슴살이을 한 적이 있는데 주인이 나무를 해오라고 보냈다. 저녁에 소를 몰고 빈 지게로 돌아오자, 주인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답한 내용이 한 편의 시로 전해지고 있다.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이며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1558년(명종 13년)에 어머니가 죽고 1559년에 아버지가 죽자 김천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직지사 주지를 지냈으며 묘향산 보현사의 휴정(休靜, 西山大師,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1520~1604)을 찾아가 참선의 이치를 배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근왕문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義僧兵)을 모아 순안으로 가서 휴정과 합류하였다. 그곳에서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어 승병 2,000명을 이끌고 평양성과 중화 사이의 길을 차단하여 평양성 날환의 전초 역할을 했다. 1593년 1월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된 평양성 탈환의 혈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고 그 외의 전투에서도 전공을 세워 선조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제수했다.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휴정의 부음(訃音)을 듣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아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되었다. 1604년 일본에 가서 8개월간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 성과를 거뒀고 전란 때 포로로 잡혀간 3,000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4월에 귀국하였다. 그해 6월 왕에게 복명하고 10월에 묘향산에 들어가 비로소 휴정의 영전에 절하였다고 한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세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을 하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입적(入寂)하였다. 저서로는 『사명대사집』 7권과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1권이 있다.
사명대사가 선조의 명을 받아 1604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일본의 실권자 도꾸가와이에야쓰(德川家康)와 포로 송환을 위한 회담을 시작할 때 주고받은 한시가 전해진다. 먼저 도꾸가와이에야쓰(德川家康)가 “돌에는 풀이나기 어렵고 / 방 안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 너는 어느 산에 사는 새이기에 / 여기 봉황의 무리에 끼어들었느냐? 石上難生草 房中難起雲 汝李何山島 來參鳳皇群”라며 비소하는 시를 써 보이자, 사명대사는 이를 받아 “나는 본래 청산에 노니는 학이려나 / 늘 오색구름을 타고 놀았는데 / 하루아침 갑자기 오색구름이 사라지는 바람에 / 들에 사는 닭 무리 속에 잘못 떨어졌노라 我本靑山鶴 常遊五色雲 一朝雲霧盡
誤落野鷄群”라고 답했다고 한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