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면 비로소 보입니다!
참고말씀: 출13:21,22; 16:14,15; 삼하7:18,19; 왕하6:16,17; 욥1:21; 시95:2; 100:4; 106:1; 107:1; 111:1; 119:67; 골3:15-17
읽을말씀: 살전5:18; 민20:5
주제말씀: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첫째,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20:5)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傾向)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같은 공간에서 있어도 누구에게는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안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 누구에게는 전혀 안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슨 원리를 연상시킵니까? 카메라 포커스(focus, 초점)의 원리입니다. 즉 인물이나 어느 한 곳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면 나머지 배경은 자동적으로 흐릿해지는 원리를 연상시키는 듯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금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까? 지금 무엇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지금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들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입니다.
만일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없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어찌 됩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20:5) 지금 내게 있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망각(忘却)하거나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그들에게 없는 것투성이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하늘양식인 만나가 있었고,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출16:14,15)
불기둥과 구름기둥 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13:21,22) 그런데도 그들은 없는 것들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허구헛날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포커스를 다른 곳에 맞췄더라면, 즉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는 것에’ 맞췄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원망이나 불평은 쏙 들어가고 감사만 가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시니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어째서입니까? 지금 내게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많으며, 훨씬 더 값어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들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6,17)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어느 것에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들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 이왕이면 지금 내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있는 것들에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감사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은 안경을 쓰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일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무엇을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가 않습니까? 감사 안경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실수(失手)가 잦아지게 되고, 저절로 불평(不平)이나 원망(怨望)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종일관(始終一貫) 우리에게 무엇을 강조합니까? 감사할 것입니다. 이는 곧 무슨 안경을 쓰라는 말입니까? 감사 안경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95:2)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시111:1) /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하) /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6,17)
이 안경은 언제 써야 합니까? 범사(凡事), 곧 모든 일에 써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상) 안경을 쓰는 사람이 잠잘 때나 씻을 때를 제외하고 항상 써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항상 이 감사 안경을 착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안경을 쓰면 어떤 좋은 점들이 있습니까? ①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합니다. 즉 눈앞에 놓인 문제들만 보면 원망이나 불평이 나오기도 하지만, 감사 안경을 쓰고 보면 미처 보지 못하던 것들까지 다 볼 수 있어서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② 멀리 보게 합니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들만 보면서 한숨이나 탄식을 하게 되는데, 감사 안경을 쓰고 보면 멀리까지도 내다볼 수 있어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인생을 멀리 보기 시작하면 지금의 실패나 시행착오 등은 그리 크게 보일 리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삼하7:18,19)
③ 제대로 보게 됩니다. 즉 흐릿해서 잘못 본 것들도 제대로 다시 볼 수 있어서 신속한 판단이나 빠른 대응이 가능하고, 방향 전환이나 신속한 유턴(U-turn) 등도 용이해질 수 있습니다.
허면 묻겠습니다. 원망이나 불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언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까? 감사할 때입니다. 즉 감사할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나 그 분의 뜻에 대한 괜한 오해나 불평은 삼가고, 감사함으로 폭넓게 보고, 멀리 보며, 제대로 보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어떻습니까? 아직도 원망이나 불평을 입에 달고 지냅니까? 여전히 오해나 편견, 부정적인 감정들로 얼룩져있습니까?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 안경’을 쓰고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안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숨기신 뜻들도 더 쉽고 빠르게 찾기를 원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