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은 業에서 생기고 業은 마음으로 일어난다.
형악 혜사 선사 / 직지심경
형악혜사선사(衡岳惠思禪師)가 상습좌(常習坐)하야 일유일식(日唯一食)하고 송법화등경(誦法華等經)이러니
수발도심(遂發道心)하야 내왕혜문선사처(乃往惠聞禪師處)하야 수법(受法)하고 주야섭심(晝夜攝心)이라가
좌하경삼칠일(坐夏經三七日)하야 획숙지통(獲宿智通)하고 배가정진(倍加精進)하시니라
심유장기(尋有障起)하야 사지(四支)가 완약(緩弱)하야 불능행보(不能行步)어늘
자념왈병종업생(自念曰病從業生)하고 업유심기(業由心起)라 심원(心源)은 무기(無起)어니
외경(外境)이 하상(何狀)고 병(病)과 업(業)과 여신(與身)이 도여운영(都如雲影)이로다
여시관이(如是觀已)에 전도상멸(顚倒想滅)하야 경안여고(輕安如古)하니라
하만(夏滿)에 유무소득(猶無所得)에 심심참괴(深心慙愧)하야 방신의벽(放身倚壁)하고
배미지간(背未至間)에 활이대오법화삼매최상승선(豁尒大悟法華三昧最上乘禪)하야 일념명달(一念明達)하시니라
형악 혜사 선사는 항상 좌선을 익혀서 하루에 한 번만, 식사하고 법화경 등을 외우더니
드디어 도에 대한 마음이 나서 이에 혜문 선사의 처소에 갔다.
법을 받고는 주야로 마음을 거두어들이다가 여름 안거를 지내는데
21일이 경과 해서 숙지통(宿智通)을 얻고 더욱 정진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다가 곧 장애가 일어나서 사지가 늘어져서 걸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病이란 業으로부터 생기고 業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마음의 근원은 일어난 곳이 없거니 바깥 경계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병과 업과 이 몸이 모두 구름의 그림자와 같다.’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전도된 생각이 소멸하여 가뿐하고 편안하기가 옛날과 같았다.
여름 안거를 채우고 나니 오히려 얻은 바가 없어서 깊이 마음에 부끄러웠다.
몸을 놓아 벽을 의지하고 등이 채 땅에 이르지 않은 사이에
법화삼매의 최상승선을 활연히 깨달아서 한순간에 밝게 통달하였다.
解說 : 형악 혜사(衡岳惠思, 515-577) 선사는 법화경을 연구하여 깊이 깨닫고
그 지취(旨趣)를 천태(天台, 538-597) 대사에게 전해주었고
천태 대사는 법화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천태학(天台學)을 성립하였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몸에 병이 있기 마련이다.
가볍게 잠깐 지나가는 병도 있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정도의 심한 병고도 적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병고로 인하여 목숨을 마치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일생을 통해서 수많은 병고를 앓을 때 그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는가에 따라
병을 물리칠 수도 있고, 또는 병을 매우 가볍게 느낄 수도 있다.
때로는 마음가짐을 잘못하여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여 목숨을 재촉하는 수도 없지 않다.
혜사 선사는 사지가 늘어져서 걸음을 걸을 수 없는 병에 걸렸으나 불교에서 배운 바대로
‘병이란 따지고 보면 업으로부터 생기고, 업은 각자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근원은 추궁해보면 일어난 곳이 없다. 그러니 바깥 경계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바깥 경계가 상관이 없다면 병과 업과 이 몸이 모두 구름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라고 진실로 생각하여 그 생각이 깊어져서 혼연일체가 되니
병은 씻은 듯이 물러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깊은 명상을 통해서 병을 물리치려면 선정의 힘이 있어야 한다.
선정의 힘이란 평소에 기도나 참선이나 간경(看經)이나 사경이나 주력과 같은 수행 정진에 따라서
길러진 정신적 힘을 말한다. 이러한 힘이 다소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위에서 혜사 선사가 관찰한 그와 같은 관찰 방법으로 상당한 힘을 발휘하여
병을 물리치기도 하고 병을 다소 가볍게라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병은 병대로 둔 채 병을 극복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장애 받지 않고 거뜬히 해내는 수도 있다.
오히려 병마와 싸우면서 더 큰 성공을 거두어 자기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컨대 병을 어떻게 생각하고 활용(活用)하는가에 따라서
병고의 패배자가 되기도 하고 병고의 승리자가 되기도 한다.
혜사 선사가 마지막에 크게 깨달은 법화삼매의 최상승선이란
일불승(一佛乘)의 이치인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확신이며
그것의 체화(體化), 곧 자기화가 이루어진 경지다.
사람은 누구나 역사적인 현상은 무상하고 변멸(變滅)하고
온갖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부처님이다. 그와 같은 차원이 자신의 인격화가 되었다는 뜻이다.
- [무비 스님] 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