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자로 20년을 재직하고 있는 대학 동기랑 지난주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한 이후 머릿속이 멍했다. 말이 '이야기'였지, 논쟁에 가까왔고 친구가 하는 얘기가 옛날에 비해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시절이었던 30년 전과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이 있다. 당시는 사회의 모든 모순들을 이야기할 때 그 모든 스토리의 저변엔 항상 '혁명' '변혁'이라는 테마가 깔려 있었다. 정의와 평등이라는 시야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 구조들을 이리 저리 헤짚다 보면 결국 선명성 강한 결론이 필요했었다.
군인들이 툭하면 나라를 뒤집어 엎고 지들이 정치며 경제며 모든 걸 다 해먹는 사회에서 학생들이 혁명을 얘기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혁명은 일도양단, 아주 단순한 방법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이 불가능한 시기가 되었다. 이리저리 수백 번 꼬여 있는 동앗줄을 풀기 위해 칼로 베어서 한 번에 끝내는 그런 건 답이 될 수 없다. 하나 하나 엉킨 걸 다 찾아내서 푸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혁명'과 '변혁'은 퇴색하고 진보 vs 보수라는 프레임이 점차 대두되었다.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란 말인가? 혹자는 성장 우선 정책이 보수이고 분배 우선 정책이 진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더 좁게 본다. 누구나 '진보'를 원하지만, 좀 더 천천히 가자는 쪽이 보수 우파이고 좀 빠르게 가자는 쪽이 진보 좌파란 식이다.
이렇게 본다면 진보와 보수는 적대적 갈등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게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우파와 좌파는 여지껏 냉전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점이다. 지난 대선 후보자 TV 토론회에서 유승민이 문재인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입니까? 동의하십니까?" 이런 개 거지같은 질문이 2017년도 토론에조차 재생산되었다. 이렇게 냉전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친북주의자'란 프레임이 재생산되는 사회에서 과연 진보-보수가 서로 협의, 협치하는 게 가능하긴 한걸까?
작년 초 코로나 유행시기, 보수 야당, 보수 일간지들이 정부에 대해 맹렬히 비판을 가했다. 어째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완전 봉쇄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질병청은 특별 검역을 실시하면서 국경에서 엄중하게 검사를 하고 있고 해외 입국자의 대부분이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차단은 불가하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당시 '우파'의 이념적 공격에 의사협회까지 같이 거들었었다. 그리고 "친중 정부", "중국 눈치는 보고 국민 눈치는 안 보는 정부"라는 식으로 정부 방역에도 역시 냉전 논리를 씌웠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격 떨어지는 우파, 보수 정치세력을 가졌다는 것은 진실로 우리 국민의 커다란 우환이며 불행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념적인 좌파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면 그것만 갖고 진보 좌파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정치를 장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는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장사라 했을 때,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장사라는 것이다. 사업가는 늘 소비자들이 어디에 돈을 쓰고 무엇을 사고 싶어할까를 고민하고, 또 거기에 맞추는 상품을 개발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는 늘, 대중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원하느냐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돼 있다. 그게 포퓰리즘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아이덴티티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성향과 생각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민주당이 지방선거와 총선에 연이어 성공하면서 너무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벼라별 사람들이 거기에 다 들어와 있다. 오거돈 같은 사람도 그렇다. 허나 결국 민주당 지지자들의 성향으로 봤을 때, 민주당은 적극적 통일 정책과 통큰 분배의 정책, 강자와 약자의 상생 중에서도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무수한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이 갈 길이다. 당의 기반인 지지자들의 마인드가 그런 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했듯 정치를 장사로 치환해서 봤을 때, 민주당은 소비자 즉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정책적 상품을 만들어주는 데 실패했다. 지금 민주당의 색깔이 전반적으로 회색으로 변해 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나는 당이 일사불란한 정책적 성과를 내지 못한, 주로 기술적 부분의 삑사리(?)가 연이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국힘당의 색깔은 과연 바뀌어 나갈 것인가? 그들이 과연 냉전적 이념적 논리를 털어버리고 환골 탈태, 진보적 정책들을 이뤄낼 가능성이 있을까?
그렇게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 당의 정책적 상품 소비자들의 성향이 그런 제품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보며 스윙 보터들이 많다고들 분석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정치 집단에 대한 소비(?)성향이 swing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한번 소비의 방향성이 정해지면, 그 사람은 계속 그런 성향의 제품을 원하기 마련이며, 당은 그런 정치 소비자들 (지지자들)의 원하는 바에 맞춰주면서 나가도록 되어 있으니, 추후로도 국힘당의 색깔이 질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 어떤 정치 집단도, 정당도 그 방향을 정치인의 입장에서 옳다고 믿는 바 대로 밀어부칠 수는 없다. 사실 모두 유권자들, 지지자들에 달려 있다. 그러니,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더 열렬하게 진보적 정책들을 촉구하고 유도하고 감시하여 더이상의 삑사리를 내지 않도록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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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06. 16.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셨던 분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답을 정해놓지 않는 것',
그래서 더욱 지난한 과정을 끊임없이 '인내'해야 한다는 것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