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TIMA - (1)
by Arcturus
에너지는 태초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수백만개의 뉴런 속에서 그 힘을 축적해 왔다.
신경세포들은 전류의 역치를 향해 차츰차츰 활기를 띠어 가는 전기 에너지로 인해 요동을 친다.
동시에 신경세포의 수상 돌기와 마이크로글리아 세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매 시간마다 수십만개의 시냅스 연결을 형성한다.
마치 점화 일보 직전의 원자로처럼.
드디어 역치를 넘어선 미세전류는 복잡하게 뒤엉킨 시냅스 망을 타고 삽시간에 온 세포를 퍼져나가며 에너지를 전달한다.
세포 내의 소포들은 자신들의 신경전달물질과 신경조절물질을 마구 토해내며 자극 수준을 또다른 극점으로 끌어올린다.
이토록 복잡한 세포의 미세 활동 속에서, [의식], 혹은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이 조금씩 깃들기 시작한다.
영혼은 기억의 파편을 조금씩 그 작은 생명의 씨앗으로 이끈다.
자의식과 그에 따른 자유의지가 서서히 깨어난다.
그를 통해 공포와 두려움, 좌절과 슬픔, 그리고 죽음의 자각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지게 될 지라도, 의식의 형성은 거침없이 이루어진다.
차츰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결국 영혼은 [나]라는 개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흘러들어오는 기억의 파편들과 더해져, 그 개념은 점차로 강해진다.
[그래, 나는...]
-At the time when become ultima moment-
[권위적인 백과사전 엠파이어릭 체스트(Empiric Chest)의 한 부분]
디사이플(Disciple) : 2305년 개발되어 군사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미중력공간용 인간형 전투 기체. 기체의 크기는 모델에 따라 다양하나 평균적으로 10m 정도의 높이를 지닌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그 탁월한 전술적 이점 때문에 현대전에서는 빠지지 않는 기갑병기이다.
*세부사항
시스템 : 뇌파 - 전파간 변조 및 복조 시스템(Brain Waves - Electric Waves Modulate - Demodulate System)
동력원 : 상온 핵융합 발전기(Cold Nuclear Fusion Generator)
...
<지구 궤도면, USO(Universal Security Organization) 소속 초거대 우주정거장 바벨(Babel)의 특수 도서관, 제 1열람실>
어두컴컴한 공간을, 갑자기 밝은 불빛이 가득 메운다. 음침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딱히 뭐라고 꼬집을 수는 없지만, 굉장히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냄새.
그리고 그것에 다시 시가의 독한 냄새가 더해져 나름대로 환상적인 향의 하모니를 이룬다. 하지만 그 냄새는 곧 작동된 대형 함선용 자동 에어 컨트롤러(Air Controller)에 의해 이리저리 흩날리다 스러졌다.
시가 냄새를 풍기는 주인공 -백발에 안경을 쓴,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 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빼들었다. 책의 제목은 이미 손때에 찌들어 알아볼 수조차 없지만, 남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이윽고 사내의 시선이 멈춘 페이지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한, 그러나 자세히 보면 300년에 가까운 시간들이 경과하는 사이 인류가 범한 어리석은 짓들, 그 모든 것들이 짤막한 연대표 형식으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
-2012년 북한-미국(黴國) 전쟁 개전
-2013년 북-미 전쟁이 제 2차 태평양전쟁으로 확대
-2015년 제 3차 세계대전 개전
-2022년 제 3차 세계대전 종전
…
-2057년 제 1차 세계 핵전쟁 개전
…
-2189년 제 8차 세계 핵전쟁 종전
…
-2246년 범지구적 단체 UA 설립
…
-2251년 초(超)국가적 행정 및 사법, 입법단체 USO 설립
-2299년 반정부적 테러단체 DOGMA 출현
-2305년 미중력공간용 인간형 전투 기체 디사이플 개발]
목록이 끝남과 동시에 쭉 훑어 내려가던 남자의 시선 역시 그곳에서 끝났다. 남자는 묘한 미소를 한번 씨익 짓더니 가운의 윗주머니에서 펜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휘갈기는 글씨체로 무언가를 그 밑에 적어 넣었다.
[-2317년 Project E.D.E.N 발족]
그리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책장에 그 책을 거칠게 쑤셔 넣었다. 어느새 시가의 뜨거운 열기가 남자의 입술을 간질이고 있었다. 남자는 시가를 땅바닥에 무책임하게 버리더니 발로 몇 번 짓이기고는 도서관 밖으로 사라졌다.
곧 도서관 내의 자동 시스템에 의해 불이 꺼졌다. 보이는 것이라곤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시가의 불똥 부스러기뿐이었다.
<목성 궤도면, 섹터 F-36>
수송기 하나가 공허한 우주 공간을 전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그것은 꽤 멋있는 광경이었다. 암흑 일색의 창공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 그리고 샤프한 외관에 뒤에는 길게 푸른 불꽃을 매달고 날아가는 수송기-마치 별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혜성처럼.
그러나 멀리서, 좀더 먼 시점에서 보자면 그 광경은 전혀 다른-단지 도망가고 있는 수송기와 그 뒤를 쫓는 검은 색 디사이플(Disciple)의 살벌한 추격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송기의 파일럿은 지금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옆에 놓인 작은 디스켓과 몇 장의 사진에 머물렀다. 사진에는 한결같이 한 소녀가 찍혀있었다. 사진 속의 소녀는 기껏해야 13, 14세가 되었을까. 어떤 사진 속의 소녀는 셀(Cell-영양액과 함께 생물체를 넣는 일종의 탱크)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어떤 사진 속에서는 몸에 각종 주사기와 검사기를 덕지덕지 매단 채 잠들어 있었다.
“빌어먹을, USO놈들... 이런 쓰레기같은 짓을 하다니. 내가 기필코-”
-콰앙!
[경고, 경고. 적의 광양자 빔이 스쳤습니다. 좌측 날개에 경미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좌측 1번, 2번 엔진 파열. 밸런스 조정을 위해 감속합니다.]
파일럿은 순간 역장 인식 청력 변환 시스템으로 변환되어 들려오는 충격음, 그리고 연이은 경고음에 깜짝 놀라며 모니터 스크린으로 급히 눈을 돌렸다. 초록색의 선으로 그려진 수송기 중 좌측 날개만이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동시에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가 4500km/h에서 3700km/h로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God damn for ass!”
파일럿은 거칠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적의 디사이플 4기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은 굳이 레이더를 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갑자기 화면 스크린이 지지직거리며 왠지 비열한 인상의 긴 얼굴 남자가 나왔다.
[큭큭큭,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그래? 아니면 한 방 더 쏴야 알겠나?]
“크윽, 닥쳐!”
[그래? 그렇다면 교섭은 종료군.]
-투타타타타타타!
[경고, 경고. 우측 4번 엔진 파열. 밸런스 조정을 위해 감속합니다. 레이더 시스템 15% 손상. 통신 시스템 18.4% 손상. 좌측 3번 엔진 파열. 밸런스 조정을 위해 감속합니다.]
동시에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기체내엔 손상을 알리는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어디로 도망칠 생각이려나? 형편없이 손상을 입은 기체를 끌고 말이야. 큭큭큭.]
녀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기체를 직접 박살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것이리라.
[다시 한 방 더 쏴줘야 말을 알아듣겠나? 그렇다면 다시-]
-쿠콰앙!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파일럿은 의아해하며 레이더를 살폈다. 자신을 쫓아오던 붉은 점 네 개 중 하나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대신- 그의 기체 앞에 초록색 점 하나가 어느새 나타났다. 동시에 스크린에 은회색의 디사이플 한 기가 번개처럼 스쳤다.
[수고했다, -치지직- 지금부 -치지직- 정리하지. -치지직- 모선으로 귀환 -치지직- 록.]
통신 센서에 입은 손상 때문에 잡음섞인 거슬린 소리가 들렸지만, 파일럿에겐 구원의 달콤한 음성으로 들려왔다.
“그런데... 고작 한 명?”
파일럿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은회색의 기체는 허벅지에서 루미노스 블레이드 타입 17 - 통칭 LB-T17 - 을 꺼내들었다. 역전하가 걸린 고온 플라즈마에 빛이 굴절되어서, 마치 빨갛게 타오르는 듯이 보였다. 적 기체 3은 일제히 그들이 가지고 있던 총을 들었다. 아마 총에 칼로 대적하는 은회색 기체가, 그들의 눈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사벨을 들고 전차에 돌격한 폴란드의 기병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나-
-사아아악!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간 고온 플라즈마는 검은 기체의 가슴을 난폭하게 살라버렸고, 곧 그 기체는 활동을 정지했다. 당황한 듯 남은 두 기체는 아무렇게나 발포했으나, 이미 은회색의 기체는 다 예상했다는 듯 밑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우주공간에서의 3차원 전투 - 전후좌우뿐만 아니라 상하까지 고려해야 하는 - 에서 이미 은회색의 기체는 충분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타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탕!
-고오오!
어느새 은회색 기체는 25mm 반자동 권총을 꺼내들어 적 기체중 하나에게 발포했다. 허둥거리던 적 기체는 그대로 폭발해 우주 먼지로 화했다. 남은 한 기체가 발악하듯 총을 발포했지만, 은회색 기체는 권총을 버리고 교묘하게 그것을 빗겨내며 그 기체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콰득!
그 기체의 총을 든 한 팔을 꺾었다.
-콰득!
그 기체의 머리를 그대로 뽑아버렸다.
-콰득!
그 기체의 허리를 꺾고는 자신의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혀 던져버렸다.
-쿠아아앙!
잠시 밝은 불꽃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이곳저곳에 손상을 입은 터라 느리게 날아가던 수송기의 파일럿은 입을 딱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곧 기체의 가슴에 새겨진 인장 - 바위를 보았다.
“베르가모 소속인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 -치지직- 베르가모 ST 소 -치지직- 아크 밥티즈마 -치지직- 다.]
은회색 기체는 푸른 눈 - 정확히는 시각 센서 - 를 번득이며 답했다.
p.s 판타지적 요소를 포함한다고 본인만 주장하는 SF물. 그래봤자 전문적 과학인이 보면 코웃음칠 내용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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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헤에, 광범위한데요. 신연재라, 열심히 해주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