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안 하앍
글쓴이 수리양
“우와아, 오빠 신기록 경신하셨네요. 축하의 꽃다발이라도 받으실래요?”
“축하의 음식 세례는 없는거니?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비틀비틀 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로비에서 책을 읽던 사야가 넉살스러운 말을 건넨다. 이전보다 표현력도 풍부해지고 뭔가 대담해진 느낌도 든다. 외출이라도 한건지 오웬과 오펠은 보이지 않았다. 제이는 주방에서 먹을 것을 주문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빵을 먼저 주었다. 너무너무 배가 고팠던 나는 단숨에 빵을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그아저아 그오안 아우이도 엇업야?”
“그나저나 그동안 아무일도 없었냐고? 응, 아무 일도 없었어.”
말을 꺼낸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업는 말을 제이가 친절하게 해독해준다. 내가 다시 말을 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사야가 고개를 저었다.
“다 먹고 말씀하세요.”
“다 먹었다. 그럼 오펠이랑 오웬은 어디 있어?”
“검술 연습하러 나갔어요.”
음, 아마도 익스퍼트의 실력을 오펠에게 전수해줄 생각인 모양이다. 확실히 오펠이 검술을 제대로 단련한다면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공격이 언제 다시 이어질지 모르는 판국에 느긋하게 검술 연습이라, 어쩐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내 음식이 잔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스벤에 관한 생각은 제쳐두고, 우선 먹어야겠다는 본능적인 감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남아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에게는 진하게 느껴지는 라이안의 마나가 스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며 경고하고 있으니까.
“오펠이랑 오웬 불러서 우선 씻겨. 나 먹고나서 곧장 출발할거야.”
“하지만 시드 아직 좀 피곤하지 않아? 일어나자마자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멀쩡해. 게다가 지금 당신 눈을 보아하니 여기 있다가는 더 피곤한 일을 당할 것 같아.”
“쳇. 간파 당했군.”
아쉽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는 제이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귀를 당기며 은밀히 속삭였다.
“우리 조금 오래됐는데... 반나절만 쉬다가면 안될까?”
눈빛이 게슴츠레해지고 입꼬리도 농염하게 휘어진다. 입고 있는 원피스를 살짝 벗어서 부드러운 어깨선이 그대로 드러나 살짝 숨이 가빠졌다. 뭐가 오래됐다는건지 굳이 캐묻지 않아도 몸은 미리 알고 대답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행동은 기나긴 키스로 이어졌다. 서로를 향한 시선이 붉게 물들어갈 때, 언제 들어왔는지 오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못말리는 부부로군요.”
“나는 혀라는 기관이 저런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탄한다니까요.”
정작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얼굴을 살짝 벌개져있는 사야였다. 제이도 그런 사야의 시선을 의식하고 재미있는 표정을 짓더니 일부러 더욱 농염한 자세를 취한다. 차마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제이의 행동. 우리 부부의 애정표현에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야릇한 광경이 연출되자 이내 사야의 얼굴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난다. 양볼을 가리고 후다닥 자기 방으로 뛰어가는 일상적인 결말. 제이의 입가에는 승리의 미소가 어렸지만 나에게는 쓴웃음만 남는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우리들의 행동은 이해되기 어렵다. 분명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니까. 하지만 모두들 의식적으로나마 이렇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떠날 채비를 모두 끝났다. 하지만,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다. 막상 짐을 들고 여관을 나섰지만 두 발은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이제 어디가?”
“으음... 당신은 가고 싶은데 있어?”
“아무데나 좋으니까 우선 침실.”
“...여행갈 곳.”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음침한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이의 확연한 눈동자는 일말의 거짓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저건 진심이다 진심. 그래도 너무 대놓고 드러내는 것 같아 조금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제이의 의견을 기각해버리고 무언가 참신한 대답을 기대하며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사야가 입을 살짝 비틀더니 말을 꺼낸다.
“저 예전부터 제레이나 왕국에 가보고 싶었어요.”
제레이나 왕국이라면, 도중에 잿더미로 변한 데니안 왕국을 가로질러야 한다. 표정이 일그러진 이유는 아마 그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테지. 데니안 왕국의 멸망이라는 비보를 제레이나 왕국이 접했다면 경계를 엄청나게 강화했을게 분명하지만, 설사 스벤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이미 초토화되었을게 뻔하다. 부폰 왕국의 국경을 넘지 않은 이상 실질적으로 스벤에게 가까운 곳은 제레이나 왕국일테니까 가장 가능성있는 곳은 역시 그곳이군. 사야가 말을 하자 오펠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는데, 마치 ‘시드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고 말하는 제이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왠지 오펠의 암울한 미래가 의식의 미농지에 선명히 그려진다.
“제레이나 왕국이 목적지라면 잘됐군요. 평소에 데니안 왕국과 외교적으로 굉장히 친밀했던 곳이라 저도 자주 왕래를 했습니다. 그 쪽에는 제자들도 많이 있어서 제가 부탁한다면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을겁니다.”
오웬이 미소를 머금고 한마디 거들었다. 새삼 느끼는거지만 여러 방면으로 실력있는 인간이다. 아무도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제레이나 왕국으로 목적지를 단번에 결정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아주아주 사소한, 그러니까 자기를 타고 가라고 주장하는 제이와 마차를 타고 가자는 나의 주장이 마찰을 빚어 결국 고급스런 4륜 마차를 구매했다는 일이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옆에서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제이를 싹 무시하고 오펠에게 여행기간동안 먹을 식량을 구매하도록 시켰다. 나로서도 마차로 폐허가 된 도시를 경유한다는 것은 상당히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오펠과 사야는 내 의도를 잘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오웬은 제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필요하면 언젠가 알게될테니 일부러 놀랄 일을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굳이 폐허를 지나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적응이다. 사야와 오펠은 아직까지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게 뻔하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현실을 회피해도 데니안 왕국의 멸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녀석들을 위한 배려하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한시가 급한 때는 더더욱.
ㄴㅇㄻㄴㅇㄻㄴㅇ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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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문 좀 끊어줘. 물론 드래그가 되기는 하지만...
타이틀 라이안하앍이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고 시작했듬 , 역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