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장거리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두 쌩쌩 달려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들의 삶이 고속도로위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짜여진 시간 안에 무엇을 해야 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의무적인 일들에 정신없이 허덕이게 되고 일상에 지칠 때마다 우리부부는 이 고속도로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목적지를 향하는 중 잠깐이나마 들르게 되는 휴게소의 즐거움을 갖고 싶었다.
짧은 휴식이지만 남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에너지원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되뇌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디 그게 말처럼 쉽답니까?
직업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휴가를 한 번 가져보겠다는 게 얼마나 힘든일인지요..
늙어서 다리힘 빠지고 허리 꼬부라져서
‘호주가서 캥거루라도 한번 만져볼까?’ 하고 떠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겟냐구요.
건강할 때, 여러 가지 조건을 감수하고라도
다시 돌아올까 말까한 시절을 만들고 싶었다.
큰 용기를 내어 일단 저지르고 봤죠.
그래서 우리부부는 스페인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콘셉트는 ‘결혼22주년기념 구혼여행’ 이라고나 할까요..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우리 둘만을 위한 자유여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단체로 떠나는 여행은 천편일률적이다.
유명지에 가서 사진 찍고, 다음 이동지로 옮기는데 차질이 생기면 안되니까
시간 정해서 빨리 오라, 가라는 등,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늘 시간에 매여서 살고 있는데 여행에서만큼은
이 틀을 좀 벗어나야 여행답지 않겠는가!
출발 한 달 전부터 우리는 최대한 모든 정보망을 동원하여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쪽을 갈까 저쪽을 먼저 갈까?
여행지 루트를 짜는 것부터가 만만찮았다.
어쨌든 우리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려보자는 쪽으로 루트를 짜 나갔다.
우선 여행지를 택하는데 있어선 여러 곳이 목록에 올랐는데,
중복되는 곳은 피하고 남편도 나도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정하자고 했다.
결국 기타와 인연이 많은 내 입김이 조금 강해서 스페인으로 정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스페인은 클래식 기타의 본고장이잖습니까?
다음은 언어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까,
사용해야만 하는 간단한 스페인어를 익혔다.
스페인은 영어권이 아니라 영어로 소통이 잘 안된다니까요..
안되면 막판에 할 수 있는건 세계 공통어 바디 랭귀지가 있으니까
크게 걱정은 안했지만 그래도 신경을 쓰고 가는 편이 나은지라..
우리는 이 여행의 처음과 끝의 모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으니까,
모든 위험요소와 어려움에 닥쳤을 때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과정에 들어갔다.
스페인의 각 지역 지도를 살피고 루트를 익히는 일,
각 도시간 이동시 교통편(비행기,기차, 지하철, 버스..)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따라
이용 시간표를 익혔고, 필요한 구간은 예약을 하고 티켓팅을 했다.
지도를 계속 보다보니까 마드리드의 지하철노선과 정거장은 저절로 외워졌다.(물론 내가 아니고 남편이)
3일 이상씩 머무르게 되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호텔 숙소는
인터넷 예약해서 결제까지 마쳐버렸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발길 닿는대로 해결하기로 하고,,
가서 무엇을 볼 것이며, 어떤 음식을 먹어볼 것인가. 예상경비 계산 등...
예측불허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모든 생각들을 동원했다.
루트를 세밀하게 짠 후, 일 별로 계획을 세우고,
엑셀로 정리해서 남편과 나 각자 한부씩 정리한 파일을 챙기는데까지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이런 저런 준비과정을 거치다 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인데도 마치 갔다 온 것처럼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된 셈이었다.
사실 여행이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있어서 재미있지 않는가!
음 그런데 너무나 완벽한 여행준비였을까요?
현지에 가서 우리는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곳을 척척 찾아냈다.
마치 잘 아는 우리 동네를 다니듯이 볼 것 다보고, 먹을 것 다 찾아 먹었다.
걸어다녀야 하는 시간이 많아서 첨엔 내가 힘겨워하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빗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오히려 뒤쳐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서 온 시간인데 헛되게 보내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다소 강행군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추억거리를 안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다 귀환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걸어다니면서 만난 각양각색의 현지인들과의 접촉에서 느낀
생생한 현장이 더욱 기억에 남아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길거리 곳곳에서 클래식기타 소리만 들리면 달려가서 감상해주고나서,
나도 쬐금 칠수 있다고 하면 선뜻 기타를 건네주어서 졸지에
거리의 악사흉내를 내 보기도 하고 ..
각종 퍼포먼스의 신기함과, 거리에서 펼쳐지는 작은 음악회의 즐거움,
밤을 새워도 지칠줄 모르는 ‘솔’ 광장의 젊은이들 열정..
알바이신 언덕에서 만난 짚시들의 흥겨운 춤, 벼룩시장에서 물건값 흥정을 위해
온갖 제스쳐와 언어로 결국 우리돈 3만원 정도를 깎아서 흡족했던일,
사들고 다닐수 없어서 두고 와야만 했던 스페인 잡화들 때문에 아쉬워 했던마음,
투우장에서 앞자리에 앉았던 노부부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돌아보며
계속 경기의 규칙 같은 것을 스페인어로 친절히 설명해줬던일,
가무스름한 이국적인 미녀의 정열적인 춤과 카리스마 넘치는 격렬한 기타반주,
이에 못지않은 남성 무용수의 관능적인 춤에 귀 기울인 플라멩고 감상....
모든 것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남편의 공로가 지대했기에,
너무 수고했고 고맙다고 칭찬을 좀 했더니
‘스페인 거리는 내게 맡겨’ 라며 으쓱거렸지요..
자기가 은퇴하면 스페인 가서 ‘가이드’ 해야겠다나 어쩌겠다나....
일탈을 통한 에너지 재충전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 약발이 떨어지고 일상의 복잡함이 압박으로 다가올 즈음이면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리라..
우리는 2주간에 걸쳐,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네르하, 말라가, 세비아, 꼬르도바, 마드리드, 세고비아.
여덟개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장에 스페인 여행 사진을 올려봅니다.
이미 다녀오신 분은 추억을 더듬어 보시고,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은 참고하소서.. ^*^
첫댓글 철저한 준바로 완벽한 재충전을 하셨네요. 여행이란~~꼭 필요한 것.....
드디어 올리셨네....아는 만큼 보인다고했지요? 준비하는 시간의 설렘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지면으로만 아는 곳을 눈으로 봤을 때의 경이감...
일탈을 멋지고 알차게 하셨군요..부러워라 ~~~
저도 3년전에 아내와 2주간 바르셀로나-그라나다->세비야->꼬르도바->마드리드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일정이 비슷하네요. 그 때 저도 첫 도착지인 바르셀로나와 마지막 도착지인 마드리드만 한국에서 호텔을 예약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상황되는 대로 호텔을 잡았는데 그게 한국에서 예약한 것보다 더 싸고 깨끗한 호텔이었어요. 약간의 해프닝은 있었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