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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 삼척동자
변산기행(邊山紀行)은 처음부터 나 혼자서 하는 여행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쯤해서 친구들 몇이서 부부동반으로 바람이나 쐬려고 떠난 여행임을 밝혀야겠다. 매번 친구들 부부 여행 이야기만 쓰는 것이 자칫 신판 춘향전 같은 이야기로 비칠까 해서였다. 그런데 굳이 그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혼자만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다소 지루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드라마에는 등장인물이 많아야 글 엮기가 쉽다는 걸 왜 몰랐을까? 지난밤은 여행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호텔 아래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허물없는 친구 부부들이 다같이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자들은 술도 한잔하고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이 쌓였는지 여자들 수다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수다도 모자랐는지 우리는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그때 그 시절 흘러간 노래에 애달파하고 신나는 메들리에 맞춰 춤도 췄다.
채석강 ⓒ 삼척동자
그날 밤 술자리가 거나해지자 내가 흘러 간 옛 노래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자 한 친구가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나온 Drinking song을 멋들어지게 불러재꼈다.
우리는 가사도 가물거리는 그 노래를 '드링크! 드링크! 드링크!' 하면서 마치 영화장면에서처럼 합창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학교 때 수재로 이름을 날렸던 영문학을 한 친구가 예이츠의 Drinking song을 감정까지 넣어가며 읊어나갔다.
술은 입으로 오고 Wine come in at the mouth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이것이 우리가 죽기 전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알게 될 진실의 전부이다 Before we grow old and die. 나 술잔을 입에 들고 I lift the glass to my mouse 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노라 I look you, and I sigh. 그는 마지막 구절인 I look you, and I sigh.에서 진짜 한숨까지 쉬어가며 몇 번을 반복했다. 그 친구가 ‘영시는 영어로 읊어야 제 맛이 난다’며 내게도 원문을 적어 주었다 화재는 이내 그의 은사 피천득 선생님으로 이어졌다.
채석강 ⓒ 삼척동자 선생님은 술이라고는 입에도 못 대는 분이라고 했다. 그런 교수가 학생들에게는 이 시를 스스로 대단한 애주가 처럼 열강을 했었단다. 우리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로 옮겨졌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득료애정통고(得了愛情痛苦)-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실료애정통고(失了愛情痛苦)-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아! 우리에게도 젊은 녹색의 시절, 5월이 있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들이 두동치할(頭童齒豁)의 나이라니. 그러나 ‘나이는 세어서 무엇 하는가?’ 우리는 지금 스물한 살의 오월에 살고 있는 것을.
채석강 암반 ⓒ 삼척동자 늦은 밤, 밖으로 나와 여름 밤하늘 아래 별들을 바라본다. 서울에선 보이지 않던 뭍 별들이 총총하다. 달은 하얀 쪽배가 되어 은하수를 건너고 있다. 해변의 아침은 상쾌했다. 여자들은 산책을 하고 우리는 아침 운동으로 작취미성(昨醉未醒)의 몸을 깨웠다. 식당으로 내려가 이 고장의 별미라는 백합죽으로 아침을 때웠다. 술 먹은 다음이어서 그런지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쌀과 녹두 알갱이가 진한 백합 국물과 어울려 입안에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여자들도 맛있다며 주인에게 어떻게 끓이는지를 물었다.
채석강 단애 ⓒ 삼척동자
짐을 챙긴다. 호텔 주인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꼭 다시 오마고 약속을 한다. 여자들이 <곰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곰소에 가서 소금도 사고 젓갈도 사자고 어젯밤 자기네들끼리 모의를 한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안방마님들의 모의라 해도 우리가 모시지 않겠다면 따로 다니잘텐데. 요긴한 살림을 위해 진짜 소금과 젓갈까지 사가겠다니 고맙게 가야지, 가야하고말고. 곰소로 나갔다. 과연 곰소에는 젓갈 시장이 풍성했다. 소금도 듬직한 놈으로 한 자루씩, 뭐라더라? 무슨 액젓도 한통씩 그리고 서비스로 밑반찬 젓갈들을 담아 줬다. 여자들 얼굴에 금년 김장 다 끝내고 2~3년 내내 두고 먹을 소금까지 챙긴 즐거운 표정이 역력하다. 놀러 나와서 까지 이렇게 알뜰살뜰 살림 챙기는 아름다운 아내들이 있으니 남자들은 참 행복하구나! 모르기는 해도 남자들의 내심은 그랬을 것이다.
채석강 그리고 방파제 ⓒ 삼척동자 곰소로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격포로 가야 한다. 채석강도 보고 말 많던 새만금이 어떤지도 보고 그리고 개암사에도 갈 것이다. 이렇게 보고 나면 변산 내 외를 한바퀴 도는 셈이다. <파리>도 삼년에는 다 못 보지만 사흘에는 다보고 간다고 했다. 하룻밤 이틀에 변산 구경 다 못한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벌써 차머리는 격포로 향하고 있었다. 변산반도 해변을 따라 난 구불거리는 아스팔트 도로변의 풍광이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국립공원 지역이어서 가축도 마음대로 못 키우고 공장이나 창고도 함부로 지을 수 없다. 집을 개축하거나 옮겨 짓는 것도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풍광들이 여행객들의 눈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어디를 가든지 무분별한 난개발과 공장과 창고와 축사로 어지러운 농촌의 모습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이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허파 같은 이런 청정지역이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 국도 변에는 채석강 안내판이 나와 있어서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간다. 격포 항에 다 왔다 싶었는데 채석강을 알리는 안내판이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다시 미로에 든 듯 차는 채석강이 아닌 격포 항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횟집들이 즐비한 격포 항은 아직 한산했다. 다시 채석강 가는 길을 찾아 항구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나간다. 큰 길로 빠져 나와 길을 물었다.
얼마 안가서 삼거리 한쪽에 채석강 안내판이 보였다. 거기에는 분명 P턴을 하라는 표시가 있었는데 막상 P턴하는 곳은 없었다. 다시 차를 되돌려 나오니 바로 삼거리 안쪽에 광장이 있고 그곳이 채석강 초입이었다.
새만금 갯가 ⓒ 삼척동자
채석강 주차장 입구는 많이 혼잡했다. 차는 밀려들어 오는데 주차장 입장료와 함께 사람 수대로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느라 북새통이었다. 요금징수요원만 해도 십여 명이 북적거렸다. 일단 주차 증을 나눠준 다음 주차부터 하게하고 각자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게 한 다음 주차요금은 나갈 때 받으면 그런 혼잡은 없을 것인데 한꺼번에 받느라 혼잡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에겐 아직 이용자 편에서 생각하는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
채석강은 마침 썰물 때여서 바닥이 들어나 있었다. 기암괴석에 퇴적암 단층들이 그대로 들어나 과연 외변산의 명소다웠다. 철썩 철썩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시원하다.
난 채석강이 돌을 캐는 강 이름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건 강이 아니라 바다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채석강은 중국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새만금제방 ⓒ 삼척동자 이태백이 배를 타고 달마중을 나갔는데 강물에 비친 달이 너무 아름다워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고 강물에 뛰어 들었다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채석강에서 나왔다. 사실이라면 실로 풍류시인다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칠월에 뜨는 달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달 팔월에 뜨는 달은 강강술래 뜨는 달
우리 네 달 타령 후렴에도 이태백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채석강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불세출의 시성을 죽게 만들었을까? 오늘 그 채석강 아름다운 풍광을 다시 만난다.
새만금제방 ⓒ 삼척동자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넉넉함으로 해서 바다라 했다던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다에 들어섰다. 모두들 들어와 보라고 유혹을 했다. 여자도 남자도 바다에 발을 적신다. 모두가 어린 아이들 마냥 얼굴에 웃음들이 가득하다. 우리가 언제 이런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웃었던가? 알게 모르게 질긴 표정으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바닷물에 선 부부마다 증명사진을 찍었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오늘을 기억하라고. 여러 곳을 다니자면 오래 지체 할 수가 없다.
우리는 다시 30번 해안 국도를 타고 반도 북단을 향한다. 변산반도의 끝자락 부안과 김제와 군산 앞바다를 잇는 새만금 방조제를 간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방조제는 끝 간 데 없었다.
새만금제방 ⓒ 삼척동자
과연 인간의 힘으로 이런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조제를 달려 나갔다. 어느 쪽이 육지고 어느 쪽이 바다인지 분간이 안가는 정말 가르마 같기도, 활주로 같기도 한, 신호등 하나 없는 외길이 소실점 끝까지 뻗어나 있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제방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았다. 과연 세계 최장의 방조제라는 말이 이제서 야 실감이 났다. 아직 물을 빠지지 않은 갯벌에는 빈 배만 떠서 물 주름에 가도 가도 제자리에 서있다. 무심한 갯가에는 노란 달맞이꽃이 군락을 이뤘다. 밤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달맞이꽃을 보면 애잔하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었다. 여기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며 달맞이꽃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갯사람들의 소망처럼 갯벌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며 서있는 것일까? 한 낮의 태양아래 시든 달맞이꽃에서 갯벌을 의지해 살아왔던 뭍 생명들의 쇠잔한 아우성을 듣는 듯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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