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을 탈당하신 동지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1998년 청년진보당 창당 때 입당하여 9년 넘게 공당의 당원으로 지냈습니다.
그러하기에 다른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던 동지들에 대해 진보정당의 일원이라는 동료의식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동지들이 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공감하면서도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선 이후 진보진영의 위기가 증폭되었습니다. 모든 정치세력이 혁신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분열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참으로 안타깝게 지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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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오창엽은 한국사회당 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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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의 긴 실험의 실패는 수많은 진보시민들과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도 큰 아픔일 것입니다. 국민승리21부터 시작하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헌신했던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는 게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특히 한 당에서 동거동락했던 당원동지들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은 당 운동을 같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초정파 좌파연합 공동체, 맑스주의연구회
1998년 봄 저는 나우누리 피시통신에 맑스주의연구회를 개설합니다. 전국의 좌파청년학생들과 노동자들과 의기투합하여 초정파 좌파연합 공동체를 함께 운영했습니다. 10년 동안 그런 초정파 조직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또 다시 보기 힘들었습니다.
맑스연이 초정파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개설자인 제가 한번도 정파주의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맑스연에는 수없이 많은 학생정파 활동가들이 공존했습니다. 물론 자주파도 있었습니다. 저는 두루 친했고 맑스연 모임에서만큼은 학생운동하며 총학생회 선거하며 쌓인 상처들을 잊고 우애로서 화목하기를 바랐습니다. 몇몇의 혹은 특정정파의 패권적 운영을 지양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맑스연의 친구들과 학습하고 함께 어울리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이후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공동체 문화를 선취하여 맛보고 싶었습니다. 진정 행복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때처럼 즐겁고 보람된 시절은 없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벗들이 오늘 유난히 그립습니다.
한편 1998년에 두 개의 진보정당운동이 가시화되고 있었습니다. 민중당 해산 이후 실로 오랜만에 진보정당(추)와 청년회의가 각각 진보정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반가운 마음에 맑스연에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정책비교 토론회도 진행했습니다.
맑스연 회원들과 오프라인 토론회도 참관했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맑스주의 학습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적극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년진보당과 민주노동당
운명의 장난일까요. 제가 청년진보당에 합류하기로 약속한 다음에 민주노동당에서도 중앙당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에 또 운동에서 신의와 약속을 중시하기에 저는 일단 청년진보당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맑스주의를 강조하던 곳도 청년진보당이었습니다.
맑스연 300여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민주노동당으로 갔습니다. 일부는 청년진보당을 선택했습니다. 나머지 다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두 당을 동시에 후원하는 회원들도 많았습니다.
맑스연 회원들이 당시의 진보정당운동에 합류하는 것을 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맑스주의를 공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현대적 진보정당을 위해 실천하는 게 보다 더 맑스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청년진보당을 선택했기에 수많은 친구들과 멀어져야 했습니다. 격려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리의 멀어짐을 예측한 후배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해도 정치를 하다보면 입장 차이로 갈등을 빚게 될 테니까요. 대신 저는 청년진보당에서 새로운 벗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는 화학적으로 결합되었습니다. 그것도 즐거웠습니다.
진보진영의 혁신과 개인들의 갈림길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는 동지들의 비통한 입장글들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저 역시 청년진보당-사회당 활동을 하면서 종종 탈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혁신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생활고로 인하여 지칠 때, 선거 결과로 내분이 일어나고 당이 흔들릴 때.
하지만 탈당을 결행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긴 세월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당원동지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맑스연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 당활동을 같이 했던 벗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탈당을 하게 되면 그 친구들이 얼마나 상심할까, 얼마나 힘이 빠질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당도 올해 들어 혁신과 진보연대 과제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당대표 후보로 나설 것을 결심했습니다. 후원계좌를 공개했고 당원, 비당원들이 풀뿌리 모금으로 후원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당 당원이 아니지만 맑스연 때 인연을 맺은 벗들이 후원하기도 합니다. 민주노동당 당원도 탈당한 동지도 당적 없는 생활인이 된 벗들도.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추진하는 분들과도 교류합니다. 토론회에 나가서 그 동안 두 진보정당이 진보연대에 성실하지 못했음을 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두 당의 당원들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탈당한 분들의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탈당계를 제출할 때 너무 신속하게 처리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블로그 이웃의 몇 줄짜리 글이 가슴을 찢습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동지들. 10년 전에 우리는 너무 쉽게 선택했습니다. 진보정당이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우리는 입당부터 했습니다. 저는 탈당하신 동지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에 다시 가입하시든 전혀 다른 진보정당에 합류하시든 그 선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제 정당의 일원으로 지냈던 관성을 되돌아보고 한 발짝 떨어져서 사태를 차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개인의 선택이 우리의 삶과 운명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방관하고 실망하여 비당원으로 지내라는 게 아닙니다. 이제 어떤 정치적 선택에 책임까지 지는 진지한 결의로 자신의 정치활동을 혁신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유일진보정당’이라며 자부하던 것을 반성하고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자기의 길을 가던 사회당 당원, 초록만사 회원들이 홀대받았던 것을 헤아려야 합니다. 노동자의 힘 회원들도 힘겨워 합니다. 배수진을 치고 변혁정당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자고 토론도 합니다.
그들이 비록 합법진보정당운동을 개량주의라고 비판하고 그 안의 당원들마저 비난했던 것을 잘 알지만, 이제 그들의 주장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대동단결과 정파연합당을 경계해야
대동단결하자는 게 아닙니다. 원칙과 공당 정신없이 정파연합당을 받아들였기에 당이 일그러졌던 것입니다. 정파연합당은 공통의 원칙과 합의보다 자기 정파의 이익을 위해 입당전술이라며 당내 패권다툼을 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당원들이 정파주의를 초월하는 진정한 당을 요청해야 정파연합당의 한계를 최소화하며 그것을 극복할 가능성을 갖습니다.
종북파나 다함께 류의 대동단결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지들이 탈당이라는 어려운 실천으로 그것을 비판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좌파라는 이유, 사회주의라는 추상적인 이념 하나로 무조건 단결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드러내어 차이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진보진영의 훌륭하고 성실했던 당원들이 흔쾌히 후회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진보진영 전체로 볼 때 혁신사회주의가 될 것입니다. 저는 사회당의 대표로 출마하면서 혁신사회당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총선용 급조정당을 만들 게 아니라 모든 좌파정치세력이 각각 혁신하여 그 혁신의 성과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실력자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차근차근 만들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탈당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당원동지들이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9년 10년 진보정당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당적은 다르지만 우리가 경험했던 시대의 추억은 비슷할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힘으로 멋진 혁신정당을 건설하여 청년시절 우리가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우리, 많이 울었지만 앞으로 활짝 웃으며 지내기를 바랍니다. 탈당한 동지들에게, 끝으로 시 한 편 소개합니다.
이탈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는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1993, 문학과지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