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경기상고에서 야구부장을 지낸바 있는 유정무교수가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옮겨오면서 서울대에 순수 아마야구팀을 재 창단, 기존 대학 야구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후 1996년 춘계리그까지 20여 년간 서울대 야구부의 전력은 120전 120패. 9회 말까지 완벽하게 게임을 치르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소망이다. 통산 게임의 80%가 7회 콜드게임 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이 단지 승패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과정을 더 중시한다. 타 대학 친구들과의 실력 차는 그 연륜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또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실력만을 가지고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마라톤에서 꼭 1등이 아니더라도 42.195km를 완주한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내듯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실력 차를 조금씩 줄여 나가다보면 ‘1승의 꿈’을 실현하게 될 날이 그리 멀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녹색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야구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언제가 야구장에 울릴 2만여 관악인의 응원 함성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날아드는 돌덩어리와 같은 야구장을 향해 아낌없이 몸을 던질 것이다. 1승! 그날을 위하여…….” (1996년 5월 서울대 야구부 주장 김주호)
그렇다. 밥만 먹으면 야구를 하는 타 대학과의 실력 차이는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대 선수들에겐 패기와 오기라는 무기가 있다.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백전백패를 하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넘어지면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불굴의 정신과, 손으로 못 잡는 공을 몸으로 막는 오기의 몸부림이 있다. 슬라이딩 팬츠를 입지 않고도 겁 없이 슬라이딩을 감행하고, 수영장이 아닌데도 맨땅에서 다이빙 캐치를 예사로 한다.
그들이 가장 분하게 여겼던 게임은 1986년 춘계리그. 대학 야구의 막강 팀 연세대학에 5대 6으로 아슬아슬하게 졌을 때이다. 서울대 선수들은 승부에는 졌지만 게임 내용은 이긴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고, 연세대 선수들은 그 오점을 씻기 위해 삭발소동을 벌이며 맹훈련에 돌입했다. 그리고 춘계리그에서 서울대에 5대 1로 이겼던 계명대 야구팀은 호된 기합을 받고 추계리그에서 서울대를 35대 3으로 이겨 버렸다. 그 후로도 29대 0, 35대 3, 37대 6……. 참패의 기록을 일일이 나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대 야구부의 참패 기록에는 당당함이 깃들어 있다. “졌지만 깨끗하게 졌다!”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이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다.
1992년 대한야구협회는 상식 밖의 점수 차가 벌어지는 서울대 야구부와의 게임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까지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며, 150전 150패의 기록을 가진 동경대학 야구부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04년 9월, 마침내 서울대 야구부는 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광주 송원대를 2대 0으로 이겨 꿈에도 그리던 1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현재 1승 1무 265패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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