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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이지란의 손주 되는 분인데
조선 중종 때 명신이며 87 세때 졸(卒) 한 분이다.
태백지세 의 끝뜨락 제천 가기 전에 봉양 이 있는데
鳳皇(봉항) 을 기른다는 옆에 구학(九鶴) 이 있다.
아홉마리 학이 호위 하는 지점 사이에 간현이라는 역이 있는데
봉양과 구학사이에 현명한 지기로 인재가 배양된다 하여
간현 이다 (間賢) 한자의 변천은 있었으나 실로 그러한데
이곳에 이기의 신도비문이 있다.
예전에 집안일로 풍기를 다녀 갔다가 오는길에
들렸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 외가가 강원도 신림 황둔이 였는데
20 년이 넘게 모른체 하거나 갈 여력이 없던 시절이라
이종사촌과 함께 황둔자락을 가 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변하였고 외가댁은 이슬 한점처럼
다 녹아서인지 덩그런 옥수수 밭으로 변하였고
어릴때 보았던 마루밑에 섬돌 하나가 도랑 옆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섬돌을 삼아 빨래를 많이 한 흔적이 있었다.
큰 외삼촌 무덤 옆에 갖다놓으라고 이종사촌에게 말하였고 그렇게 한 것이
내가 한것중에 외가집에 인연된 것으로는 잘 한 것 같았다.
오던길에 영월 노산군의 묘에 (단종의묘) 들렸다가
영월 찐빵 사서 오며 제천으로 빠져 간현을 통과 하다가
이기의 신도비문을 들렸다
묵집이 유명하고, 녹두지짐과 함께 먹는 식당이 많았다.
일순간 회고 해본다.
이기는
수명을 온전하게 유지 한것은 노모를 봉양 함으로
상소를 올려 용케 벼슬길에서 빠져 나왔는데
한산 이 씨로서 맥을 이어온 분으로
송와잡설을 기고 하였고. 치악산을 배경으로 하는 지세에서
가장 안온한 터에 자리 잡았다.
송와 란 소나무의 기개로 움막을 지운 사연에 풀어내는
역사를 향한 내숭섞인 이야기로 민의 를 바로 잡으려 했다는
사실적인 이야기 인데
밭떼기 의 심성으로 백성을 구하려는 심성을 펼치
해괴한 도인 전우치(田禹致) 가 송와 잡설에 나온다.
전우치는 실제 인물인데 도술을 펴서 조정의 곳간을
털어 백성을 규훌 한다는 홍길동 과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인물이고 나중에 잡혔다가 혼줄이 나고
도망가서 화담 서경덕에게 가서 진정한 도를 배우면서
숨어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기가 이를 다룬 흔적이 있다.
이기의 자 는 송와 이고 시호는 장정이다 .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서 이조 판서를 지낸분이다.
이분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 관직에 있는 탐관오리 들이 한 짓을 꼬집는 거인데
함경도에는 고약한 수령이 많아서 백성들이 낮도둑이라 일렀다.
함경도 백성 중에 처음 서울 오는 자가 동소문 에서 성균관 앞길에
와서 함께 온 자에게
"여기는 무슨 고을이기에 관사가 저리 높은가?"
하니 그 짝이 말하기를
"네가 모르는가 ? 여기는 고을이 아니고 조정에서 낮도둑을 모아서
키우는 못자리다" 라는 이야기는 그 때 민심을 잘 표현한 이야기다
이기는 또 이러한 말을 한다.
"우리 나라 법에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여자의 정결함은 비록 장려할 만한 것이나
나이 젊은 과부 를 일체금고 해서 (가두워 지내는 것을 좋다고 하는 법)
개가 하지 못하게 하고 혹 개가해서 낳은 자식은 음분 해서 (천하게 분류해서)
낳은 자식으로 논하는 데 이것이 과연 인정에 가깝겠는가?
하여 강한 반발과 전문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또 병기 와 병법을 논하다 가 끝에 가서는
"양쪽 군사가 한창 싸울때에는 총을 쏘아서 바람이 달리듯, 번개가
치듯 하면 숨도 쉴 수 없다.
이런 때에 당하면 창을 휘두르는 법과 칼을 춤주는 법도
아에 사용 할 수가 없다.
다만 조총을 배워야 할 뿐이요 딴 것은 반드시 본받을 것이 아니다"
맞는 말 아니던가?
총으로 뎀비는데 창과 칼로 대적 하라는 따위의 병법이 참으로 훼궤하다는
것을 말하니 돌팔매로 던지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하는 말인데 이렇게 관리의 페헤를 지적하는
것이 많이 적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에 소마 라는 것이 있다
곧 소변을 말하는 것인데 (대변은 대마 라고 하는데 요사이 이런말은
사라졌다)
이기는 이 말의 출처를 밝혔다.
중국의 귀부녀 의 요강단지를 말 하는데
말(馬) 허리 처럼 봉곳하고 그 등 복판에 구멍이 뚫려 있어
소변을 볼때에는 말 등에 올라 타고서 일을 마친다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소마(小馬) 라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 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오줌 마렵다는 말도 또한 말 허리를 타는
까닭으로 말 허리, 즉 마요(馬腰) 인 것이 마렵다고 변한 것이라
설명 하였다.
애마 부인이 무색한 용어로 여자는 오로지 말 등을 잘 타야 한다는
것인데 남자야 어디 타고 오줌 누지는 않으니
여성의 성문화를 비유한 음어인줄 알겠다.
목은이 원나라에 갓 2 갑으로 두번이나 합격한 사실을 기록 할 만큼
한산 이씨를 높이 자랑하였는데
동국의 한산 (우리나라 한산지명) 이라는 고을이 있는 줄을
천하가 알게 되었다고 목은의 말을 두곳에 기록 하였다.
사람은 어떤 형편에 처해지더라도 말을 잘 해야 한다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있다.
목은 이색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유명한 학자 이다.
태조 이성계가 구테타 하여 모조리 충신을 죽였고
반기를 들고 얼굴을 내민자들은 이방원이나 청소하여
싹 쓸이 하였는데 목은 이색만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태조의 호감을 받아 자손들을 명맥케 하였다.
그리고 목은은 참으로 운도 좋았는데
고려 공양왕 기사년 (1389년) 12 월에 귀향을 당했다.
장단에 있다가 경오년 4 월에는 함창에 부처되고
그 해 오월에 청주에서 옥살이 하였으나
수재로 인하여 사면을 받았다.
태조가 혁명한 후 에 조정에서 중형으로 처치하려고 의논하였으나
태조가 특히 영서하여 여흥에거 장흥부 남벽사역 으로 유배 되고
그해 겨울에 석방되어 한산으로 돌아 왔다.
일반인은 모르지만 역서 에 보면 감방가서 살고 나오면
당시에는 액이지만 그것이 기반하여 유명하게 되고
권자를 차지 하거나 높이 숭상받는 예가 흔하다.
이를 인수재살이라 하는데
유명한 자들은 대부분 감방에 갔다와서 흥한다하는
운기의 필연적 우연을 말하는 새옹지마를 말하는데
이를 인수수옥살 이라고도 한다 (印受囚獄殺)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러한 자 들이 넘친다.
한번 넘어졌다가 이것이 오히려 복 되는 것인데
살면서 고초 가 있는게 도리어 나을 수 도 있는 것이다
목은 도 이와 같다.
석방이 된다음 태조 이성계가 구테타를 한 다음 목은에게 서찰을 넣고 조정에 불러들여 "내가 덕이 부족하고 식견이 어둡다 보니 짐을 버리지 말고
한 말씀 가르침을 원하오" 하고 목은의 간 을 보았는데
목은이 말하기를
"망국 의 대부로는 해나갈 것을 의논할 수 없다" 하였으니
다만 이 해골이나 고향 산천에 묻히기를 원한 뿐이오 "
하고 말 하였다.
한 왕족을 잘 모시지 못해 망하게 했는 넘이
무신 염치로 새 임금을 모실 수 있는 가 하는
진정성 있게 꼬리를 내리고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는 말을 한 것이다.
이로서 태조는 그를 머물게 할 수 없음을 알았고 고향 산천에
해골 묻겠다고 하니 역성은(逆性) 없는 것을 확인한터 중문까지 걸어나가서
서로 읍한다음 작별 하였다 했다.
왕이 친히 배웅한다는 것은 꼭 존중해서 이겠는가?
예전에는 상관이고 내가 집권 하였으니
고을에 내려가도 잘 하라는 의미로 해의 된다.
이것은 콩이고 저것은 팥이라고 이야기 해 보았자
찍히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말이다.
때 마침 고려 조정에 팍 찍혀 귀양신세에 있었으니
참으로 운세가 좋은 양반임을 말 할 나이가 없는 것이고
세치 혀를 잘 간직하고 중용을 지키는 과거의 흔적과
현실을 반영하면서 육신을 보존 하게 된 것이다.
끝내 정도전과 조준에 의하여 은밀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건천으로는 공식적인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자손의 영화를 건네 주게 된 것이니 실로 처신이 마땅 했음을
이기가 전하고 있다.
목은의 시 중에
세상의 성쇠는 돌고 도는 것
송백이 푸르러도 추위에 시달린다
중니를 배워 구괘를 벌이고서
흰 머리 이 신세를 장단에 부쳤느니라 하고
아들에게 이 시를 전 했다
증니를 배웠다는 것은 스님에게 배웠다는 것이고
구괘를 벌렸다는 것은
우주의 만법이 구류 중생으로 섞이오 도는것을 보았다는
것이므로
흰 머리 가 죽을 곳을 찾았다는 뜻인데
과연 학자는 학자이고 대 선비였음을 알 수 있었다
중종이 즉위하자 예전의 예법이 회복하였고 주자가례를 강구하여
거창한 제례 풍습이 행 해 졌는데 끼니도 못먹는 백성들의
아품에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에 이기의 일갈은 이러하다
효도란 비록 천성에 근본한 것이나 진정에서 나오지 못하고
애를 써서 나온다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이치가 그런것이다
하였고
부모상을 치르면 3 년 동안 여묘를 사는 것은 가례의 본뜻이 아니고
권도를 쫓는 잘못된 악습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드디어 반혼이라 (返魂) 하여 부모 상을 치른다음
묘살이 하면 산속에서 떨 일이 아니라 집으로 다시 혼을 모시고
오는 반혼을 하게 되었으니 모두 이 예법을 지당하다고 따랐다고
하였다.
기실 요즈음 세태는 제사를 치를때마다 집안의 혼란과 억지로
인습을 따르는 해 가 심하다.
그것은 도리어 이 핑계 저 핑계를 하게 반들거나
서로 시누이 올케 동기간 모여지내는 연중행사인데
도리어 서로 말을 물어 내고 잡다한 집안 갈등도 생산하는 것도
잇는바 전통가례의 문제 역시 상당히 악습으로 포함되는것이 맞다.
돌아가신 조상을 위하여 항상 마음가짐을 가지고
반혼 한 만큼 기일날 케이크 하나 갖다놓고 추억담으로
지내는것도 잘 못된 것은 아닌 것이다
정약용이가 차례 지내는 것을 다례 라 하여 차 한잔 공손하게
올리면 된다고 개진을 주장 하여 실로 그다음부터는 차례가 된것이니
다 의미있는 말이고 실사구시의 현실에 부흥하는 말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죽어도 누워 죽지도 몬하고 나무코드도 못 입는다
화장 장례가 대체 되고 묘가 와석도 아니고 입석이니 하니 말이다
서서 가야 하는 시절이 된것이다..
심지어 항아리에 갇히서 원혼을 모시는 입장이라
납골당에 가면 향도 많이 태우면 지적질 당하는 관리수칙도 있다.
죽으면 공해가 된다 . 웃지못할 현실이다.
이미 송와 잡설에 이러한 것이 나오니 예나 지금이나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지 매양 사람생각은 똑 같은 법이다.
하늘에는 열 가지 날이 있고 사람에게는 열가지 등급이 있으니
(하늘의 열 가지 날이란 천간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를
말하고 사람의 열가지 란 (왕 ,공 ,대부 ,사, 조, 여, 예 ,요, 복, 대, 를 말하는데
춘추좌씨전 소공이 지는 것을 말한다).,
위로 공경에서 아래로 여대(하인) 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은 차례와 귀하고
천한 분수는 천지의 떳떡한 의로서 진실로 문란하게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동포 백성이건만 억지로 종으로 만들어서 대대로 내려가면 천한
무리에 쓸어 넣어 사족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니 심하게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기자가 (은나라의 세 어진이 즉 비간 미자 기자) 삼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에서 나와 중국에도 없는 법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폐해가 크다하였다.
대개 동방인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동북 아세아로 艮 방 이라 일 겉는다)
산과 땅의 형세가 이리저리 꾸불꾸불하여 험하게 생겼고
인심과 버릇이 억세고 간사하여 아침에 영을 내려서 저녁에 금단 할 수 없고
또한 사형으로 악을 징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 형세가 험하고 계곡이
많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다스리기에 어렵다는 말)
간사한 도둑이나 장물을 탐내는 무리는 잡아다가 노예로 삼아 각자 도맡아
다스리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좋게 변화시켜 바깥 문도 닫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다습을 이룩하여 이로부터 드디어 동방 여러 새대에 바꾸어지지 않는 큰 법으로 되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군신으로 의리가 있고, 사가 와 반노를 같은 율로
다스렸다.
지금도 수천여 년을 그대로 따라 지켜서 변하지 않아
예양하는 후함과 형정의 아름다움이 딴 외국이 따르지 못할 바이다
까닭에
중국 사람이 모두 예의의 나라라 일 컬었고, 혹은 작은 중화라고 지목하니
이것은 중국과 같은 방법이 아니면서 결국 다스려진 것이다.
지금에 와서 그 법칙을 바꾸고 변통하여 중국제도와 똑 같이 하려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정사가 풍속에 따라 변하고 풍속으로 인해서 교화시키는
뜻을 모르는 것이다.
크게 어지럽게 하기에 알맞을 뿐이니 이를 시행해서는 아니된다 하고
외국문물의 무조건적인 페단을 경계 하였다
요즈음 이 세계는 왈왈이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이고
그다음 일본 순위가 된다.
에프 뭔지 무역개방 문제 미국에서 들고 나오자 마자
따지고 볼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였으나
페기 한다는 말 한마디에 한국은 꼬랑지를 내린다
이게 페단이다.
아주 신속하게 말이다.
지도자는 조금 무식해도 밀고 나가는 드라이브 정책에
카리스마가 분명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사정이 있는 것이다.
고개를 처들지 못할 망정 국민을 대변하는 자존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금방 깨갱이다.. 진짜 이 나이 들어서 보게되면
뭐 하는지 잘 모르겠다.
각기 전문가로서 사정은 있으나 사정 없는 무덤이 있겠는가 말이다
등소평 처럼 키큰 대통령 과 맞서 배꼽에 내다 꼿는 기질이 있어야
하는게 맞다.
못나고 우수운 행태이지만
김정은이는 드럼프 보고 어 이 자식봐라?
하는 배짱은 있어야 한다. 2 등은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25 위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발이다
민족 자존은 지키는 셈은 된다, 고약하지마는,,,
도둑도 도둑다운 평판이 서야 하고
사업가도 사업가 다운 평판이 중요하다
남이 알아주는 어떤 특징을 말하는데
욕 얻어 먹고도 오래 사는 자 들이 원래 많다
아이고 더러버 피하지 무서워 피하나 ?
하지만 그게 그런것이 아니다.
무서버 피하는 것이다. 요즘도 그렇다
말도 안되는 배짱으로 시비 걸면 꼬랑지를
내리고 더러버 피한다고 한다
사실 얻어맞을까바 두려운 것이다.
옳고 그르고 착하고 법이 없어도 산다는 말은
그리 좋은 말이 아닌것이다.
단지 이러한 자는 뒤끝이 좋지 못하는 것을 당하는게 일반인데
마땅히 거기에 맞는 범을 만나게 되어있다 마는
사는 동안은 좀 누리는 것을 많이 향휴하게 되는데
크게 화를 당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있다는게 문제 이긴하다.
지금 미국과 일본 중국 이북이 옳고 그른거 따지겠는가?
아니다 무조건 국익이다.
배짱 있는 지도자가 없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국민의 체통들을 살려주는게 훨 낮다.
이기 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인심과 풍속이 교활 한데 이로서 교화 시키가 어렵다고
했다.
산맥지류의 특성이 너무 자주 교통하는 것을 끊은 환경탓인데
그러나 이 말은 덕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만약 덕으로 인도한다면 어찌 변화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였다
다만
남방 사람은 보통 있는 물건을 보더라도 산야의 채소 맛과 물고기와
과실의 모양이 모두 동북 지방의 것과 같지 않으며
새, 까치 의 울음 닭 개의 소리가 모두 된소리로 급하매
집에서 기르는 대지도 붉은 빛이 많고 고양이의 얼룩 무뉘가 모두 프르고
회색이며 흘백에 금반이 있는 것은 아주 없다.
도내가 모두 그런바 물생이 (物色) 이 딴지방것과 다름이
이와 같으니 매우 괴이하다고 적고 있다.
조급해서 그러한 것이다.
진 양산이 기록한 것을 보았다
도적이 말하기를 도둑도 또한 도(道)가 있으니
남의 방안에 있는 것을 의식하는 것는 聖 이고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것은 智 이고
고르게 나누는 것은 仁 이다
도둑질 하고 성공 몬하는 것은 서로 갈라먹기에 어긋나서
코지름 발려 성공을 못하는데 그것을 지키는 게 仁 이라 했다.
요즈음 고관 대작하면서 부정하였으나
서로 골고루 나누어 먹지 않아 코지를 발려 검찰엥 소환되곤 하는 것이다.
도독질 하러 먼저들어가는 것을 勇 이라 하고
뒤에 나오는 것은 의(義) 이다 했다.
또한 부자가 되려며는 5 적을 버리라 했다.
오적은 인 의 예 지 신 이다.
이 다섯가지가 적이라 하여 꼭 버리고 부자가 되려 하니
그렇다면 지금 큰 부자는 옛날 도둑보다 심한 자들이다. 하였으니
진공이 세상을 풍자 한 뜻이 지극하다.
양화가 이르기를
부자가 되려면 인 하지 못한다 한 것도 또한 그 하나이다
이를 환야산이라 고 방편하여 말한것인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자식을 두었는데 공순하지 못하여
동쪽을 말하면 서쪽을 향하고 북쪽을 물으면 남쪽을 가리켰으며
뗄나무를 하게 되면 반드시 돌을 져 오고
물을 길어 오게 하면 반드시 불씨를 꾸려 왔다
그 아비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 자식에게 "나를 반드시 높은 봉우리 위에다 장사하라" 하였다
대게 그 아비의 뜻은 평지에 장사하라 하면 반드시 높은 봉우리에다
장사 살 것이므로
높은 봉우리에다 장사하라는 것은 아래쪽 바람을 피 할 수 있는 곳을
얻고자 함이었는데
그 자식은 임종때에 말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이곳에다 장사하여 길가는 사람이 지금까지 그 애기를 한다 하며
살았을 때가 죽었을때나 그 아비의 뜻을 변환 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여
이 산을 환야산이라 이름 하게 된 연유를 빗대어 말한것이
환야 록 이다.
불손함을 경계하는 말이며 순역으로 항상 되 돌아 오게 됨을
몰하서 하는 행동인데 대부분 말끔하게 반사되어 되돌려 주는것이
이치이다.
이를 책하는 것이 이기의 책에 또 나오는데
국가의 기강에 대하여 논 한 것이 있었는바
관상감정 이 번신은 나의 선조 문렬공 의 서종순이며 할아버지 한성군의 종제
인데 음양 지리 복서 술수(數學) 율려 등 학문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천문에 대해서는더욱 정통하여 그가 말한 바는 모두 징험이 있었다.
융경 연간에 (목종 연호 1567-1572) 나의 집에 왔다가 천문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천문에 관한 말을 미묘하여 알기 어렵습니다 하니 공이 말하기를
어찌 알기 어렵다 하는가?
재앙과 상서란 모두 인사 (사람일) 선악과 기수(氣數: 기의 투터움정도)
와 굴신에서 감응 하므로 밝게 보이는 것이 매우 엄하고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데 다만 사람은 살피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므로
내가
"모제 선생이 일찌기 , 우리 나라를 천하를 두고 본다면(여러 국가) 금천 이
(현재 과천) 이 동방에 있는 것과 같다 , 하늘은 반드시 금천 때 문에
상서나 재앙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 하였는데 그 말이 실언이라 하여
선비들이 나무람을 받았읍니다. 이 말이 어떠합니까 하니 공은
해와 달이 이지러지고 먹히는 것은 비록 이와 같이 말하여도
오히려 가하거니와 분야에서 별들의 도수가 잘못 되는 것과
아침과 낮에 구름과 안개가 괴상하게 탁한 것은 딴 나라를 탓 할 수 없는
것이니 매우 두려운 일이다 하였다.
"지금 천문의 역과 순 (逆順) 은 어떠하고 후일에 응할 길흉은 어떠합니까
하니 공이 한참 동안 찡그리더니
"화가 닥치는 고비는 말 할수 없다" 하였다
"재앙이 닥치는 고비라는 것은 변방에 혼단이 있어, 성이 함락되고
군사가 결단나는 근심이 있다는 것이나 아닙니까? 하자
"변경 지역은 편하고 급한 것이 일정하지 않고 이기고 패하는 것도 어느 나라인들
그렇지 않으랴? 이것을 재앙이닥처 오는 고비라 할 수 없다 " 하여
그렇다면 조정에 간신이 죄를 교묘하게 얽고 서로 다투어서 선비들을
다 타도하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나아가고 물러남에 사그라지고 늘어남은 (진퇴소장) 벼슬아치들의 보통
있는 일이요. 나라를 가진 자로서 능히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으로 화가 닥치는 고비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비참하여 말하기 조차 어려웠다 다시 묻기를
"그 징험이 어느 때에 나타나겠읍니까? 하니 공은
천체가 지극히 무겁고 느낌을 쌓은 지 벌써 오래이니 그 노여움을 나타내는
것을 아침 저녁이라고 기한 할 수 는 없다.
가까우면 20년 지나서이고 멀어도30 년 안에는화가 닥치는 고비가
다가올 것이니 사대부로서 턱없이 나서고자 할 때가 아니다 하였다.
나는 공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은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이 비로서 징험되었다.
그리고 만력 기축년 옥사가 일어나고, 임진년 왜적의 난리에 대가 (大駕: 큰 멍애)
는 서쪽으로 가고 종묘 사직은 빈터로 된 다음에 그의 말이 더욱 징험되었다.
하늘의 꾸지람이 이와 같이 두렵고 공이 추보 (천체의 운행을 관축함)를
잘한것도 지금에야 알 수 있다.
( 나라의 길흉조짐은 순역 으로 한번 순하며 한번 역으로 되돌아오니
음양의 이치라 20 년이고 혹은 3 세 인과라 30 년을 일러 말 한것인데
모든 길흉은 인재 라는 사실을 기반 하고 있다)
그리고 야다시라고 있다 (夜茶時)
밤에 논공이나 만남장소등에서 파 하게 되면 차 를 마시고
파하는 것을 이르는데
조종때에 재상이나 혹 하료로서 간사하거나 부세를 많이 거두어
백성을 해치거나 재물을 탐내어서 깨끗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여러 전중이 야다시를 이용하여 그 사람의 집 근처에서 그 탐악함을
수죄 하고 흰판자에다 적어서 그 집 문 위에 걸었다.
그리고 가시덤불로 그 집 문간을 막아 굳게 봉하고 착함(着啣: 재갈을 물림)
한 다음 물러갔다.
그러면 그 사람은 드디어 세상에서 버림받아 다시는 의관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환란을 당하는 것을 야다시라 하며 이말은
지금도 그렇게 쓰인다 했다. 인심의 정반합을 말하는 것이며
길흉화복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복리를 꿈꾸는데 서로가 화합하고 할 도리를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실사구시를 이조 오백년사에서 선조 시기에
서서히 일어났는바. 조정이 힘을 못 쓸때에는 이러한 반골적인
기질이 내 밀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국가의 통치가 백성의 말을 듣어주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잘 이끄는가의 지도력과 윤리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송와 잡설이 다 .
국민이 전쟁을 겁내면 전쟁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런 징후를 다른 상대 나라는 간을 보게 되어있기때문이며
실익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적인 진리다
평화라는 것은 전쟁불사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인본으로서 행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상이며 환경이다.
국민들이 전쟁에 대하여 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전쟁 안 일어나게 되고
핵은 터지지 못하는 거이고 핵무기 만든자는
스스로 몰락하는 계기마져 부여하는 것이
국민의 정신력에 딸렸다는 사실을 인재를 강조하는 것이
이번신 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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