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존을 위한 다문화
1부 누가 한국인인가
누가 100퍼센트 한국인인가·16
한국인은 어떻게 한국인이 되었는가|누가 100퍼센트 한국인인가|배제와 추방의 이주사|외국인은 한국인이 될 수 없는가|순혈주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
사라지는 혼혈인·36
차별의 시작|만나기 힘든 혼혈인|기지촌의 낙인과 혼혈인이라는 명칭|혼혈인, 낙인의 흔적혼혈인 박명수, 외롭고 희망 없는 삶|스스로 사라지는 혼혈인
2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문화란 무엇인가·64
왜 타문화를 이해해야 하는가|문화를 바라보는 인식과 시선들|문화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타자에 대한 환대와 상호인정·79
움직이는 지구촌, 타자의 권리|현실 속 환대의 모습|다문화사회를 위하여, 상호인정과 관용|환대를 다시 생각한다
반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에 대하여·100
한국은 다문화사회일까|미등록 이주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반다문화 담론이 은폐하는 것|그들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투쟁
우리 안의 타자, 그 낯선 얼굴과 마주하기,
말 걸기, 함께 살기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은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리’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공존을 위한 다문화를 모색하는 아래로부터의 실천이다.
#1.
1993년 11월, 동네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던 찬드라는 식사를 마친 후에야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분식집 주인은 한국어가 서툴렀던 그녀를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행려자로 오인하여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그녀가 아무리 서투른 한국말로 “나는 네팔에서 돈 벌러 온 사람”이라고, “공장에 가면 네팔 여권과 비자가 있다”고 호소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6년 4개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뒤 풀려나 네팔로 돌아갈 수 있었다.
#2.
2012년 10월 1일, 이주노동자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서 10년째 한국 학교를 다닌 발공은 몽골과 한국 청소년들의 싸움을 말리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경찰은 그에게 싸움에 가담한 몽골 친구들에게 연락하도록 시켰고 경찰서로 친구들이 오자 통역도 시켰다. 밤새 경찰서에서 잠 한 숨 못자고 수사를 도왔던 발공은 다음날 아침 ‘불법체류’라는 이유로 수갑을 찬 채 보호자 면담도 못하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쳐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고, 10월 5일 보호자도 없이 인천국제공황을 통해 몽골로 추방되었다.
이주민 120만 시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한국 사람들’이란 말은 흔한 표현이다. 여기에 무엇이 한국/한국인이며 어디까지가 한국/국민인지에 대한 질문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해오면서 이러한 동질성에 대한 믿음은 도전받고 있다. 아직도 단일민족이란 허구적 신화가 견고하지만 ‘열린 다문화사회’, ‘글로벌 코리아’란 구호도 생경하지만은 않다. 다문화 가정, 다문화 감수성, 인터넷 검색창이 ‘다문화’를 적어 놓으면 끝도 없이 길게 제목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십 수 년 동안 다문화라는 말이 귀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이제 서로 다른 문화들이 공존 가능한 다문화사회가 된 것일까?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다문화사회/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교육은 이주민의 한국어와 한국문화 익히기로 수렴되거나 ‘다문화 가정’ 2세들의 보완적 교육프로그램으로 축소되어 이해된다. 정부는 한편에서는 다문화와 글로벌 인재의 이중국적 허용을, 다른 한편에서는 출입국 관리감독과 단속추방의 강화를 이야기한다. 거기에 이주민을 사회불안 요인, 양극화의 주범, 잠재적 범죄자로 겨냥하는 반다문화 이데올로기 또한 예사롭지 않다.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은 진정한 다문화사회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차이 덕분에 모든 영역에서 평등하게 서로 조력하며 민주주의 공동체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그러한 환경을 위해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리’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문화사회가 지향하는 공존의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우리는 ‘다문화 교육’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그에 따라 교육 내용과 형식이 소개되는 현실을 보면서 포럼 구성원들의 각자의 경험과 그동안 포럼에서 이루어진 토론을 바탕으로 다문화/공존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 다문화사회의 비전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책이나 구호에 빼앗기지 말아야 할 사유나 느낌은 무엇인지, 그 출발 지점은 어디인지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 이 책이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 ‘들어가는 말’에서
이주인권 현장 활동가, 학자, 변호사들이
이론과 현장, 법과 제도를 횡단하며 엮은 공존을 위한 다문화 지침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여성인권포럼’은 길게는 10년 넘게, 짧게는 5년 정도 이주/인권 현장에서 활동해온 활동가, 학자, 변호사들의 모임으로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겪는 다양한 인권 침해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2005년 만들어졌다. 이후 이주여성인권포럼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주와 이주민에 대한 중요한 담론을 생산해냈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관리와 통치의 수단으로서 다문화 정책이나 추상적인 다문화 지지와 옹호를 넘어 혼종적 접촉 지대로서 다문화 현실을 지향하고 아래로부터의 다문화 실천이다.
책은 필자들의 관심과 활동 분야에 따라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누가 한국인인가’는 한국인의 자연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이해를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한국인은 어떻게 한국인이 되었는지, 거기서 혼혈인은 어떻게 배제, 추방되었는지를 살피며 독자는 우리 안의 타자, 낯선 우리의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2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는 문화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철학적 사유를 통해 다문화를 편협하지 않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자민족 단일문화 중심적으로 이해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인식틀을 제공한다. 또한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반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진 3부 ‘변화하는 현장을 찾아서’에서는 다문화사회로의 역동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트랜스젠더이자 이주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의 이야기, 본국으로 돌아간 어느 이주노동자의 한국과 본국에서의 삶,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공동체와 성매매 이주여성의 쉼터라는 장소의 중요성, 그리고 일본 다문화공생의 문화적 실천에 대한 일례로 일본 FMYY의 사례 등 다문화사회의 비전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4부 ‘법과 제도’는 통치 수단으로서의 법과 ‘지금 이곳’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모색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게 되는 이주여성의 문제, 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벌여왔던 이주민 운동의 역사와 앞으로의 실천적 과제, 국민국가의 미등록 이주민 정책에 대한 분석 등 다문화 공존과 법치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은 이론과 현장, 법과 제도를 횡단하며 건져 올린 생생한 고민을 통해 공존을 위한 다문화를 그려보게 하는 교육서이자 <미녀들의 수다>의 재미나 <완득이>의 감동을 넘어 다문화란 말을 한번쯤 고민해본 적 있는 독자라면 한국 사회 다문화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풍부한 이해와 사유를 가져다줄 입문서다.
21
한국의 경우 한 번 외국인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한국에 150년 이상 거주하여 6세대 이상 살아온 화교는 영원한 이방인 취급을 당하면서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세금을 내더라도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었다. ‘국민’에게만 허용되는 아파트 청약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구사하고 한국에 정주한 화교들은 결혼을 통한 귀화 이외에는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정부는 2003년에서야 비로소 화교가 ‘영주권’을 획득할 권리를 부여했다.
98
이방인이라는 존재는 단독으로 가능하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환대를 요청하는 사람의 권리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던) 선주민의 의아함은 이렇게 풀어야 한다. 선주민은 확실하게 고정된 주체의 위치에, 즉 모든 것이 명료한 어떤 실존의 상태에 있고, 다만 찾아온 손님만이 질문을 유발하는 애매모호한 존재라는 인식은 오해라는 것이다. 오히려 올바른 이해는 우리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라는 사실, 서로에게 질문이 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에게 우정과 환대를 기대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139
미셸은 이주노조 위원장으로서 스스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숨긴 적이 없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 사회는 그 사실을 주목하지 않았다. 만약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이 트랜스젠더였다면 훨씬 화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셸의 경우에는 ‘이주노동자’라는 정체성이 그가 가지고 있는 다중의 정체성이나 다른 차이들을 압도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이 박탈당한 이주노동자로서 그의 ‘성정체성’은 인정해야 할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141
내가 이주노동자, LGBT, 여성, 제주, 노동운동 등에 관심을 가진 것은 모두 사회적 차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소수자들은 모두 동일한 차별과 억압에 의해 고통 받고 있다. 한 집단,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내가 용인에서 일할 때 한국인 노동자들은 원래 한 사람 당 2,000개의 칩을 점검해야 했다. 하지만 필리핀 노동자들이 들어온 이후 4,000개로 늘어났다. 이제 그들은 이주노동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들이 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억압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방관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158
제이는 귀환 후 한국의 활동가들에게 ‘당신은 한국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니 돌아가서도 노동운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제안을 받곤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2만 8,000원인 노동자의 월급 가지고는 일곱 식구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를 경험한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자성으로만 환원시키기는 어려웠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다른 이주노동자들 역시 제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귀환 후 자신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사회적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보지 않고 ‘당신 나라를 짊어질 노동운동가로 살라’며 계급에 기반을 둔 단일 정체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짊어지고 다니는 다중적 정체성을 가진 이주민에게는 불편한 제국주의적 권유일 뿐이었다.
185
그녀는 스스로를 ‘한국인’으로도 ‘필리핀인’으로도 동일시할 수 없으며, 이는 이주자들의 정체성을 단순히 반작용적인 종족정체성의 소생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그녀는 여기도 저기도 아닌 두 가지 정체성 사이의 공간,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들에게 이주는 영원히 자신의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home’을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는 과정이 된다. 따라서 잃어버린 과거와 뿌리 내릴 수 없는 현재 사이를 살아가는 그들이 ‘진정한 home’을 찾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