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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대륙의 꿈-고구려전 글/사진: 이종원
대륙의 꿈 드넓은 광야를 달렸던 고구인들의 정신과 대륙으로 뻗어갔던 고구려인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다. 특히 8월 19일에는 38차 정기답사지로 백두산과 고구려 집안 유적지답사가 예정되었기에 이번 전시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답사 참여자들은 이 전시회를 꼭 보길 바란다. 도록(1만2천원)은 못 사더라도 3천원짜리 안내서만 구입해도 고구려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은 파악할 수 있다. 전시내용도
훌륭하다.북한에서 대여한 삼국시대 국보급 유물을 그대로 전시했고 고분·왕궁의 모형과
고구려 벽화를 실물과 다름없이 생생히 그려 냈고, 고구려인의 삶을 다룬 영상물까지
보여주어 일반인들도 쉽게 고구려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입장료 성인 7백원/아이 무료) 앙코르왓의 부조를 보고 부러움 섞인 시샘을 보냈는데...그보다 천년 전에 우리 민족은 더 위대한 채색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고구려인의 예술혼과 힘찬 기상을 접하고 한동한 뿌듯한 자부심의 바다에 을 허우적 거렸다.
청야수성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헌준한 지형화 지리적 잇점을 백분 활용한 기습공격과 청야수성을 들 수 있다. 淸野守城은 아군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적군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고구려 특유의 전술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성밖의 식량과 물자등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것을 성안으로 옮긴 후 성곽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성곽은 대부분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기에 아무리 대군이라도 공격할 수 있는 면이 좁아 공격하기 힘들다. 고구려군은 장기간 농성전을 수행하고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적의 보급로로 차단하여 반격을 가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수양제 침공때 요동성 전투와 당태종의 안시성 전투때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개마무사는 철갑으로 사람과 말을 모두 무장시킨 군사에 대한 호칭이다. 고구려의 기마부대는 세계 최강이었다고 한다.
KBS 역사스페셜에 로마병사와의 대결한다면 고구려군이 백전백승이라고 말했다. 그 승리의 원동력은 기마부대이며 발에 끼는 등자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구려 군은 갑옷이 무거워서 넘어지면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화살을 맞아도 등자가 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싸울 수 있다고 한다. 등자 본체부분에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3개의 도드라진 턱이 있고 고리부분에는 4각형의 구멍이 뚫어져 있다.
고구려 보병이다. 주로 칼로 무장했으며 도끼로 무장한 부월수, 긴 창으로 무장한 장창수가 있다. 큰 돌을 적에게 날리는 포병도 있다. 첨단 병과다.
고구려의 창이다. 삼지창도 있고 이지창도 있고... 창에는 술을 달았다고 한다. 창으로만 싸우면 인간의 반사능력 때문에 창끝을 피할 수 있지만 술을 달게 되면 적의 시야에 집중도가 떨어져 쉽게 섬멸할 수 있다고 한다.
짧은 칼과 긴칼이 있는데 끈을 손에 묶었다고 한다. 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최근 동해에서 총을 빼앗긴 군인을 보면.. 한심
고구려의 활은 크기가 작다고 한다. 말을 타면서 적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휴대성을 중요시 여겼다. 화살촉이 넓은 것은 수렵용이고, 좁은 것은 전쟁시 인명살상용이다. 활의 재료는 소의 갈비뼈를 썼고 부분적으로 뿔과 나무도 썼다고 한다. 활이 날아갈 때 때 "획획 " 소리가 들리면 짐승들은 그 소리에 놀래 오금을 저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3세기에 만들어진 철제말이다. 말에 갑옷을 입힌 개마의 모습과 마구장식이 돗보인다. 강원도 철령에서 발견되었다.
해뚫음 무늬금동장식품 고구려의 대표적 금속공예품이다. 평양 진파리 7호무더에서 발견되었고 4-5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복숭아를 절반 잘라 옆으로 눕힌 형태다. 중앙에는 구슬을 박은 두겹의 동그라미 테가 있으며 그 안에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까마귀를 그려 넣었다. 구름문양과 봉황새의 율동감이 뛰어나다. 테두리는 넓고 좁은 두 겹의 테를 두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구슬을 새겨 넣었다. 뒷면에 나무판을 대었는데 나무판과 금동판 사이에 딱정벌래의 날개를 깔아 금녹색바탕을 만들어 금동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대동군에서 출토한 금 귀걸이...조선중앙력사 박물관 소장
영강7년명 금동광배 평양 평천리 폐사지에서 발견된 광배다. 고구려는 고분, 산성등으로 대표되는 돌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금속공예의 에술미도 그에 못지 않았다. 이글걸리는 화염문이 불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두광에는 인동문을 둘렀고 도톰한 연꽃문양을 새겨 넣었다. 광배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불상은 얼마나 화려할까?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보물의 가치를 높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륵삼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어기를 기원하며 미륵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복스럽게 생긴 지장보살이다. 주먹만치 작지만 옷주름과 지팡이등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귀면화 고구려 사람들의 넉넉한 표정을 보니 흐믓한다. 생긋 웃는 모습이 천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 안동의 하회탈을 보는 듯하다. 백제의 기와보다 양감이 뚜렷하여 힘이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아프리카 부족장의 얼굴같다. 눈섶, 코, 눈 뺨이 강조되었다. 눈 튀어 나왔네. 막새의 양감도 백제와 비교가 된다. 귀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막새도 보인다.
복스런 연꽃문양...
이형기화..가운데가 볼록 튀어 나와 길게 이으면 멋진 문양이 될 것이다.
강원도 강서에서 발견된 돌 소로와 첨자. 무덤내부를 목재건물 구조로 꾸며 놓았을 것이다.
일반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3D 화면을 만들어 놓았다. 대성산성과 안학궁 그리고 안악고분군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안학궁 모형...외전이 경복궁 근정전보다 3배나 컸다고 한다.
동명왕릉 북한의 역사왜곡으로 보았는데..이곳의 설명문을 보니 수긍이 간다.동명왕은 졸본에 나라를 세웠기에 평양에 왕릉이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시조님의 능을 가져왔다고 한다. 왕릉앞에 원찰이 있다.
벽화속에 나타난 고구려 악기를 재현해 놓았다. 고구려 악은 우리에게 사라졌지만 일본에는 남아있다고 한다.
이번 전람회의 하이라이트는 고구려 고분벽화다. 북한 화가가 실물크기로 그려 놓은 벽화에 그만 넉이 빠졌다. 벽화그림에만 거의 3시간을 넘게 할애했으니까.....정수가 빨리 가자고 난리를 쳤지만 이 그림을 보고 어찌 발길을 돌릴 수 있을까? 이 그림은 부처님께 불공드리는 장면이다. 고구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부처님도 이채롭다. 가장 왼쪽 그림에는 연꽃에서 젊은 부부로 환생하는 글림이 나온다. 염원의 내용이기고 하다.
부부가 절을 하는데...팬을 의식했는지 옆을 보고 절을 한다. 일종의 초상화역할도 앴을 것이다.
마차의 바퀴돌리기 묘기다. 궁근 바퀴와 휘어진 나무, 나풀거리는 옷주름...그리고 표정.
우리가 답사때 볼 집안의 5호묘에 그려진 벽화의 일부분이다. 해와 달의 신을 보여주고 있다. 달의 신에는 세발 달린 까마귀를 그려 넣고 있다. 꿈틀거리는 옷주름과 율동성을 보라.
피리를 불고 있는 비천상, 다시 하늘로 솟구칠려는 장면이다.
비천상이 미녀가 아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그려넣고 있다. 그렇다면 천사를 그린 것이겠지. 하늘나라의 마음은 아이들마음이라고 했던데...성경에도 그렇게 쓰고 있다.
고구려의 예술혼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중섭의 어린아이 그림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선을 그렸건만 거기엔 넉넉함과 미소가 묻어 있었다.
강서대묘도. 상징과 절제를 강조한 3기 무덤의 대표적 작품이다. 고대에는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자를 시중 들던 사람까지 함께 묻는 순장의 방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죽음 뒤의 세계를 살고 있는 세계와 동일시하여 내세에도 현세에서와 같은 신분적 지위를 누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죽어도 처첩과 시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생전과 똑같이 즐거운 삶을 누리기를 바랬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죽은 자의 세계는 현세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2기인 3세기 말부터 5세기 초까지 장식이 상징화 되고 사신도가 나타났으며 불교의 그림도 나타난다. 3기인 6세기에서 7세기 중엽에는 묘제가 더욱 간결화 되고 상징하된다. 배경도 없이 사신도만 그려 넣은 것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대략 90여기이며 평양 안악지역에 72기 환인, 집안지역에 22기가 있다.
1기의 대표적 벽화인 안악3호분. 여주인공과 시녀. 벽화의 주인공은 얼굴을 크게 그려 넣어 시선을 끌게 했다. 얹은머리와 화려한 색상의 옷.
시녀의 머리와 의상도 눈여겨 볼 만하다. 입술에 작게 연지를 바르는 것이 당시 유행인가보다. 복스럽고 후덕한 얼굴이 당시의 미인상이다.
벽화를 보고 재현한 고구려 옷...정수도 이 옷을 입고 싶은가보다.
안악 3호무덤의 마굿간 그림..머리를 쭉 내밀고 여물을 먹고 있다. 눈동자가 살아 있다.
대 행렬도
멧돼지를 잡는 고구려인..급박한 순간을 잡았다. 영물인 하얀 강아지도 보인다.
집안에 있는 무용총의 수렵도 그림이다.. 꿈에서나 볼 정도로 신기한 그림이다.
말을 타고 뒤를 보며 사슴에게 활시위를 당기는 고구려인. 호랑이도 잡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니 한국양궁이 세계 제일이라는 소리를 듣지..무인들의 기상이 느껴진다.. 고구려 사람들의 신분은 머리에 꽂은 깃털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유라시아 벽화에도 고구려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안악 3호분의 북벽우물...고구려의 항아리와 나무에 홈을 판 것도 보이고 네모난 우물도 보인다. 기중기로 물을 퍼냈다.
(사진)여물을 먹고 있는 소그림. 2천년의 세월동안 색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고구려에도 물감이 있었을까? 이렇게 예쁜 색을 낼 수 있으며 천년을 넘게 색감을 유지 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천연염료에 있었다. 흰색을 낼때는 석회, 회색은 갯벌의 흙, 붉은 색은 황토흙, 푸른색은 구리를 산화해서 만들었고, 검은색은 기름이나 소나무를 태운 먹을 사용했다고 한다.붉은색은 녹슨 쇳물... 제작기법은 벽면에 직접 그리는 '조벽지법'과 벽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그리는 '화장지법'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회칠을 하고 마르기 전(24시간)에 그리는 습지벽화법으로 그렸고 후기에는 돌 위에 직접 그리는 조벽지법을 많이 사용되었다. 조벽지법으로 된 벽화는 선명도가 뛰어나지만 공기와 습기에 약해 무덤이 개봉되면 금방 색이 변하는 단점이 있다. 화장지법은 산화가 덜하여 오래 보존되는 반면 회벽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무덤설계, 벽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전문직업인이 있다고 한다.
길림성 집안에 있는 각저총에 있는 씨름그림이다. 사진에는 없지만 옆에 백발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 심판을 보고 있다.
상대편의 약점을 노리고 있는 씨름꾼...오른쪽이 고구려 사람이고 왼쪽은 코가 큰 서역사람이다. 누가 이겼을까? 물론 고구려 사람이다. 벌써 삿바를 잡는데 고구려 사람은 여유가 있고 서역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오늘날 우리네 민속씨름 장면과 똑같은 것이다.
벽화에도 단군신화가 그려져 있다. 곰과 나무 나무는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 역을 한다고 믿었다. 아마 신단수가 아닐까?
평양의 진파리 1호분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사신도와 꿈틀거리는 문양들...천년의 신비에 흠뻑 빠져본다.
해의 신에는 세발달린 까마귀가...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
고구려의 여인..작은 땡땡이 문양은 귀족들이 입었고 큰 문양은 서민들이..왜냐하면 작은 문양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오늘날 패션은 정반다....자갈치시장 아줌마의 몸빼옷이 아닌가?
중국의 동북공정 책들...무려 3조원을 쏟아 부으며 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 줘야하는 것은 돈 몇 푼보다도 살아 있는 고구려의 정신이 아닐까?
그외 조선의 수도 서울에 관한 유뮬,생활상,문화등 전시물이 있고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공간과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바다 존도 있다.
궁중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무료)
황후옷이네...
구내에 깔끔하고 근사한 식당이 있다. 창밖의 풍경이 일품이다. 돈까스 6천원, 오무라이스 5천원,우동 4천원
"정수야..재미 있었니?" 대답 대신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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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두산 중국 답사 참가자는 꼭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도움을 받을 겁니다.
백두산은 못 따라 가지만 담주에 여기라도 가서 맘이나 달래야 겠네요...^^
대장님, 위의 자료사진 중에 제가 몇 장 인화를 하고 싶은데, 본래 사이즈를 얻을 수 있는지요. 아이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저도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시원치 않아서요. 정수는 돈가스먹고 대장님은 쫄쫄 굶은 그 식당 점심시간에 가면 반찬이 푸짐한 3500짜리 백반을 먹을 수 있어요^^*
비움님 사진에다 오른쪽 마우스를 누르면 화일명이 나옵니다..필요하신 사진 말씀 주시면 원본화일 보내드리겠습니다.
대장님,정수에게 어찌 저리 큰 가방을 들게 하셨어요...그러니깐 자꾸 가자고 보채죠~^^ 음악과 절묘한 어우러짐. 꼭 다녀와야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이 와서 그렇고...화요일은 꼭 가봐야겟어요...
좋은정보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아이를 데리고 천안두정역에서 급행 전철타고 고구려유물전 보고 왔습니다. 날씨가 너무더워 아이도 저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갔다오길 정말 잘했다 싶더군요. 기회가 되면 답사여행에 꼭 참석해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