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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시】
엄 씨네 일 푼 날
맹문재
어제 저녁부터 내린 눈이 그쳤지만
날씨가 독촉장처럼 차다
엄 씨네 도라지 밭이 팔렸는데
여름에 일한 품삯을 계산해주지 않는다고
친척 아주머니께서 꿈에 이르셨다
해몽하기 어려워 그냥 아침을 먹었다
결혼과 부고의 연락이 한꺼번에 왔지만
먼저 가야 할 데를 정하지 않았다
이사 다니는 일이며 슬픈 웃음에 익숙한 나는
어느덧 선택의 달인이 되었다
날이 찬데도 화분들은 창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도 몸을 돌리고 있다
엄 씨네 도라지 밭 일이 비로소 풀렸다
나는 빌린 돈들을 따져보고
부의금과 축의금 액수를 정했다
(『문학사상』, 2013년 2월호)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맹문재
1
내가 주동이 되어 우리 집 아이들과
처제네 조카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에 갔다
아이들과 물장난을 치며
파도처럼 놀았다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샤워실에서 몸을 씻기는데
서로 벗은 몸을 보며 깔깔거리고 난리였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의 시장터로 갔다
짜장면을 사줄 생각이었다
2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어제는 연구실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나도 변했나?
지난주에는 간과 담낭 재검이 필요하다고
건강검진을 받은 데서 연락이 와
큰 병원에서 요구하는 영상 자료를 받으러 갔다
네 시까지 오라고 했다
가는 길에 근처의 회사에서 일하는 선배와 저녁 약속을 했는데
자료를 받고 나니
두 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놀 줄 몰라
헤매다가 찾은 사우나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이발까지 했다
3
아무래도 간밤의 꿈이 놀라는 것으로 해몽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간 적 없이
나의 젊은 날은 지나갔다
무얼 하고 노나?
누구하고 노나?
나는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편한데……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시향』, 2013년 봄호)
【시집 수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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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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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에 가까운 그의 결단을
지천명처럼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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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하루 14시간의 작업이나
단수(斷水) 같은 월급이
문제가 아니었네
위장병이나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문제가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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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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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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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까지 알려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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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집, 『기룬 어린 양들』, 푸른사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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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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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금속 판금부에서 일해도
네 식구 살기 어려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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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이자보다 무서운 월세가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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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 화장장 1번 화구 앞에서
그대의 어머니가 주저앉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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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 두 통을 가방에 넣고
서울 세종문화회관까지 올라온
전라도 송정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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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러일으키는 동갑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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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집, 『기룬 어린 양들』, 푸른사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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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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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문학정신』 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사과를 내밀다』『기룬 어린 양들』이 있음.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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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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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왜 시가 아니란 말인가?
- 맹문재, 기룬 어린 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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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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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이 시집을 처음 읽고 잠시 들었던 개인적인 의문을 쓸 필요가 있겠다. 맹문재의 이 시집을 읽은 후 ‘과연 이것을 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에 대한 관념으로는,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이 시로 인식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시집에 실린 작품 중 임의로 아무 것이나 들추어보자. 어떤 시를 보더라도 1970년대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죽은 ‘열사’들의 일대기가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하나의 전기내지는 평전의 변용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과연 시의 형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관점에서 시는 일정한 주제의식을 선명한 이미지와 내적 리듬을 통해 풀어낸 언어 형식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규정은 개별 문학사조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어 구체적으로 현상되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의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즉, 시적 발화의 주체를 지식인-엘리트로 한정짓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명료한 ‘주제 의식’을 모더니즘적인 회화성, 혹은 낭만주의적인 음악성에 기반을 두고 명징한 언어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문화자본을 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시에 대한 정의가 종종 지식인의 내적 감정의 토로, 사회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비판적 인식의 형상화, 혹은 언어 자체가 지니는 미적 가치에 대한 지식인의 경이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 반복 재생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들은 그 무시할 수 없는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시적 발화의 주체를 지식인-엘리트 집단으로 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그 시적 주체의 측면에서 시를 결국 지식인-엘리트의 발화 형식으로 한정짓고 있다는 점이다. 비단 시뿐 아니라 소설, 비평, 희곡 등의 근대문학 장르들은 모두 이와 같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근대문학의 형성 자체가 문화적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 핵심에는 문학 장(場)의 구성 원리로서의 ‘예술의 규칙’(부르디외)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전 시기 풍부하게 존재하던 하위 주체들의 자기 재현과 발화 형식으로서의 또 다른 문학은, 근대문학의 미달태로 간주되었으며 결국 문학사의 주변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몇몇 문제적인 텍스트들을 통하여 하위 주체의 발화 형식으로서의 또 다른 문학은 미미하지만 꾸준히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왔다. 예컨대 최서해의 「탈출기」로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 노동자의 자기 재현 형식으로 자리 잡고 2012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논픽션 양식이나, 혹은 임화의 ‘단편서사시’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양상으로 변주되어온 일련의 지배적 문화 규범의 전유 형식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흐름은 좁은 의미에서의 근대문학 장(場)의 범주를 넘어, 하위 주체를 텍스트의 발화 주체로 설정하기 위한 미학적 실험들의 과정으로 요약 가능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맹문재의 시집을 두고 굳이 일반적인 시적 규범에의 적합성 여부를 묻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하위 주체를 시적 발화의 주체로 설정하기 위한 미학적 실험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며, 나아가 이로부터 하위 주체를 문학적 주체로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미학적 형식의 가능성을 추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고정화된 시적 규범의 틀에 텍스트의 풍요로움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좁은 틀에 갇혀진 시에 대한 장르적 편견을 새로운 문제 설정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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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맹문재의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형식은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전기나 평전과 같은 논픽션 양식이 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는 실제 노동운동 과정에서 산화해간 열사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 시들은 일종의 논픽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시가 일반적인 전기나 평전 양식과 구분되는 것은, 그의 시에서 복원되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주류적인 지배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전기나 평전은 주로 주류적인 지배 역사 서술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인물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룬다. 이는 결국 역사의 주체를 소수 권력층으로 한정짓는 효과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정작 대문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하위 주체들의 목소리는 공백으로 남게 된다.
맹문재의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인 전기나 평전 양식을 차용하고 있으나, 이들 양식과 결정적으로 변별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소외되고 추방된,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의 폭력 속에서 다시 복원되어야 할 인물들의 목소리를 다루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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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 원목공장에 다니는 어머니를 구하려고 중3부터 공장에 나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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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와 타일을 만드느라 손가락이 깨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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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약품 냄새가 덮쳐 두통을 앓고 코피를 쏟다가 반신불구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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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글자를 모르고 큰소리를 모르는 그녀의 어머니를 불러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속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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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산재 처리는 사고도 없고 신문고도 없는 연극으로 끝났네
- 「김성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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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시를 읽기 전까지 나는 ‘김성애’가 누군지 몰랐다. 대문자 역사에 그녀의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야말로 이른바 ‘한강의 기적’ 이면에 가려진 우리 현대사의 어둠이 아닌가? 대문자 역사는 언제나 지배층의 역사일 뿐이며, 하위 주체의 역사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만약 시적 윤리가 공적인 층위에서의 경제 성장 지표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면의 낮은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라면, 위의 작품이 시적 윤리를 수행한 중요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대문자 역사에서 지워진 ‘김성애’의 삶을 일대기 형식으로 풀어내면서 그녀의 삶에 새겨진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전히 시적 윤리가 놓여야 할 자리가,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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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데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시적 문법은, 아무래도 지배적인 역사 서술, 혹은 규범적 문학 장의 문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시적 형식은 내용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며, 동시에 시적 내용은 그에 걸맞은 형식의 모색을 통해서만 외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과 모색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시는 시적 윤리의 층위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미학적 층위에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맹문재는 자신의 목소리를 전면화시키는 대신, 하위 주체 스스로의 발화를 복원하려는 미학적 실험과 모색을 보여준다. 이들 스스로의 발화는 많은 경우 삐라나 성명서, 르포나 체험 수기 등의 형식으로만 남아 있다. 이러한 형식을 시에 도입함으로써 지식인-엘리트에 의해 해석되어진 하위 주체가 아닌, 그들 스스로의 발화를 복원하기 위한 실험이 이 시집을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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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이 바로 공장 노동자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면서도 가장 천대받는 이 나라 노동자들.
허울 좋은 고도 성장과 알량한 선진 조국의 환상 속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월세 방값에 한숨지으며, 먼지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캄캄한 작업장에서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고, 언제 산업재해로 죽을지도 모르는 생지옥 같은 공장에서 뼈 빠져라 일해도 돼지고기 한 근도, 딸네미가 입고 싶어 하는 꼬까옷 하나도 마음 놓고 못 사고, 천 원짜리 싸구려 옷도 큰맘 먹어야 겨우 살 수 있는 이 땅의 1천만 노동자를 사랑하셨군요.
- 「조정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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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더 일하기 운동!
불황 극복 50일 작전!
3무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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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하는 사장에 맞서
그녀는 비문을 쓰듯
호소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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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말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 「권미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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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들은 공통적으로 하위 주체 스스로의 발화를 시에 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정식」의 경우 동료의 추도문이, 「권미경」의 경우 그녀의 유서가 그대로 시에 차용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러한 삽입 텍스트들은 자칫 지식인-엘리트로서의 시인에 의해 ‘전유’되기 쉬운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그들 ‘스스로’가 발화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많은 민중시들이 빈번히 저지른 미학적 서투름 중에 하나는, 지식인-엘리트의 관점에서 하위 주체의 삶을 선험적으로 해석하면서, 정작 하위 주체의 생생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위한 미학적 실험과 모색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맹문재의 시들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시가 추도문이나 유서를 비롯한 하위 주체 스스로의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를 삽입하여 낮은 목소리 그 자체를 발화하도록 만다는 미학적 모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시가 진정 하위 주체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적 내용의 측면뿐 아니라 그 형식적 측면에서도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위한 실험과 모색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럴 때에만 지식인-엘리트의 관념적 급진성을 극복하고, 하위 주체의 ‘낮은 목소리’를 복원하는 형식, 이를 통해 하위 주체를 시적 화자로 설정하는 미학적 형식의 고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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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왜 복원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단순히 대문자 역사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이들의 삶을 재현해야 한다든가, 혹은 시적 주체를 확장시켜야 한다든가 하는 진술은 지나치게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통해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다. 당연하게도 사후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시인의 시쓰기 작업은, 곧 하위 주체의 목소리와 시인의 문제의식이 마주쳐서 만들어내는 대화적 공간(바흐친)의 창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종종 두 겹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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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와 복종의 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고 하는 사람들을 짓밟고
그 쓰러진 얼굴 위에다 침을 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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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지입제를 철폐하려고
도급제를 철폐하려고
사장의 폭행을 철폐하려고
그는 시를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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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끼니도 거른 채
철조망을 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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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장에 남긴 김처칠의 시 「철조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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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처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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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두 개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김처칠’의 목소리인 「철조망」의 일부이며,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시적 화자의 해석이다. 이 두 겹의 구성을 통해 비로소 하위 주체와 시적 화자간의 교감과 연대가 수행된다. 시적 화자는 ‘김처칠’의 목소리를 시에 삽입하여 복원하는 동시에, 그의 “철조망을 씹”으며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시적 화자는 자신의 시쓰기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는 계기를 생성한다. 이는 다음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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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하고 안이한 삶이 아닌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아는
진짜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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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비문을 읽다가
진짜 노동자를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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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 강한 노동자
올바르게 살아가는 노동자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노동자
분투하는 노동자……
- 「김종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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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 역시 ‘김종수’의 비문과 이에 대한 시적 화자의 해석으로 이루어진 두 겹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하위 주체의 목소리는 시적 화자로 하여금 “진짜 노동자”의 삶에 대해 사유하도록 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비로소 시적 화자는 문학 창작 노동자로서의 시인의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하위 주체의 목소리와 시적 화자의 목소리의 겹침을 통해 독특한 대화적 공간을 창출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 결과 하위 주체의 목소리는 단지 박물지적인 기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의 시적 화자의 시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형성하는 계기로 변증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왜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하위 주체의 목소리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목소리가 주체의 삶과 교감하며 연대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며, 이로부터 새로운 시적 주체의 탄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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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첫 부분에서 맹문재의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과연 시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쨌든 지배적인 문학 장에서의 규범에 의하면 낯선 진술들로 가득 찬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실 고정된 시, 고정된 문학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엄밀히 말해 사회적 제도로서의 문학 장이 형성되며, 그에 따른 ‘예술의 규칙’에 따라 장르의 규범이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이 시인지, 혹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시집이 어떠한 방식으로 하위 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할 수 있는 ‘다른’ 형식을 실험하고 모색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문자 역사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이들의 일대기의 서술과 하위 주체 스스로의 발화의 복원, 나아가 이를 통한 하위 주체와 시적 화자간의 대화적 공간의 창출을 시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신자유주의의 폭력이 도처에 난무하는 시대, 이를 외면한 내면의 토로와 언어의 조탁만을 시로 한정지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당신에게 물을 수도 있겠다. ‘이것이 왜 시가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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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成奎│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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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표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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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죽음은 모두 타살이라고 쓴 적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강요된 노동을 해야 하는 기계 노동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의 활동이 아닐 뿐더러, 정상적인 수명을 다 누리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의문사든, 자결이든, 투신이든, 분신이든 극단적인 탄압 속에서 이루어진 죽음은 모두 사회적·정치적 타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집을 받아들고 혼란에 사로잡혔다. 그가 신중하게 쓴 시가 왜 시 같지 않은가? 우리 시단에 뛰어난 시적 성취로 많은 주목을 받아온 시인에게 무슨 시적 억하심정이 있는 것일까? 『유심』에 연재된 시들을 빠짐없이 읽어왔으나, 다시 시집을 두 번 더 읽은 후에야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집에 실린 65편의 시는― 시인이 의도하지 않았을 지라도― 1970년대 이후 이 땅의 노동열사 68위(位)의 처절한 비문(碑文)이 아닌가! 이 시대 성장 신화의 제물로 바쳐진 기룬 양들의 뼈와 분노와 슬픔을 한 점 한 점 수습하여 시의 집에 안치하고 묘역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시가 이 시대에 무엇을 애도해야 할 것인가? 맹문재 시인이 아니고 누가 이런 방식으로 질타할 수 있는가? ‘오든’의 시가 불현듯 떠오른다. “시계를 멈추어라/전화기를 뽑아라”. 이 시집을 읽는 동안 “개들이 짖지 못하게 하라”.
―백무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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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진】
2013년 7월 7일 박광숙 선생님 댁을 찾아서. 신승철, 정원도, 심창만, 박민규, 서안나, 최기순, 성향숙, 전영관, 배성희, 신미균, 박설희, 이주희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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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시인에게 듣다】
시인 정신은 의지에서 나온다는 김규동 선생님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