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파벨만스>
1. 인생의 황혼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지는지 모른다. 이 시대 최고의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자신의 영화적 삶, 특히 영화계에 입문하기 전 풋풋한 젊은 시절의 열정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파벨만스>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두려움으로 극장에 들어갔지만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화면의 스펙터클과 이야기의 황홀함에 유혹되어 점점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소년의 이야기 담겨있다.
2. 영화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펼쳐지는 모험과 노력 그리고 그 사이에 진행되는 가족들의 희노애락이 병행된다. 따뜻하고 가족적인 천재 컴퓨터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어머니 사이에서 소년은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물질적으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은 격려를 받고 성장해간다. 하지만 성장 과정은 수많은 난관과 아픔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컴퓨터 기업의 인정을 받아 캘리포니아로 이동하지만, 아버지와의 근본적인 가치관 차이 때문에 공허했던 어머니가 벌인 아버지 동료와의 불륜 때문에 이혼이 이루어지고, 새로 옮긴 학교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받는다. 졸업을 앞두고 닥친 실연의 경험도 그의 젊음을 힘들게 한 또 다른 충격이었다.
3. 영화에 대한 열정은 일련의 아픔과 아버지의 권유로 입학한 일반학교의 일정으로 일시 중단되지만, 소년의 영화에 대한 꿈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결정적 운명이었다. 결국 소년은 대학교를 자퇴하고 영화계로 입문하게 되고, 마지막 장면 당시의 대감독 ‘존 포드’와의 만남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영화라는 세계와의 운명적 만남을 잔잔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려간다.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너의 열정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이 영화의 흥미로운 장면은 소년이 친구들과 ‘습작영화’를 만들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이다. 아버지의 2차 세계대전 경험을 영화로 옮기면서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기술과 영화 속 인물을 표현하는 진지한 감성을 연구하게 되고, 때론 가족영화를 찍으면서 화면 속에 담겨진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와의 특별한 관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영화 제작 과정 속 특정한 인물에 대한 영웅적 시선과 찌질한 모습이 어떻게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표현되는가를 보여주면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능력과 새로운 시선이 창조되는 과정의 아름다움에 동참하게 만든다. 유대인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위치에서 살아야 했던 소년이었지만, 소년이 외로움과 주변의 질시를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가족의 사랑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었음을 영화는 고백하고 있다.
5. 자신의 과거를 하나의 작품으로 재현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기도하다. 문화센터의 <자서전 쓰기> 강좌가 인기가 높은 것도 그런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만족과는 별개로 완성된 작품이 혼자의 즐거움을 넘어 타인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 대상이 된 사람이 과거에 보여준 성취나 특별함과 관계있을 것이다.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는 그것은 공유되지 않는다. 스필버그의 자서전적 영화를 보는 것은 그의 위대한 영화적 성취의 출발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조용필도 아바의 히트곡을 모아 만든 <맘마미아>와 같은 뮤지컬을 제작 준비 중이라 한다. 자신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또한 하나의 ‘자서전’일 것이다. 자서전에 대한 관심에 대한 시점은 대략 스필버그나 조용필처럼 70이 넘으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6.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인생을 회고하고 싶고, 그것을 공유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만의 몫일까? 인간의 불멸성에 대한 욕구는 자식을 통해 연결되거나 때론 그의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가? 인간은 왜 자신이 살았던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가? 결국 그것은 공허에 대한 두려움때문일지 모른다. 무로 돌아가는 것, 기억되지 않는 것, 이런 두려움이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존재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다. 이런 욕망이 인류문명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스필버그와 조용필처럼 정리할 수 있는 흔적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남은 기간 과거에 매여 살 수밖에 없음을, 성공의 기억이 그의 남은 인생을 지배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삶은 결코 과거에 구속되지 않는다. 미래의 남은 시간은 여전히 희망을 주는 시간이다. ‘성공하지 못한 삶’은 그런 점에서 여전히 자유롭고 흥미롭다. 언제나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 "인간은 왜 자신이 살았던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가? 결국 그것은 공허에 대한 두려움때문일지 모른다. 무로 돌아가는 것, 기억되지 않는 것, 이런 두려움이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존재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다. 이런 욕망이 인류문명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