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작가 ; 루이자 메이 올콧(1832-1888)
초판 발행 ; 1868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1868년 미국의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 1832년 11월 29일 - 1888년 3월 6일)에 의해 쓰여진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은 1868년과 1869년을 통해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첫 권인 《작은아씨들》은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마치 네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상업적으로도,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성공을 거두어, 두 번째 출간한 《좋은 아내들》의 성공을 촉진했고 이 책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들이 단권으로 출간된 것은 1880년이며, 이 때의 제목도 《작은아씨들》이었다. 올컷은 이후 2개의 후속작을 발표했는데, 《작은소년들》(1871), 《조의 아들들》(1886)을 각각 내놓았다. 작은 아씨들은 이상적인 가족의 영원한 상징이 되어 있다.
(개요)
남북전쟁을 겪는 19세기 미국이 무대이다. 청교도가 종교적 배경인 마치 가문의 네 자매의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속편이나 그 후속편으로 이어진 자매들의 결혼이나 이후의 생활이 그려져 있다. 원제가 되었던 ‘리틀 위민’(Little Women)은 저자의 아버지가 진짜 처녀들을 호칭하는 데 사용한 말로, 단순히 어린 소녀가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여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난과 역경, 도덕적 유혹과 자절 등과 싸우는 내용이 주요 줄거리이다. 북군에 입대하여 전쟁에 나간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어머니와 네 자매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그등의 일상은 이따금씩 날아오는 편지, 연극, 친절과 심술이 뒤섞여 있는 행동들, 꿈과 야망으로 하루도 조용할 새가 없다. 매그가 결혼하여 더나가고, 조는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베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엥이미가 사랑에 빠지면서 네 자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네 자매는 소녀 시절을 마감하고 여인으로 한 걸음씩 성숙해 나갔다.
제 1편 속편에서는 성서나 개신교 문학인 《천로역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가가 하는 자선사업의 영향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작은아씨들의 "곰 학원"의 모델은 저자의 아버지가 열었던 학교이다. 개성 있는 아이들의 생생한 삶과 각자의 결점과 분쟁 뿐 아니라 특히 당시로서는 특이하다고 할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통합 교육도 그려져 있다.
넷째 작품에서는 이미 "곰 학원"은 대학 캠퍼스로 리모델링되어 있고 메그와 에이미의 딸들이 작품상 중요한 존재로 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영화, 연극 외에도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사랑 받고 있으며, 특히 1933년, 1994년 MGM 영화는 잘 알려져 있다.
<줄거리>
마치 가에는 네 딸이 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는 딸들과 추운 겨울을 견디며 살고 있다. 다섯 식구는 넘치는 사랑을 확인하며,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적극적이다.
맏딸 메그는 온화하고 포용력 있으며, 자신의 삶을 온명에 맡기려 하는 전형적인 여성이다. 둘 째 딸 조는 언니와 반대로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삶을 개척해나가는 성격을 지녔다. 셋째 메스는 내성적이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을 어려워 한다. 넷째 에이미는 토끼처럼 깜찍하고 맥내답게 귀여움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성격이 각기 다른 네 딸은 삶도 다르게 살아간다. 맏딸 메그는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진실한 청년을 만나 순조롭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주 평범하게 살았다. 둘째 조는 다르다. 자신이 원하던 작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조는 어린 시절 친구인 로리의 청혼조차도 거절하고 우정으로만 만나려 한다. 그녀는 결혼을 삶의 목표로 보지 않았다. 조는 그 어떤 환경이나 조건도 거부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열정과 목표가 분명하였다.
셋째 베스는 섬약하다. 정이 많고 조용한 소녀이다. 결국 그녀는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넷째 에이미는 깜찍하고 야심만만하다. 둘째 언니 조가 연극공연에 데려가지 않는 데 대한 불만으로 언니가 쓴 연극 대본을 난롯불 속에 집어던져 태워버릴 만큼 이기적이기도 하다. 그런 에이미에 대한 조의 원망이 깊어졌다.
어느 날 조는 남자친구 로리와 호수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 뒤따라온 에이미를 따돌리고 스케이트를 즐기는데, 얼음이 깨져 에이미가 물에 빠졌다. 조는 에이미를 구해내면서 닫혀 있던 막내 동생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리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이렇게 가족들이 살아가는 동안 전쟁에 나갔던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돌아오게 되고, 다들 오랜만에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그러나 네 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간다. 지루해 보일 정도로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가정주부 맏딸 메그, 작가를 꿈꾸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둘째 조, 어엿한 숙녀가 되어 그림에 대한 재능을 깨닫고 미술공부를 위해 유럽으로 떠나는 막내달 에이미를 이야기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흔히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가정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이다. 왜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고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걸까?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메그처럼 살면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조나 베스 , 에이미처럼 살면서 만족하는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누구나 다 살아가는 방법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므로 누군가의 삶을 자신의 가치나 기준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매끄러운 돌이나, 모난 돌이나 다 나름의 쓸모가 있다. 다른 사람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작은 아씨는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루이자 메이 올콧>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 1832년 ~ 1888년)은 미국의 여류소설가이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으나 56세로 사망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보스턴과 콩코드에서 보냈다.[1] 초절론자(超絶論者)이자 아동교육론자인 부친에게서 철저한 정신교육을 받았으며,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에 여배우 지망도 결혼도 단념하고 일찍부터 집안살림을 도우며 가계를 꾸려나갔다. 올컷은 생계를 위해 교사나 하녀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남북전쟁 때에는 간호병을 자원해 일하기도 했다.[1] 천부의 문학적 재능을 살려 잡지나 신문에 글을 기고하던 중 1863년 발표한 〈병원 스케치〉가 주목을 받았다. 이후 남북전쟁 당시의 후방인 뉴잉글랜드의 가정을 묘사한 《작은 아씨들》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외에 30여 편의 소녀소설을 썼다.
< 생애>
루이자 메이 올콧은 저명한 초월주의자인 애머스 브런슨 올콧(Amos Bronson Alcott)과 애비 메이(Abby May)의 딸이며, 현재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의 일부인 저먼 타운(Germantown)에 태어났다. 가족은 1844년에 보스턴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실험학교를 설립했으며, 또한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과 함께 초월주의자 클럽에 가입해 있었다.
유년기부터 성인기 초기에 걸쳐 올콧은 가족의 빈곤과 초월주의의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 1840년에 학교 설립 시도가 좌절된 후, 그녀의 가족은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콩코드 강을 따라 위치한 2 에이커 면적의 오두막으로 이주했다. 1843년에서 1844년 사이의 짧은 기간에는 유토피아적인 공동체인 프루트 랜드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이 와해된 후 임대 주택에 살다가 그 다음은 어머니의 유산과 에머슨의 원조에서 구입한 콩코드 집 "오처드 하우스"( Orchard House )로 이주했다. 올콧 자매의 어린 시절의 교육은 자연주의자인 소로우도 참여했지만 주로 아버지에 의한 것으로, 현대의 기준에 비추어도 또한 매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또한 가족의 친구인 에머슨과 나다니엘 호손, 마가렛 풀러 등의 작가 교육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후 올콧은 신문에 게재한 단편 "초월적인 귀리"(Transcendental Wild Oats)에서 올콧 가족이 과일 랜드에서 "검소한 생활과 고급 생각" 시험에서 경험 한 것에 대해 쓴 단편집 "실버 피처"(Silver Pitchers , 1876년)에 수록하고 있다.
성장하면서 올콧은 노예폐지론자,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1847년에 가족은 일주일 정도 도망 노예의 집에 살았고, 1848년에 올콧은 세네카 폴스 회의 (Seneca Falls Convention)에 의해 간행된 여성의 권리에 관한 책 "감성 선언"(Declaration of Sentiments)을 읽고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가난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임시 채용 교사, 바느질, 가정교사, 가사 도우미, 그리고 작가로 일을 했다. 그녀가 쓴 첫 번째 책은 에머슨의 딸 엘렌 에머슨 위해 쓰여진 ‘꽃의 동화’(Flower Fables, 1854년)였다.
1860년 올콧은 《디 아틀란틱 먼슬리》(The Atlantic Monthly) 잡지에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또한 1862년부터 1863년까지 6주 정도 워싱턴 D.C.의 조지타운에 있는 미국 병원에서 간호사를 하기도 했다. 《커먼 웰스》 지에 게재된 “병원 스케치”(Hospital Sketches, 1863년, 1869년 재판)에 투고한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그녀의 관찰과 기질에 의한 비판이 축적되어 있다. 소설 “무즈”(Moods, 1864년) 또한 면밀한 유망한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로, 대부분 A. M. 버나드라는 필명으로 썼던 열정적인 소설 이야기가 있다. “사랑의 끝 이야기”(A Long Fatal Love Chase)와 ‘폴린의 열정과 벌’(Pauline’s Passion and Punishment) 등의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에서 “포트 보일러스” 또는 “피와 번개의 이야기” 등으로 알려진 후 올콧 자신이 “작은 아씨들”에서 “작은 마음은 위험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종종 방해하거나 굴욕을 주거나 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포함하여) 하기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집요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오늘에도 독자에게도 매우 흥미를 가져다주는 작품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올콧은 어린이의 도덕적인, 건강한 이야기도 발표했다. 그리고 중반 자전적인 이야기 “노동”(Work, 1873년)와 줄리앙 호손(Julian Hawthorne)의 작품으로 의심을 받은 중편 익명 출판물 “현대의 메피스토 펠레스”(A Modern Mephistopheles, 1877년) 등의 예외를 제외하고, 성인용 작품 집필로 회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