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도 부산을 지키는 山城의 산, 금정산
(부산시 금정구, 경남 양산시 동면의 경계에 있는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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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파트 베란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좋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가 알싸한 봄바람에 몸을 움찔하기도 했었다.
날이 차츰 따뜻해지면서 옷을 가볍게 입으려는 멋쟁이들은 날씨에 몹시 신경을 쓴다.
한파가 몰려오는 때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해뜨기직전이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다.
태양이 지는 순간부터 지구는 계속 냉각되기 때문인데 아침 출근 때 춥지 않는
옷차림이라면 낮 시간 중 기온이 더내려가 추위에 떨 개연성은 낮아진다.
전남 담양군청으로 익명의 장학금이 전달되었다는 신문보도를 보았다.
중절모에 마스크를 쓴 50대 중반남자가 지나가던 주민에게 군청에 전달해달라며
줬던 술상자안에는 “등불장학금”이라는 이름과 함께 현금 1억 원이 들어있었다.
담양군은 이 돈이 2009년에 현금 2억 원을 전달했던 익명의 기부자가 다시 보낸
장학금으로 보고 기부자의 메모내용에 따라 “등불장학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아직은 메마르지 않는 훈훈한 온정이 흐르고 있다는 산 증거이리라.
오늘은 남도의 봄 마중을 나가려고 금정산을 찾았다.
부산시 금정구와 경남 양산시 동면의 경계에 있는 금정산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높이가 801m이다.
항도 부산의 진산(鎭山)으로 별로 높진 않지만 명찰 범어사를 낀 당일산행코스로
부산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이다.
주봉(主峰)인 고당峰은
낙동강 지류와 동래구를 흐르는 수영江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는 화강암의 봉우리다.
북으로 장군봉(727m), 남쪽으로 상계峰(638m)을 거쳐 백양산(642m)까지 산세가
이어져있고 그 사이로 원효峰, 의상봉, 미륵峰, 대륙峰, 파류峰, 동제봉 등의 준봉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화강암의 풍화로 인한 기암절벽이 많다.
산정(山頂)으로부터 남쪽으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215호)이 있는데,
성(城)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으며 한국의 옛 산성 중 규모가 웅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의 북동쪽 계곡부에는 한국 5대 사찰 중 하나인 범어寺가 있다.
부산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금정산은 등산도도 사방으로 뻗어있으며 山 일대 곳곳에는
동래온천장, 금광공원, 산성유원지등 각종 위락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부산의 휴식처로
손색이 없는 산이며, 경관이 뛰어나고 역사적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훌륭한 역사교육의
살아있는 장(場)이기도하다.
맑고 바람 부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목련꽃망울 부풀리는 꽃바람이 분다.
바다는 은물결 금물결 반짝이며 부는 듯 마는 듯 가만한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이 있다,
솔방울 어루만지며 오가는 솔바람사이로 논두렁 쥐불냄새, 산비탈 황토냄새가나고,
멸치 젓국냄새 곤곤한 갯바람도 코끝을 간질인다,
분다, 분다, 꽃바람, 봄바람이 불고 있다.
새 풀 옷 입고, 하얀 구름 너울 쓰고--- 봄 처녀 제 오시다 소소리바람에 움찔했다.
잠시고개를 숙였지만 거느리고 온 봄기운은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
싸한 봄 공기가 달고 맛있게 느껴지는데 벌써 꽃놀이 생각에 가슴이 뛴다.
주말부터도 기온이 오른다는데 바야흐로 본격적인 나들이 계절이다.
비 소식 없어 금상첨화라!
금광회원님들,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며 섬진강변 매화꽃에 취해보고 부산에 무등산이라
자랑하는 금정山산행도 즐겨보기로 했다.
오늘도 40명이 넘는 회원들이 금광의 금정산산행에 참여했다.
청봉 팀도, 산행이사와 동행한 일행도 꾸준하게 참여를 하고 있으며, 화순 봉철형도,
김 광수소장님, 솔바람님도 오래 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금광의 기존회원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오늘 같은 날은 신규 회원수가
더 많았는데 양동매씨들이 은근히 걱정을 한다.
산행버스는 산성고개에다 우리일행을 내려주고 하산지점인 범어寺주차장으로 떠났다.
오늘산행코스는
산성고개 -동문 -의상봉 -원효峰 -북문 -고당봉(금정산) -철탑 -범어사-주차장으로
내려오는 4시간30분 소요일정이다.
부산지역날씨는 맑고 좋았으나 바닷바람이 계속해서 불고 있었다.
산의 높이는 무등산의 중봉정도이지만 산이 가파르지 않았고 산성이 고개 밑에서부터
고당봉까지 이어져 있어 산행路가 넓게, 그리고 잔돌을 박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시민들과 산악인들이 합심하여 보호할 만큼 경관과 역사적인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좋은 산이었다.
인구가 많아서인지 평일임에도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무등산 보다 훨씬 많았다.
금정산성은 우리나라 城으로는 가장 넓은 248만평을 둘러 싼 산성으로
길이가 16.5km 높이가 1.5m에서 3.2m까지 이른다.
주로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에는 군기고, 화약고, 내동헌, 창고 등이 있었으며 이 성에
배치된 주된 병력은 국청寺와 해월寺 범어寺의 승려들이었고 큰 일이 벌어졌을 때는
동래, 양산, 기장 등의 승려가 지키도록 계획을 짜 놓았다 한다.
왼쪽으로는 양산시가 오른쪽으로는 금정구의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의상봉과 원효峰을 지나니 북문이 나왔고 북문과 산성일부는 현재 보수작업 중이었다.
북문입구에는 “무등산의 영원한 벗 금정산”이라는 석비가 서 있었는데 영호남산악인들이
우정을 다지기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북문에서 고당봉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른 암벽이었으나 계단을 만들어 놓아 큰 무리는
없었다.
고당봉 바로 밑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금샘”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동래현 산천조” (동래부지) 등에 따르면,
山頂에는 높이 10자 정도의 돌이 있고 샘은 둘레가 10여자이고 깊이가 7치로서
늘 물이 차 있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났는데,
금색 물고기가 5가지 색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금정산 山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명칭의 유래로는 금정(金井)은 금빛의 샘 즉, 암상금정(巖上金井)에서 비롯되어
금정산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명峰이 고유어로 쇠울이 즉, 금정으로 해석되므로 금정산의 어원이 계명峰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하산 길은 고당봉을 넘어 내려가다 억새밭 철탑에서 우측 길로 접어 범어사로 갔다.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파로,
화엄종(華嚴宗) 10찰(刹)의 하나이며, 일제강점기에는 31교구 본산의 하나였다
최치원의 (당법장화성전)에 의하면,
신라시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돌아온 의상대사(625-702년)가 창건한 화엄종사찰로
신라 화엄 10대사찰 중의 하나로 (양주 금정산 범어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금정산은 신라시대부터 불렀던 것으로 확인된다.
원래는 양주(양산)에 속해 있다가 후대에 동래현에 속하게 되었다.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3層석탑(보물 250호), 당간지주(幢竿支柱),
일주문, 석등, 동, 서 3層석탑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옛날부터 많은 고승들이 이곳을 거쳤으며, 중요한 인물만도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고제,
표훈, 낙안, 영원스님 등이 있다.
산행버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하산酒는
자기를 파평 尹씨라 소개한 여성회원이 추어탕에 푸짐한 음식까지 준비를 해서 회원들의
산행피로와 시장기를 한꺼번에 해결해주었다.
금광의 여성파워는 어느 산악회도 따라올 수 없는 막강 파워였다.
갈 길이 멀어 서둘러 출발을 했지만 한 잔 술에 취하고 맛있는 추어탕기운을 그 무엇이
막을 수 있으랴.
그러나 사천휴게소에서 일본 지진소식을 들은 회원들은 모두가 숙연하게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규모 8.8 강진으로 10m의 쓰나미--- 해변에 시신300여구, 100명 탄 선박실종---
열차도 휩쓸려 사라져---
인류 역사상 5번째로 강력한 지진이 일본 동북부를 강타해 지진과 지진해일로 수 백 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산업시설과 통신, 교통, 전기가 끊기는 등 아비규한이 빚어졌다.
쓰나미가 덮쳐 수중도시로 변한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나토리市의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대재난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지 그저 망연자실 할 뿐이다.
사상최악의 대재앙 앞에 일본열도가 넋을 잃었다는 참혹하고 비참한 TV보도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