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불빛 아래에서 배움을 만나다
— 라스베이거스 학술대회와 후버댐, 그리고 그랜드캐니언에서
월요일 근무를 마치고 화요일 새벽 4시 30분, 나는 Lyft에 몸을 실은 채 JFK 공항으로 향했다.
뉴욕의 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도시의 심장은 이미 새벽부터 뛰고 있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 밖에는 출근길 사람들과 불 꺼지지 않은 건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말은 어쩌면 이른 새벽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되는 바로 이 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검색을 마치고 라운지에 앉아 간단히 아침 허기를 달랬다. 창밖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흐렸지만, 내가 길을 떠난다고 하니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빗방울을 거두어 주었다.
뉴욕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다섯 시간 반.
구름 위를 건너 사막의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붉은 대지 위에 세워진 인간의 욕망과 환상이 거대한 오아시스처럼 빛나고 있었다.
비행기가 사뿐히 착륙하자마자 공항 대합실에는 “Welcome to Las Vegas”라는 환영의 글자가 나를 맞이했고, 그 옆에서는 카지노 머신들이 쉴 새 없이 반짝이며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도시의 첫인사부터 이미 라스베이거스다웠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뒤 곧장 학술대회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가는 길목마다 형형색색의 슬롯머신들이 마치 춤을 추자고 손짓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 유혹을 애써 외면하며 등록 절차를 마쳤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행운을 좇는 일이 아니라, 배움을 좇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이어진 학술대회는 나에게 또 다른 학교였다.
미국 전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의료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있었다. 강의실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진료, 만성질환 관리, 정신건강, 심혈관 질환에 대한 최신 지견들이 쏟아졌다. 의료는 지금도 쉼 없이 진화하고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서 나 또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침 일곱 시에 시작된 강의는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제약회사들이 후원하는 식사 시간에도 새로운 약물과 치료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메모를 하고 질문을 던졌다. 먹는 일과 배우는 일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사람이었다.
명함만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고민을 품고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환자를 향한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배우는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손하게 배우는 법을 익혀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고.
“모든 것을 잘하려 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기조연설자의 그 한마디는 지친 의료인들에게 주는 위로였고, 나에게는 앞으로도 현장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저녁이 되면 나는 다시 학생이 아니라 여행자가 되었다.
호텔 문을 나서는 순간, 뜨거운 사막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시골집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를 때 얼굴을 스치던 열기와 닮아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견디며 살아갈까.”
그 질문과 함께, 이 뜨거운 땅 위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먼저 벨라지오 분수쇼 앞에 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 아래, 음악과 함께 물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물은 춤추고, 빛은 노래했다. 무료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한 순간이었다.
싱가포르의 분수쇼에 비하면 규모는 작을지 모르지만, 사막의 열기를 식혀 주는 힘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다.
분수 주변을 거닐다가 벨라지오 컨서버토리 & 보태니컬 가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마다 바뀌는 꽃과 장식들은 인간의 창의력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꽃 조형물과 정교한 전시물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카지노의 소음을 잊고 아름다움에 머물렀다.
그곳은 돈이 아닌 감탄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날 밤, 나는 늘 그렇듯 박물관을 찾았다.
이번에는 Museum of Illusions였다.
함께 간 사람이 갑자기 몸이 아파 입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환불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홀로 관람을 시작했다. 그러나 15분 만에 끝나 버린 전시와 46달러라는 입장료는 적잖은 허탈함을 남겼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관광객의 지갑을 향한 냉정한 계산도 숨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호텔의 음식값 또한 놀라울 만큼 비쌌다.
같은 체인점의 음식이 밖보다 몇 배는 비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붐볐다. 어쩌면 이곳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모아 둔 돈을 기꺼이 추억으로 바꾸어 놓는 거대한 무대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학회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피곤함보다 배움의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배움은 사람을 늙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학생으로 태어나게 한다.
학회를 마친 뒤, 나는 후버댐과 그랜드캐니언을 향했다.
후버댐은 책과 사진 속에서만 보던 존재였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인간의 의지와 기술이 만들어 낸 하나의 기념비 같았다. 발전소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장엄했고, 절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댐은 마치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낮아진 수위였다.
바위에 선명하게 남은 물의 흔적은 기후 변화와 인간의 미래를 조용히 경고하고 있었다.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 역시 이름 없이 일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 위에 세워졌음을 생각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랜드캐니언.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감동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스카이워크 위에 서자 거대한 협곡이 끝없는 시간의 흐름을 품은 채 내 앞에 펼쳐졌다. 사진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웅장함이었다.
후알라파이 부족의 공연에서는 오래된 영혼의 노래가 사막 바람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들의 음악 속에는 조상들의 숨결과 대지의 기억이 살아 있었다.
구아노 포인트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말없이 협곡을 바라보았다.
콜로라도 강은 푸른 리본처럼 깊은 계곡 아래를 흐르고 있었고, 헬리콥터는 작은 새처럼 그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점심을 들고 밖으로 나와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평생 해외여행 한 번 하지 못하셨던 부모님.
살아 계셨다면 이 장엄한 풍경을 함께 보여 드릴 수 있었을까.
그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저려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나는 눈으로만 그 풍경을 오래 담아 두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떠나가지만, 자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뉴욕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
카지노의 화려함도, 사막의 뜨거운 바람도, 학회장의 열정도, 후버댐의 장엄함도, 그랜드캐니언의 침묵도 모두 마음속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배움은 여행을 깊게 만들고, 여행은 삶을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막의 불빛 아래에서 얻은 새로운 지식과 사람들, 그리고 대자연 앞에서 느꼈던 경외심은 오래도록 내 삶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끝없이 배우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배움의 길 끝에는 언제나, 또 다른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