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은 8월 4일부터 6일까지 금강산에서 ‘고 정몽헌 회장 3주기 추모행사’를 열었다. 현 회장은 금강산에서 남편과 시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심경을 말과 글로 토해냈다. 그것은 경영 일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자 정통성 시비에 대한 외로운 투쟁이기도 하다. 2박3일간의 현 회장 동행 취재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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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과 두 딸, 그리고 현대 임직원들이 고 정몽헌 회장 추모제에서 묵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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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이를 물가에서 잃으면 물가 쪽은 쳐다보기도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현 회장의 표현대로라면) 남편 정몽헌 회장을 데려간 ‘물가’(현대그룹)에서 3년째 머물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있은 지 두 달 후 현 회장은 경영 일선에 나섰다. 이어 몽헌 회장 상중에 벌어진 숙부 정상영 KCC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현대그룹을 지켜냈다.
이달 말이면 또다시 시동생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승부를 펼쳐야 한다. 아직도 범현대가에서는 며느리 현정은 회장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정몽헌 회장이 떠난 지 3년째인 지금도 ‘망부가’를 부르고 있는, 부를 수밖에 없는 현 회장의 심정을 2박3일간의 동행 취재로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생각의 일단을 언뜻언뜻 내비쳤다.
가장 슬픈날 ‘잔치판’ 벌여
8월 4일은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지 꼭 3년째 되는 날이다. 그날 오후 4시쯤 현 회장은 금강산 몽헌 회장 추모비 앞에서 초청 인사들과 함께 추모 사진을 보고 있었다.
기자는 4시간 전 기자단의 일원으로 현대그룹 임직원들과 1차 추모행사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버스 안에 있었다. 금강산의 기온은 35도가 넘었고,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이었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릴 엄두를 못 냈다.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금강산이라도 감히 더위와 맞설 용기를 갖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때 기자는 문득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현 회장에게 꼭 물어볼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 회장에게 달려갔지만 저지하는 수행원들 때문에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다음날 오후 기자 간담회에서 물음표를 풀어낼 수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겪고서도 물가로 걸어 나온 이유가 뭔가? “그때는 잘 몰랐었다. 어떤 물가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사명감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못 다한 일을 내가 할 수밖에 없다는…. 남편이 아직도 항상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3년 전 KCC와 싸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분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고 계시는 것 같다. 난 종교가 없다. 대신 남편과 시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
아직도 남편이 지켜보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추모제 행사에서 현 회장은 내내 여유로웠다. 현 회장은 검은색 긴 팔 정장을 입고 땡볕 아래 서 있으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묵묵히 행사에 참가했다.(현 회장은 3년 전 몽헌 회장의 상가에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모습이었다.)
행사 첫날은 금강산 정몽헌 회장 추모비 일대에서 추모제 및 사진전 관람이, 오후엔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둘째 날은 금강산 구룡연 등반대회가 열렸다.
추모식은 현대그룹 신입사원 여름 수련회와 함께 진행됐다. 신입사원 321명, 170여 명의 현대그룹 임직원과 추모행사 인원 320여 명(기자단 45명 포함) 등 총 81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경비만 공식적으로 총 5억여원에 달했다.
현 회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장 슬픈 시기에 ‘잔치’ 를 벌이고 있었다.
‘…작은 바람이 홀로 남은 저를 흔들 때마다 당신 생각에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어 봅니다. 아내로서 남은 일보다는 현대그룹 회장으로서 남겨주신 일이 더 많은 걸 알기에 오늘의 이 자리가 더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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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와 함께 금강산에서 열렸던 ‘현대인의 밤’ 행사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현정은 회장. |
| 추모 사진전 옆에는 현 회장이 몽헌 회장을 그리며 쓴 편지가 같이 전시돼 있었다. 정몽헌 회장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부의 연애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 등의 모습을 담은 사진 옆에 걸린 이 편지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보여주고 있다. 정 회장의 죽음은 현 회장에게 충격과 분노, 슬픔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얼굴 보기도 힘들어”
KCC에 이어 이번엔 현대중공업과 경영권 싸움을 해야 한다. 심정이 어떤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M&A라는 건 당연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식구끼리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기업인이기 전에 인간이다. 인간관계에서는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본다.”
어머니 김문희 여사의 경영권 간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어머니는 경영을 잘 모르시는 분이다. 나도 바빠서 어머니를 자주 못 봐 어머니가 섭섭해 하신다.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데 뒤에서 경영한다는 소리는 말도 안 된다.”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현대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정통성 시비에 시달려 왔다. 3년 전 숙부인 KCC 정상영 회장으로부터 경영권 도전을 받았을 때도 그는 ‘친정어머니인 김문희 여사가 현대그룹을 장악하려 한다’ ‘현대그룹의 제3자 인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KCC 정상영 회장 측 주장에 맞섰다.(김문희 여사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대주주다.)
결국 경영권을 힘겹게 방어했지만 아직도 현 회장의 마음을 누르는 가장 큰 짐은 ‘현대가 사람이 아니다’는 정통성 시비다. 가문을 중시하는 현대가에서 숙부와, 그리고 시동생과 연이어 싸움을 벌여야 하는 현 회장 입장에선 경영 자체보다 집안 갈등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금강산에서 만난 현 회장의 모습은 이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추모제 내내 정몽헌 회장과 시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홀로 서기 힘든 현 회장에게 남편과 시아버지는 자신과 경영권을 지켜주는 수호신쯤 되는 듯했다. 비록 망자일지언정 남편과 시아버지는 정통성 논란을 잠재울 유력한 카드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98년 소를 끌고 38선을 넘었던 정주영 명예회장, 김정일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두 부자(정주영, 몽헌), 정몽헌 회장이 현대상선·현대전자(현 하이닉스)·현대건설 등 경영자로서 열정적으로 사업 현장을 누비던 모습 등이 사진전에 소개됐다.
특히 ‘눈물 흘리는 정몽헌’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금강산 개발 사업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2003년 2월 5일 금강산 육로 답사 출발 전 창우동 정주영 명예회장 선영을 찾은 몽헌 회장이 얼굴 가득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클로즈업된 이 사진은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하였다.
그는 아직도 시아버지와 남편의 그늘이 필요하다. 비록 어느 정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그는 어쨌든 정씨가 아닌 현씨인 것이다. 설사 그가 엄청난 경영 능력을 발휘한다 해도 현대가에서 쉽게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남편과 시아버지를 되뇌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런 바람은 신입사원 수련대회 격려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현대그룹 선대 회장님들의 아침 출근길 표정이 바로 여러분 같았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님은 평생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그날 할 일이 너무 즐거워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어서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했습니다. 명예회장님의 큰 발걸음을 뒤따라 나섰던 정몽헌 회장의 얼굴은 새로운 도전을 이뤄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가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400여 명의 현대그룹 임직원이 모여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진행된 신입사원 수련대회 격려사에서 현 회장은 역시 정주영 명예회장과 몽헌 회장을 언급했다.
현 회장은 이어 “정몽헌 회장이 유난히 오늘 가까이 와 있는 것 같다. 남편이 못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졌다. 현대건설에 관해서도, 남북경협 사업에 대해서도 현 회장은 남편을 언급했다. “여성 시대에 감성경영 하겠다”
현대건설 인수에 거는 기대는. “남편이 사재를 다 털어 공을 들인 기업이다. 포기할 수 없다. 올 하반기는 현대건설 인수에 올인하겠다.”
남북경협 사업이 북한의 미사일 문제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 최근 북측은 개성관광 사업을 롯데관광 측과 하자는 제의도 해왔다. 앞으로의 현대의 대북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건가. “롯데관광 측에 정식으로 통보 받은 것은 없다. 몽헌 회장 살아계실 때부터 그쪽(북한)과 합의를 본 사항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가 하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 추모제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남편과 시아버지를 앞에 내세우자 결국 기자간담회 때 현 회장은 뼈 있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너무 현 회장만의 색깔이 없는 것 아닌가? “아버님(정주영 회장) 세대가 불도저처럼 몰아붙였던 시대라면, 이제는 여성 시대가 온 것같다. 여성 경영자로서 특유의 감성 경영을 하겠다.”
나름대로 현 회장 본인의 색깔을 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지만 깔끔한 답변은 아니었다. 강인하고 똑똑하기로 소문나 있는 현 회장은 아직 말솜씨가 능숙하지는 않았다. 주부에서 경영자로 변신한 지 얼마 안 된 탓으로 해석된다.
현 회장 곁에는 참모진이 많다. 현대건설 인수 문제나 남북경협사업 질문을 받을 때 답변은 실무자들인 사장단에 넘어갔다. 이번 행사에도 참모진들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 회장은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인데 왜 부담스럽겠어요”라고 응대했다.
이번 행사엔 현대그룹 사장단 8명이 전원 참석했다. 이 중엔 현대엘리베이터의 최용묵 사장도 포함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에 대한 내부 감사 보고서가 유출돼 사회적 물의가 빚어진 데 책임을 지겠다”며 경영전략팀 사장직을 자진 사퇴, 현재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직만 수행하고 있다.
현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간의 경영권 다툼 때 “KCC가 현대그룹을 접수하면 그날로 사표를 내겠다”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특히 최 사장은 2000년 이후 현대 사태로 훼손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가신이라고 지목된 인물들의 교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둘째 날 금강산 구룡연 등반 때 최 사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임원진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최 사장에게 다가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약진(건설경기 둔화 속에서도 2004년 4409억원, 2005년 5280억 매출)은 최 사장의 공이 아니냐”고 운을 떼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아꼈다.
“현대그룹의 스타는 현정은 회장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현 회장은 회장 취임 두 달 후인 2003년 12월 18일 현대그룹 사장단 8명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았다. 이 중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 등 사장단 4명의 사표를 수리,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을 경영기획팀장으로 임명해 확고한 ‘현정은 체제’를 구축한 바 있다. 경황 없이 경영 일선으로 나선 ‘주부 현정은’이 ‘기업인 현정은’으로 나설 수 있는 데는 참모진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3년간 잃은 것과 얻은 것은. “얻은 건 모르겠고, 잃은 건 많다. 개인 생활이 없어진 것이 안타깝다.”
2001년 어느 날 아침. 현 회장이 그룹 경영을 하기 전의 일이다. 현 회장은 광화문에 있는 ‘사랑의 일기’ 진행본부를 찾았다. 당시 경복고를 다녔던 아들 영선을 대신해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서였다. e-메일로 받은 서류에 학부모 의견 내용이 부족해 더 보충을 원한다는 담당자의 말에 그 다음날 한걸음에 찾아 온 것이다. 현 회장이 내민 A4 용지엔 손수 펜으로 적은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집이 성북동이라 가까워 직접 들고 왔어요.”
행사 담당자가 글을 논리적으로 쓴 것을 보고 “글을 참 잘 쓰시네요”라고 칭찬하자 현 회장은 수줍은 듯 “원래 꿈이 기자였다”고 답변했다.
후진적 지배구조 개혁이 과제
그는 4년 전만 해도 아들 일을 위해 꼭두새벽부터 달려나오고, 자원봉사를 위해 찾아간 폐교에선 다른 주부들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고 함께 버스를 탔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몽헌 회장의 죽음이 없었다면 그는 현대호에 몸을 담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그예 건너시고 말았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할꼬
‘공무도하가’에서 백수광부의 처는 물을 건너간 남편을 그리워하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현정은 회장은 그 물을 저벅저벅 건너가고 있다.
“…앞으로 몇 해가, 아니 몇 십년이 더 지나가도 더 선명해지기만 할 당신의 발자취들입니다. 그 길을 가는 저는 걸음이 느린지 자꾸 넘어지기만 합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어서려고요.”
현 회장의 망부가는 슬픔보다는 비장감이 감돈다. 현 회장은 이달 말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또 한 번 물을 건너야 한다. 다시 한 번 현 회장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그의 바람대로 이번에도 하늘에 있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도와줄 수 있을까? 언제까지 그들의 그림자만 믿고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혼자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현대그룹은 계열사 자금으로 총수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후진적 순환출자구조(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구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비판 앞에서도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현 회장이 망부가만 부르고 있기엔 경영 일선은 무겁고도 거칠다.
현정은 회장 맏딸 정지이씨 “현대가 사촌들 가끔 보는 편”
금강산에서 열리는 아버지 추모제가 2년만인데 지금 심정은 어떻습니까?” “그런 말은 나중에 할게요. ”(웃음)
범현대가 사촌들끼리는 자주 만나나요? “자주는 못 만나도 한 달에 한 번은 봅니다. 사촌들끼리는 가끔 보는 편이에요. ”
일 하시는 건 적응이 됐나요?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죠. ”
이번 행사에서도 현 회장의 맏딸 정지이(29)씨는 현 회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신중하게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는 듯 했다. 몰려드는 기자들을 내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쉽게 마음을 열지도 않았다. 말을 아끼고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반면 추모음악제 사회자로 온 영화배우 정준호씨와 기념촬영을 할 때는 좋은 감정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고 앳된 20대 여성이었다.
가까이서 본 지이씨의 외모는 몽헌 회장을 꼭 빼닮았다. 이미지나 자태 분위기는 영락없는 현 회장이다. 지이씨는 젊은 시절 사진 속의 현 회장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머니를 닮아 침착하고, 아버지를 닮아 과묵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추모 사진전엔 아버지 몽헌 회장과 지이씨가 3~4살 적 놀고 있는 사진도 전시됐다. 현 회장의 지인 중 한 명이 지이씨를 그 사진 옆에 세웠다. <사진> 현 회장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해했다. 이번 기자 간담회 때도 현 회장은 지이씨를 언급했다.
“지이는 맏딸이라 남편이 특히 예뻐하셨어요. 지이 사진만 해도 집에 앨범이 몇 권이 됩니다.”
지이씨는 몽헌 회장 타계 이후 현 회장과 김문희 여사와 함께 현대그룹을 이끄는 최고 실세다. 현 회장은 경영권 분쟁 때 시댁 어른들과 만날 때면 늘 큰딸 지이씨와 동행했다. 현 회장은 지인들에게 “딸이 곁에 있으면 힘이 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원래 광고회사에 다니던 지이씨를 현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은 후 바로 옆으로 불러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지이씨는 2004년 1월 현대상선에 입사, 올해 초 현대그룹 정보통신 관련 계열사인 현대유엔아이 기획실장(임원급)으로 승진했다.
이날 행사엔 외국에서 공부하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와 있는 둘째 딸 영이(22) 씨도 함께 했다. 영이씨는 상명여고 1학년 때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나 보스턴 인근 사립고인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 경영학부에서 공부 중이다. 대학 휴학을 하고 유학 준비 중인 아들 영선(20)씨는 이날 금강산에 함께 오지 못했다.
범현대가에서는 정몽훈(47·고 정순영 명예회장의 3남) 성우전자 회장, 정유경(36·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둘째 딸) 씨만 참석했다.
이코노미스트 박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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