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조미료에 대한 불편한 진실
2023년 04월 06일(목) 00:15
나는 주로 전후 한국음식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강연한다. 주로 시민 강연을 많이 하게 되는데, 주요 테마 중의 하나가 ‘한국인의 입맛’이다. 감칠맛이 중심이 되는 맛의 추구는 전세계적으로 비슷한데, 한국도 오랜 세월동안 더 많은 감칠맛을 추구해왔다. 맛의 역사는 곧 감칠맛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감칠맛을 더 싸게 더 많이 효율적으로 얻기 위한 노정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래서 강연 초입에 이런 질문을 드리곤 한다.
“댁에서 속칭 미원 같은 하얀 가루, 즉 엠에스지(MSG)를 쓰고 있나요?”
열이면 한 명 정도도 안 된다. 나아가 “그럼 하얀 엠에스지는 쓰지 않지만 이른바 복합조미료라고 하는 다시다나 감치미 같은 것을 쓰는 분은요?”
역시 한두 명 정도 손을 든다. 다시 말해서 거의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민 강좌에 오시는 분들이 대체로 음식에 예민하고 민도가 높아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더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80, 90년대를 거치면서 이른바 하얀 가루, 즉 엠에스지를 화학조미료라고 해서 경원시하는 풍토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화학’이라는 말은 당시 부각되던 공해나 농약 등의 부정적 의미와 결합되어 마치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물질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와서 좀 달라졌지만 크게 인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앞의 사례가 어느 정도 그런 정서를 반영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시민들이 엠에스지 같은 인공 조미료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최근 몇 해의 통계를 보면 한국의 1인당 인공조미료 사용량은 오히려 증가 추세가 있었다. 다시 말해 다들 ‘안 먹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먹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국내 생산량이 줄었다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 생산회사들이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했거나 외국 제품(주로 동남아와 중국)을 수입하고 있어서다. 이른바 착시 현상인 것이다. 너도나도 문제가 있다고 안 먹으려 하고, 먹더라도 아주 소량을 쓴다고 하는데 소비량은 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이는 우선 외식과 간편가공식, 배달의 증가 때문이다. 외식은 사실상 90퍼센트 이상의 식당에서 위의 조미료를 한 종 이상 사용한다. 고급호텔도 예외는 아니다. 쓰지 않는다는 식당도 실제 조사하면 ‘이미 함유되어 출시된 기타 조미료’에 엠에스지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킨스톡, 굴소스, 요즘 많이 쓰기 시작하는 조림 간장, 양념장 등에는 상당수가 조미료 포함이다. 라면은 어떤가. 라면은 아이들이 많이 먹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주 예민하다. 라면 생산회사들이 너도나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여 엠에스지를 거의 퇴출하였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꼼수다. 국미이 잘 알고 있으며 바로 그 인공조미료의 대명사격인 엘글루탐산나트륨은 넣지 않는 대신 이노신산나트륨, 구아닐산나트륨 등의 여타 조미료를 넣는 경우가 많다. 보통, 조미료는 이 세 가지 조미료를 배합하여 쓰고 있는데, 엘글루탐산나트륨만 시민들이 알고 있어서 생기는 해프닝이다. 고가의 자연 조미료들, 예를 들어 새우가루, 표고, 채소, 고기 등에서 추출한 조미료만 넣는다면 라면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다. 또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오랫동안 길들여진 라면 맛과 달라 판매에 애를 먹을 게 분명하다.
라면만 봐도 이런 속사정이 있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나트륨’은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대부분의 가공식품에는 거의 들어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심지어 음료나 소주 등에도 쓰인다. 맛을 좋게 하고, 불편한 맛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인공조미료라는 말도 사실 애매하다. 인공이란 사람이 일부러 만들었다는 뜻인데, 자연조미료도 사람이 일부러, 어떤 경우에는 공업적 설비를 가지고 가공하므로 적확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이런 이름을 붙인 과정은 분명하다. 1930년대 일본에서 개발되어 한국(조선)에도 판매되기 시작한 ‘아지노모토’와 그 유사물질에 대해서 기존의 자연적인 조미료와의 차이를 가르는 이름인 까닭이다.
한 가지 제언을 하자면, 이렇게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혼란할 바에는 가공식품에 표기하듯 식당과 배달음식에도 인공조미료 사용 여부를 표기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물론 혼란이 생기겠지만, 과학적으로 조미료 문제를 이해시키고 공부한다는 전제를 깔고나면 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상당수 식당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아직도 우리가 이 ‘조미료’ 사태에 미몽을 헤매고 있어서야 옳은 것 같지 않다.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