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 박인수(朴仁樹)
신중현 작사,작곡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마음을 달래도
마음을 달래며...
비, 봄비, 봄비, 봄비, 봄비
봄비가 내리네
봄비가 내리네
....봄비가 내리네....
노래: 봄비 아티스트: 박인수(朴仁樹) 작사,작곡: 신중현 {원곡: 이정화 - 봄비 (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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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봄비
아티스트: 박인수(朴仁樹)
작사,작곡: 신중현
{원곡: 이정화 - 봄비 (1967)}
'봄비'는 신중현 작사,작곡의 노래로 신중현이 결성한 밴드 덩키스의
리드 보컬 이정화가 처음 불러서 1967년 발표한 앨범 [꽃잎 봄비 마음]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정화의 앨범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노래 '봄비'도 당시 대중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1970년, 신중현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그의 작,편곡집 [퀘션스 | 여보세요/
그대는 바보] 앨범에, 흑인들의 소울(Soul) 음악들보다 그 감성을 더욱 잘
표현한다는 소울 가수 박인수가 불러 삽입한 노래 '봄비'가 수록되었다.
강한 소울 풍의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이 노래 '봄비'는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박인수 (본명: 백병종, 1947~ )
한국동란(6·25사변)때 전쟁고아로 12세때 미국 어느 가정에 입양됐으나
향수병에 걸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뉴욕 할렘에서 '소울(Soul)음악'을 처음 접해본 그는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여
연명하면서 타고난 음악성과 소울 감성을 살려 노래를 불렀고, 일반 무대에도 진출했다.
1967년 독특한 창법을 인정받아 신중현 사단에 합류했다.
70년대 신중현 사단의 대표적인 소울아티스트 박인수는 신중현이 이끄는 사이키델릭 밴드
퀘션스(밴드 반주 + 객원 가수의 노래를 모태로 하는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의 앨범
"여보세요/그대는 바보(신중현 작편곡집)"에서 공식 데뷔를 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여보세요","기다리겠오","봄비" 세 곡을 불렀는데, 특히 "봄비"에서의 그의
목소리는 파워 넘치는 거칠고 투박한 질감의 맛깔스러운 보이스를 보여주면서 한국에서
'소울 가수'라 불릴 여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이 시기가 가수 박인수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사랑도 받은 시기였다 한다.
그러나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금지가 되었고, 그의 독집 음반들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발매금지가 된다.
'72년 결혼과 그후 이혼, 그리고 '82년도의 재혼으로 1남 1녀를 두었지만, 방랑벽이 심해
가족들로 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두 번째 부인과도 이혼을 하게 되다.
또 너무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주위의 누구와도 화합하지 못했다.
1980년 해금이 되었지만..이후에도 그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고.. 90년대 초 무대에서
쓰러지거나 가사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연발하기도 했고.. 결국 가요계를 떠났다.
2002년 췌장에 생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저혈당 쇼크로 '단기기억 상실증'에 걸렸고,
때문에 기억의 장애가 생겨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없는 상태였다.
지인들과도 연락이 끊어진 상황에서 그는 11년 동안 요양원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냈다. (발췌..)
가수 박인수의 달라진 삶.. KBS1 '인간극장'
<인간극장>(KBS1 2012년 6월 25일 오전 7시50분)
'인간극장'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린 박인수는 당시 방송에서 30여 년만에 아내와 아들과 재회했다.
이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고, 박인수는 그렇게 새 삶을 시작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박인수는 소식이 끊긴 동생들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동생들은 어머니의 부고(訃告)를 전했다.
박인수는 '봄비'로 일약 스타가 된 뒤, 6·25전쟁 중 헤어진 어머니를 찾으려는 노력 끝에 1983년
어머니와 재회한 바 있다. 하지만 90년대에 박인수가 잠적하면서 모자는 서로 연락이 끊겼었다.
1990년대 초 가요계에서 사라진 그가 2001년 이 요양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그의 몸에
병마가 찾아와 있었다. 췌장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 수술을 받고 췌장의 종양은 제거했지만
잦은 저혈당 쇼크로 인한 뇌손상은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가수로서의 삶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었다.
뇌손상 후유증으로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그에겐 '하루에 약을 몇 번 먹었는지' 기억해내는 것..
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만에 그를 찾아온 아내 복화 씨의
이름과 아들 진서 씨의 이름만큼은 또렷이 기억했다고 한다.
첫댓글 봄비가 내릴때면 생각나는 노래
저는 개인적으로 이정화의 원곡을 좋아하는데
박인수의 봄비가 워낙 알려져 그늘에 가려져 있죠.
지금은 기초수급자에 암 투병중이라니 안타깝네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
그 당시 이 노래는 대단한 인기를 얻었지요.
그 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원인으로
나락의 길을...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답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