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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2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Church With Acts’ - 6. 이 교회의 주인입니까? 손님입니까?
본문 : 사도행전 20장 9절(7~12절)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바울의 말이 오랫동안 계속되므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몹시 졸다가 삼 층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이 일으켜 보니, 죽어 있었다. <새번역>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일 오늘 함께 읽은 본문 같은 일이 우리 교회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만큼 누가도 이 사도행전 20장의 기록을 써 내려가면서 망설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유두고가 다시 살아났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만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정말 그대로 유두고가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에 이런 교회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선교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을까요?
하지만 사실상 교회에는 이런 크고 심각한 문제들은 그리 많지 않고, 여러 가지 자잘하지만 골치 아픈 문제가 더 많이 있습니다. 수도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갈등이 생겨나고, 해결되기도, 해결되지 못한 채 유지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별반 사회와 다르지 않다.’ 라던가, ‘세상보다 더 한 곳이 교회다.’ 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네. 맞습니다. 교회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각종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안타까운 결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미 알려주신 말씀대로 해결해 나가지 못하기에, 마치 그 힘조차도 없는 곳이라 결론을 내렸던 우리의 생각의 변화가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이 갈등의 해결은 예수님께서 너무도 많은 방법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태복음 5장 23~24절, 새번역>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3장 11절, 새번역>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누가복음 6장 31절, 새번역>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빌립보서 2장 3절, 새번역>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새번역>
그런데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서, 교회 안에서 운행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유두고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도, 드로아 교회 속에서도,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두 가지 분명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 이 상황을 보며 소란을 피우는 이들입니다.
함께 바울의 강론을 듣고 있었지만, 함께 예배드리고 있었지만,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걱정 근심에 빠지고, 소란을 피우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은 ‘떠들다’, 새번역은 ‘소란을 피우다’, 공동번역은 ‘걱정하다’라는 글로 이런 모습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상황을 함께 수습한 이들입니다.
상황이 벌어지자 바로 말씀을 멈추고 달려 내려간 바울은 유두고에게 엎드려 유두고를 부둥켜안았습니다. 당연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함께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숨죽여 침묵하면서 기다렸던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살아난 유두고를 통하여 적지 않게 위로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는 순간이며, 기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함께 기도했던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만약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는 무리일까요? 여러분들은 이 두 그룹 사이 어디에 서 있으실까요?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실망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지금 우리 교회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힘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우리 공동체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기록되었던 말씀, ‘한 마음과 한 뜻’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로마서 12장 5~6절, 새번역>
교회 공동체는 한 몸입니다. 각 자 너무도 다르지만 다른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교회로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 안에서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면에서 성장하길 원하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물론 하나가 되어, 한 몸이 되었지만 아직은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말씀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더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27절, 새번역>
이 긴 구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구절이 있다면 저는 26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두고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수많은 문제들이 교회에서 생겨날 때, 우리는 함께 아파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손가락질하며 떠들며 소란을 피우며 잘잘못을 따질 것인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순간에 와 있습니다. 함께 고통을 받고 함께 영광을 누리며 함께 기뻐하는 한 공동체로서의 ‘함께’의 길을 갈 것인지, 여전히 공동체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길을 갈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저는 진심으로 교회라면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그런 교회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모습이 아닌, 모든 일을 함께 겪어야 하고, 함께 슬퍼해야 할, 함께 이겨 나가야 할 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길 소망합니다. 다행히 성경을 통하여 볼 수 있듯이 열두 제자들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대교회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많은 역사 속의 교회들도 모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인내로서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들을 함께 맞이하며 함께 느끼며 함께 소통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모두가 위로를 받았다는 유두고 사건의 결말처럼, 그 위로 역시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래서 그들은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 <사도행전 20장 12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이 교회의 손님이 아닙니다. 이 교회의 주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교회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권한을 허락하셨습니다. 목사에게, 특정 직분의 누군가에게만 그 권한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에,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길 원하는 누구에게든 이 권한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권한은 ‘함께’ 라는 의무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연합하셔서 하나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하나가 되어 연합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만 공동체고, 말만 가족이고, 말만 하나인 교회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한 가정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어야 합니다.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손잡고 웃어 주셔야 합니다. 함께 눈물 흘리며 울어 주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그우먼 중에서 이영자씨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 계기는 바로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이영자씨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일반인 사연자들이 출연해서 자신의 고민 등이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털어 놓고 함께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포맷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영자씨는 눈물을 쏟아내는 고민주인공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힘든 마음을 다 받아줄 듯한 속정 깊은 눈빛으로 말없이 위로와 위안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까? 다툼이 있었던 고민당사자들간의 화해 현장에서는 마치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고, 흐뭇함에 눈시울까지 붉히는 감정이입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출연자를 외부에서 관망하는 존재로 직접적인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그냥 살아온 방식대로 냉정하게 조언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그 조언에 앞서, “마음이 너무 외로웠겠다”, “울었겠어요” 라며 마치 고민주인공의 친정엄가가 된 듯한 따뜻한 위로를 전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가 하면 “저는 웃기시네 합니다”, “내가 성질나서 그래” 등 사이다 멘트로 고민 주인공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자신의 치부도 드러내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사연자의 고민을 마치 자신의 고민인 것처럼 함께 아파해 주고, 공감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일을 마치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고 공감해 주는 이영자씨를 보면서 닮고 싶었기에 가장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예배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이 교회의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이 공동체에 함께 하고 계십니까?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공동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조언도 좋고, 지적도 좋지만, 먼저 함께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디 고민을 끝내고 이제는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공동체와 함께 하시는 동역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서툴기에, 어색하기에 자꾸만 어긋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부족한 제 손을 붙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함께 이 모든 문제에 머리 맞대어 해결해 나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저 역시 어리석었던 비난은 멈추고 교회를 향한 모든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없어도 될 소란은 멈추고, 반드시 필요한 소통을 시작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위한 손이 아니라 함께 잡고 걸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문제가 오히려 교회가 하나가 되어 든든히 서가는 위로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만들어가고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토록 찾으시던 그 사랑 가득한 교회, 하나된 교회, 함께 하는 교회로 우리 교회가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4년 5월 두 번째 주간(12~18일) 하나님이 그토록 찾으시던 그 사랑 가득한 교회, 하나된 교회, 함께 하는 교회로 성장해 나가기 위한 합심 기도 제목입니다. 이 시간은 말씀의 삶 속 임재를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삶의 기도를 다함께 선포하겠습니다. 한 주간 동안 이 선포와 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이 주신 방법으로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2.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3. 모든 구성원 각자가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와 관계된 일이라 여기고 사랑과 관심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4. 관망하며 지켜만 보는 외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함께 겪고, 함께 이겨나가는 공동체의 주인된 마음을 가진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5.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됨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져 가는 교회가 되어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고백 찬양 - 함께 지어져 가네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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