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심지인 종로에 강원도급 계곡을 거닐고 고지대에 올라서야 볼수있는 서울시내 청와대 경복궁 남산등 풍경을 한눈에 조망하고 동남이시아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처럼 이색적인 여행코스를 다녀왔다..
이번 트래킹코스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에서 하차하여 3번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서촌마을 쪽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마을버스 9번을 타고 수성동계곡 입구까지 갈수있지만 굳이 걸어가는 이유는 우리나라 1세대 화가인 박노수 저택과 저항시인 윤동주가 지냈던 하숙집을 보기위함이다..
♡박노수화가 저택..
박노수미술관 건축물은 주로 한식으로 지어졌으며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이고, 3개의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고 현관은 벽돌 포치로 아늑한 느낌을 주며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어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1973년 박노수 화백이 소유한 후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서울시 문화유산자료로 등록되었다..
우리나라 1세대 화가..
1937년경 절충식 기법으로 지어진 가옥으로 내년이면 90년이된 가옥으로 한식으로 지어졌으며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이고, 3개의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현관은 벽돌 포치로 아늑한 느낌을 주며,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어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윤동주시인 하숙집..
비운의 천재 시인 윤동주가 머물렀던 하숙집 터이다.. 실제 윤동주 시인이 머물던 당시에는 기와로 된 한옥이었으나 지금은 옛 모습은 사라지고 다세대주택 담벼락에 ‘윤동주 하숙집’이라는 안내판만 붙어 있다. 하숙집에서 약200미터 정도 들어가면 인왕산 입구인 수성동 계곡이 나온다.
시인은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기숙사, 북아현동, 서소문 일대에서 하숙을 했는데 1941년 5월부터 9월까지 현재 위치인(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평소 시인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으로 불과 다섯 달 정도의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이 하숙집에서 “별 헤는 밤”과 “자화상”을 포함해 주옥같은 열 편의 시를 써냈기에 오늘날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되새겨지며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수성동계곡..
수성동계곡은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계곡으로, 계곡의 물소리가 크고 맑아 동네 이름이 조선 시대에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다고 하며 겸재 정선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승 8경을 그려 담은 ‘장동팔경첩’에 속할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안평대군과 겸재 정선이 자주 찾아와 아름다운 수성동계곡을 바라보며 한문과 예술을 즐겼다고 한다.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수려한 경관을 잃어버렸으나 그로부터 40년 후, 아파트를 철거하고 문화재보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
협곡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고 물이 맑아 수성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부모님 이전 세대는 이 돌다리를 이용해야만 계곡을 건너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강원도 깊은 산중에 와있는 느낌이..
대나무 소나무의 울창한 숲길이 이이진다..
♡무무대(야경명소)..
무무대 전망대는 인왕산 자락길 중간 지점에 자리한 서울시 공식 야경 명소로 서촌의 고즈넉한 지붕 너머로 펼쳐지는 도심 파노라마를, 해 질 무렵 매직아워에는 붉게 물드는 하늘과 도심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밤에는 반짝이는 서울 야경을 서로 다른 세 가지 표정으로 즐길 수 있다..
청화대, 걍복궁, 종로일대, 남산등 서울시내 조망이 환상적이다..
앞쪽에 보이는 주택이 서촌이고 청부종합청사 남산동 한눈애..
무무대에서 바라본 북악산과 청와대..
♡초소책방..
초소 책방은 인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50년 넘게 청와대 방호를 위해 경찰 초소로 사용됐던 곳으로 인왕산 자락길이 일반인에게 2020년 개방되면서 초소를 책방으로 만들고 자연속에서 독서를 하고 서울시내와 남산을 바라보면서 차한잔 즐길수 있는 전망명소로 재탄생되었다..
여기 전망대 조망도 무무대 못지않다.. 테라스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차 한잔..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고 70~80년도 타향살이 설움이 주마등처럼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언덕..
인왕산 성곽길 끝자락에 위치한 언덕은 저항 시인 윤동주 시인을 기리곳으로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1941년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후배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었는데 그는 이때 청운동과 누상동 일대를 산책하며 시상을 가다듬으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같은 주옥같은 대표작을 썼다고 한다..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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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를 읽으며 남산을 바라보노라면 애듯한 감성에 잦어든다..
인왕산 성곽길 끝자락에서 바라본 부암동 링대와 북한산..
창의문을 지나 무계원, 목석원을 향해 부암동 쪽으로..
♡무계원(몽유도원도)..
무계원은 안평대군이 꿈을 꾼 도원과 흡사해 화가 안견에게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고 정자를 지어 시를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는 유서깊은 장소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이 그린 산수화로 안견의 독실한 후원자였던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도원을 방문하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한 작품이다. 북송의 화원화가 곽희 화풍의 영향이 엿보이나 여러 가지 양식적 특색은 안견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안견의 그림뿐만이 아니라 안평대군이 쓴 발문과 시, 당대의 문사 20여 명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 등 23편의 찬문이 곁들여져 있어 서예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조선 초기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 작품으로 현재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목석원(목인발물관)..
목인박물관(목석원)은 2019년 인사동에서 부암동으로 이전하여 목인박물관 목석원으로 재개관했으며 목인이란, 전통 인물 및 각종 동물의 모습을 조각한 목 조각상을 말한으로 목석원에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상여장식용 조각 및 신당, 사찰을 포함한 각종 민속 목조각상들이 약 12,000여 점이 있으며 인왕산 성곽길 외곽과 맏닿아 있다..
장독대너머 북한산 능선길이 병품처럼 펼쳐저 있다..
인왕산 기차바위도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굽기에 시패한 장독도 이곳에 터를 잡으니 예술작품이로다..
창문으로 보는 북한산 노적봉과 북악산 풍경이 환상적이다..
살아서 돌아다니는 느낑이다..
소나무아래 남근석도 우스꽝스럽개 자리하고 있다..
규화목이라는 인도네시아 나무인데 흙에 파묻힌채 오래되어 화석이된 나무라고 한다..
목석원 언덕배기서 바라본 평창동 일대와 북한산..
받까쪽에서 걸어볼수 있는 인왕산 성곽길이다..
화전민 쉼터..
부암동, 푱창동 북한산이 환폭의 그림으로..
동남아시아에 온 기분이다..
목석원은 광곽길에서 바라본 북한산, 북악산 풍경뿐만 아니라 여러나라의 목석형상으로 동남아시아를 한바퀴 돌고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