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
高竿垂綠(고간수록) - 높은 대나무의 줄기 푸르름을 드리우고 있다.
交幹拂雲(교간불운) - 대나무가 엇갈리어 구름을 쓸고 있다.
綠竹靑靑(녹죽청청) - 푸른 대나무가 푸르고 푸르구나.
濃葉垂煙(농엽수연) - 대나무의 짙은 잎이 안개 속에 드리워 있다.
拂雲帶雨(불운대우) - 구름을 쓸고 비를 머금은 대나무.
淡然幽趣(담연유취) - 담담하고 그윽한 정취를 지닌 대나무.
水竹山居(수죽산거) - 맑은 냇물이 흐르고 대숲이 우거진 산속의 생활
修筠抱節(수균포절) - 겉을 닦고 절개를 지닌 대나무.
瀟 臨風(소쇄임풍) - 맑고 깨끗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水竹淸閒(수죽청한) -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대숲이 우거진 한가한 생활.
煙枝雨葉(연지우엽) - 안개 속에 드리운 가지와 비에 젖은 잎.
雲根玉立(운근옥립) - 구름까지 닿은 옥과 같이 서있는 대나무.
有君子風(유군자풍) - 군자의 풍도를 지닌 대나무.
月影風聲(월영풍성) - 대나무의 달그림자와 맑은 바람소리.
一窓風竹(일창풍죽) - 창문에 비치는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柔枝帶雨(유지대우) - 어린 가지에 비를 머금었다.
竹裏淸風(죽리청풍) - 대숲에 부는 맑은 바람.
竹林高士(죽림고사) - 속세를 떠나 대숲에서 한가히 지내는 선비.
秋聲滿耳(추성만이) - 바람이 대숲에 부니 가을소리 귀에 가득하다.
淸風高節(청풍고절) - 맑은 바람과 높은 절개.
淸風不盡(청풍부진) - 맑은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온다.
淸節凌秋(청절릉추) - 대나무의 맑은 절개가 가을서리를 이겨낸다.
虛心友石(허심우석) - 욕심없는 마음으로 바위를 벗삼은 대나무.
虛心直節(허심직절) - 속이 비고 마디가 곧은 대나무.
廻風帶雨(회풍대우) -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머금은 대나무.
<5∼6자>
萬竹引淸風(만죽인청풍) - 많은 대나무에 맑은 바람이 인다.
竹靑風自薰(죽청풍자훈) - 대나무가 푸르니 바람이 절로 향기롭다.
無竹使人俗(무죽사인속) -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이 속된다.
歲寒誰似此君(세한수사차군) - 추운 겨울에 누가 대나무처럼 절개를 지키랴.
確守堅貞之節(확수견정지절) - 굳은 절개를 지키는 대나무.
<7자>
江南煙雨竹枝低(강남연우죽지저) - 강남의 안개와 비에 가지가 늘어진 대나무.
綠竹高松無俗塵(녹죽고송무속진) - 푸른 대나무와 늙은 소나무는 속세의 티끌을 묻지 않았구나.
修竹無心亦有情(수죽무심역유정) - 대나무는 속이 비었지만 청을 가지고 있다.
山間古竹引人淸(산간고죽인인청) - 산속의 늙은 대나무 사람의 맑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寒梅修竹共風流(한매수죽공풍류) - 추위 속에 핀 매화와 대나무는 함께 풍류를 지니고 있다.
<8자 이상>
明月直入淸風徐來(명월직입청풍서래) - 밝은 달빛은 곧게 들어오고,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온다.
風淸雲靜山高水長(풍청운정산고수장) - 바람음 맑고 고요한데,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흐른다.
貞而不剛柔而不屈(정이불강유이불굴) - 곧되 강하지 않고 부드럽되 비굴하지 않은 대나무.
四壁淸風一輪明月(사벽청풍일륜명월) - 사방에서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엔 둥근 달이 밝게 비춘다.
高節人相重貞心世所知(고절인상중정심세소지) - 대나무의 높은 절개는 사람마다 중히 여기고, 그 마음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
雨洗娟娟淨風吹細細香(우세연연정풍취세세향) - 비에 씻기니 대나무 깨끗하고, 바람이 부니 가지마다 향기롭다.
林深禽鳥樂塵遠竹松淸(임심금조락진원죽송청) - 숲이 깊으니 새들이 즐거워하고, 속세가 머니 대나무와 소나무가 더욱 맑다.
庭前有月松無影欄外無風竹有聲(정전유월송무영란외무풍죽유성) - 뜰 앞에 달이 밝되 소나무엔 그림자 없고, 난간 밖에 바람이 없으되 대나무에 바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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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竹)■
대나무는 옛부터 문인사대부들의 가장 많은 애호를 받으면서 사군자의 으뜸으로 꼽혀 온 것이다. 그것은 대나무의 변함없는 청절한 자태와 그 정취를 지조있는 선비의 묵객들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늘 푸르고 곧고 강인한 줄기를 가진 이러한 대나무는 그래서 충신열사와 열녀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대나무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수묵화의 기법과 밀착되어 문인사대부들의 화목으로 발달시킨 사람은 북송의 蘇東波와 文同이었다. 소동파는 특히 그리고자 하는 대나무의 본성을 작가의 직관력으로 체득하여 나타낼 것을 주장한 '中成竹論' 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동은 '湖州竹派'를 형성하여 묵죽화의 성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南宋 때에 이르러 묵죽은 더욱 유행하였고 元代에는 문인사대부들의 저항과 실의의 표현방편으로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 때 벌써 李에 의해 [竹譜] 7권이 만들어져 화법이 체계적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죽의 생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묵죽화가로서 유명하였다.
元代에는 이 밖에도 조맹부, 吳鎭, 瓚 등의 명가들이 나와 가늘면서 굳센 묵죽화풍을 형성했으며, 이러한 전통이 明代의 夏 (1388∼1470)등을 통해 자연미와 이념미가 융합되면서 청대로 계승되었다.
죽을 그리는 데 묵죽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묵죽 이전에 寫竹과 채색죽의 방법이 이미 있었음을 기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사죽은 사생에 의한 대나무의 묘사방법이고 채색죽은 윤곽을 선묘로 두르고 안에 칠을 하는, 이른바 彩의 방법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수묵법과 결부됨으로써 비로소 동양회화의 중심적 창작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氣韻과 정신의 주관적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墨이란 선으로서 작용할 뿐 아니라 색채를 대신한 면으로서도 작용한다. 文同이나 蘇東波에 의해 처음 시도된 묵죽은 바로 대상물의 외형적 사생을 떠난 傳神의 실천적 방법으로 죽을 그린 것이 되며, 이 때의 묵은 현상세계 너머의 조화력을 암시하는 것으로 묵선이나 목면 모두 그 기운을 담는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묵죽과 동양회화가 지니고 있는 사의정신은 이러한 창작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묵죽도 묵란과 마찬가지로 서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찬은 서법 없는 묵죽은 병든 대나무를 보는 것 같다고 했으며, 明代의 王 은 서법과 죽법은 동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묵란이 짧고 긴 곡선의 반전 등을 통해 풍부한 변화를 보이는 데 비해 묵죽은 직선이 위주이며 그 구도에서도 보다 다양한 것이 특색이다.
묵죽을 그리는 데도 절차와 방법이 있는데, 줄기(幹)와 마디(節), 가지(枝)와 잎(葉)마다 그리는 순서가 있다. 먼저 죽간을 그리고 다음에 가지를, 이어서 방향과 필법을 변화시켜 잎을, 마지막으로 마디를 그리는 것이 청대 이후 확립된 죽화법이다.
이 순서는 시에서의 起承轉結과 같다. 이러한 붓질의 흐름은 사군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중에서도 죽의 경우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묵죽을 그리는 것이 다른 사군자에 비해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대나무의 형태 자체는 단순하지만 일기와 계절적 정취에 따른 변화가 다양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이러한 기후와 자연적 정경에 따라 晴竹, 仰竹, 露竹, 雨竹, 風竹, 雪竹, 月竹 등의 화제로 다루어졌는데 대가들조차 50년을 그린 후에야 비로소 그 경지가 터득되고 마음에 드는 죽화를 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묵죽의 높은 경지와 깊은 맛을 시사하면서 이러한 사군자그림들이 결코 본격적인 회화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기초 내지는 예비단계의 차원이 아니라 동양 회화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의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