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12. 3. 28 - 4. 4까지 카타르 항공을 타고 터키를 관광하였다.
우리의 관광 여정은 인천공항에서3.28(수) 00:40에 출발하여 05:05에 카타르 도하공항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한 뒤 08:40 도하 공항을 출발 하여 11:40에 터키의 수도 앙카라 공항에 도착 했다.
이어 앙카라에서 한국공원과 아타튀르크 영묘를 본후 카파토키아로 향하였다.
그리고 콘야를 거쳐 안탈랴-파묵칼레-에페소-아이발릭-트로이를 거쳐 이스탄불로 향하였다
앙카라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 식사 후 한국공원을 참배하고 관광 하려 했으나 학생들의 데모 시위로
버스에서 만 한국공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 해야만 했다.
또한 아타튀르크 기념공원도 버스로 외관만을 둘러 본후 카파토키아로 향하였다.
이렇게 겉모습만 보고 가도 카파토키아에 도착 하니 벌써 저녁 8시 경이 다 되었다.
터 키
터키 공화국(터키어: Türkiye Cumhuriyeti 튀르키예 줌후리예티[*]), 줄여서 터키(터키어:
Türkiye 튀르키예[*], 문화어: 뛰르끼예)는 서남아시아의 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동부 트라크야에 걸친 나라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다. 터키는 여덟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불가리아, 서쪽으로는 그리스, 북동쪽으로는 조지아(그루지야),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월경지인 나히체반), 이란, 남동쪽으로는 이라크와 시리아가 있으며, 북쪽에는 흑해가 있다
터키의 역사
기원전 12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해안에는 아이올리스와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기원전 6~5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지배를 받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에 아나톨리아는 비튀니아, 카파도키아, 페르가몬, 폰토스 등 여러 헬레니즘계 소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기원전 1세기 중엽에 모두 로마에 복속된다 기원전 324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뷔잔티온을 로마 제국의 새 수도로 삼아 노바 로마('새로운 로마', 나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이스탄불이 된다.)라고 개명하였다.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자, 이 도시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243년에 셀주크 군대는 몽골인들에게 패배하고, 제국의 패권은 점차 무너지게 된다. 이후 오스만 1세가 지배하던 일개 튀르크 공국이 200년이 넘는 세월간 발전하여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 레반트를 아우르는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메흐메트 2세의 오스만 군대에 함락되어,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였다.
16~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으며, 발칸 반도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남부를 통해 중부 유럽으로 점차 진출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과 종종 충돌하였다. 이에 맞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지키고자 합스부르크 에스파냐, 베네치아 공화국, 성 요한 기사단이 신성 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런 가운데 동아시아와 서유럽 사이의 고대 해상로를 독점한 오스만 제국은 인도양에서 포르투갈과 자주 대립하였으며, 1488년 희망봉의 발견 이래 점차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후 쇠퇴기에 접어든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1914년~1918년)에서 동맹국편으로 참전하여 결국 패배하였다. 세계 대전 당시 막대한 인명 희생을 부른 아르메니아 학살도 이때 일어났다. 1918년 10월 30일 무드로스 정전 협정으로 승전국인 연합국은 1920년 세브르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을 분리시키려 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이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터키의 민족 운동이 촉발되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의 주도로 세브르조약 규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터키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1922년 9월 18일, 점령군은 퇴각하였으며, 새로운 터키의 나라가 건국되었다. 11월 1일에 새로이 열린 의회는 공식적으로 술탄국의 폐지하여, 623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에서 신생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23년 10월 29일에 새 수도 앙카라에서 터키 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옛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속 공화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가족명에 관한 법'에 따라, 1934년에 터키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아버지 터키인, 즉 '국부')라는 명예 성명을 부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대부분 터키는 중립을 취하였으나, 1945년 2월 23일에 의례적인 의미로 연합군측에 참전하였으며, 1945년 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터키 해협에 군사 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옆 나라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내전을 벌이면서 위기 상황이 조성되자, 1947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게 된다. 이 독트린에서 미국은 터키와 그리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음을 밝혔으며, 그 결과 미국이 대규모로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되었다
터키는 한국 전쟁에서 국제 연합군으로 참전하였으며,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십여 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974년 7월에 그리스인들의 군사 정변으로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실각하고 니코스 삼프손이 독재 정권을 세우자, 터키는 1974년에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9년 뒤에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나라는 오직 터키의 승인만 받은 나라이다
1945년에 일당제 시대가 종식된 이후, 다당제 시대에는 수십여 년간 긴장을 초래하였으며, 1960년대에 1980년대 사이에 정치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1960년, 1971년, 1980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며, 1997년에는 1997년 터키 군부 협정시키기도 하였다
한편 1980년대부터 터키 경제가 자유화되어 이 나라의 경관이 바뀌게 되며, 이후 수십 년 동안 높은 성장과 위기가 잇따랐다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 잠시 휴식을... 10시간의 항공 이동이 만만치 않네요
인천공항 아시아나항공 라운지에서 가져간 쥬스로 목을 축이며 정신 치리고 있습니다
이젠 다시 비행기 타고 앙카라로 가야죠. 도하공항은 비행기 이,착륙시 이렇게 버스로 움직입니다
거의 미지막이라 탑승객이 적네요
자 !. 4시간 30분의 항공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앙 카 라
고대 하타이트(Hittite)의 도시였고 한때 동로마(Rome)제국, 비쟌틴(Byzantines),
쎌쥬크(Seljuks) 그리고 오토만(Ottoman)의 도시였던 앙카라는 현재 터키의 행정수도 이다.
그래서 아나톨리아의 평원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학생들 이라고 한다.
약 15시간의 비행기 여행이 끝나고 앙카라 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참 한산한 공항이네요
아담하고 깨끗한 앙카라 공항
관광팀이 모여 있습니다. 관광객은 우리 밖에 없네요
자 이제 앙카라 시내로 갑시다.
앙카라 시내를 걸으면서
앙카라 시내의 버스 정류장
터키의 중심부에는 거의 아타튀르크 동상 등이 있는듯하다
한국공원
앙카라의 구 터미널 앞에 위치한 한국공원은 1950년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전사한 터키 장병 721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조성되었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을 본떠 만든 참전기념탑에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적혀있고, 한글로 된 추도글도 있다.
대통령의 시신이 있는 Mausoleum
1925년 오토만 건축형식으로 지은 이 인종학(Ethnographical)박물관은 위대한 터키의 지도자이자 현재의 터키 공화국을 만든 Ataturk 의 시신을 지금의 mausoleum의 장소로 옮길 때까지 보관했던 곳인데 지금은 오트만 시대의 생활풍습, 결혼준비를 하는 신랑과 신부의 밀랍인형,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남녀 의상들, 손으로 직접 쓴 코란, 나무 조각품, 포경 수술하는 방 그리고 코란의 구절
들이 조각되어있는 셀쥬크 시대의 관들과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