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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김 성 한
1
개구리들은 제멋대로 살았다.
아늑한 산골짜기, 잔잔한 연못에 자리잡은 그들은 아름다운 화초가 우거진 물가에서 노래부르고, 피곤하면 푸른 하늘 아래 바윗등에서 마음놓고 낮잠을 잤다. 해가 기울어 출출하게 되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벌레와 송사리 떼는 아무리 잡아먹어도 줄어들 줄을 몰랐다. 아득한 옛날 그들의 조상이 땅 위에 삶을 시작한 이래 연못가에는 일찌기 이렇다 할 풍파조차 일어난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진달래가 핀 봄날이었다. 배불리 먹은 그들이 물에서 뛰어나와 풀을 헤치고 바윗등에 이리저리 누워 낮잠을 자려는 순간, 하늘에서는 가지각색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소란스럽기란 마치 허공이 온통 찢어지는 듯하였다. 쳐다보니 날짐승들이 하늘을 까맣게 뒤덮고 머리 위를 한 바퀴 씽 돌뎌니 바로 그들한테로 쏟아져 내려오는 길이었다.
신기한 이 광경에 겁을 집어먹은 그들은 산산이 흩어져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크게 숨도 못 쉬고 돌틈에 틀어박혀서 허덕이다가, 약빠르기로 이름난 얼룩개구리의 선창으로 살금살금 기어나와 두 눈만 물 위에 내놓고 멀리 날짐승들이 하는 거동을 살피기로 하였다.
한층 높은 바위에는 엄청나게 큰 검은 독수리가 두 눈을 번득이면서 버티고 섰다가 무어라고 소리를 냅다 지르니 뭇 새들은 땅에 엎드려 국궁 재배하고, 앵무새와 공작도 앞으로 나가 한 번 읍하고 일어서 대령하였다. 독수리는 좌중을 한 바퀴 휘익 돌아보고 나서 맨 뒤 땅바닥에 제창 엎드리지 않고 곁눈질하는 까투리를 쏘아보면서 고함을 지르자 앵무새가 받아서 재잘거렸다. 이어서 큼직한 매가 냉큼 달려가 까투리를 집어다 모가지를 비틀어 독수리 앞에 엎드려 놓고 '공손히 물러나왔다. 공작은 발톱으로 까투리의 배를 갈라 헤치고 정중히 권하니 독수리는 그 큰 날개로 한번 부출치고 달려들어 가슴을 파먹고 뼈까지 갉아마셨다.
물 속에서는 얼룩 개구리가 낮은 소리로 감탄 삼탄하였다. 멍텅구리로 유명한 파랑 개구리는 머리가 얼떨떨해 있다가 얼룩이의 탄성에 약간 제 정신을 찾고 물었다.
“이게 무슨 판이니?”
얼룩이는 한번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대답하였다.
“독수리는 날짐승의 왕이야.”
그래도 머리가 둔한 파랑이는 알 수가 없었다.
“왕이 무어니?”
“왕두 몰라? 저렇게 제일 잘난 작자를 왕이라구 허지. 개구리 세상은 참 데데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왕두 없구. 더군다나 왕이 무엔지도 모르는 바보 천치라 기막힐 누릇이지.”
파랑이의 눈에는 얼룩이가 아는 것도 많고 약기도 하고 날쌔기도 하여서 굉장한 존재로 보였다.
“얘 얼룩아, 너 그럼 우리 왕이 되려무나, 암만해두 니가 젤 잘난 것 같구나.”
“이 ㅡ 자식.”
얼룩이는 겉으로 이렇게 반박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좋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뭇 개구리의 놀림감 구실밖에 못 하는 파랑이의 한 마디가 무슨 권위를 가질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파랑이가 아니고 조금 큰 고기도 어렵지 않게 물어뜯는 초록이의 한 마디라면 얼마나 놓으랴! 초록이 어디 있나, 요리조리 눈을 팔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없겠으면 차라리 아주 없어지라고 남 몰래 기대하면서 아래를 보니 물 밑 돌등에 자뿌라져서 쿨쿨 자고 있었다. 하는 수 없었다. 또다시 물 위로 눈을 내놓고 날짐승들을 바라보았다.
까투리를 송두리째 먹어 삼킨 독수리는 뭇 새들을 종별로 정렬시키고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훈련은 맹렬하였다. 그의 구령에 따라 새들은 산으로 올리달렸다. 조금이라도 동작이 느린 놈은 날카로운 그의 발톱에 할퀴어 쓰러졌다. 그 중에서도 굼뜬 오리는 대개 죽어자빠지는 것이었다. 그 우렁찬 소리, 늠름한 태도, 어느 하나 물 밑의 개구리들을 감동시키지 않는 것이 없었다.
훈련이 끝나자 다시 정렬한 새들이 제각기 이를 악물었다가 주둥아리로 깃을 한 대씩 뽑아 바윗등에 옥좌를 만들자 독수리는 공작과 앵무새의 부축을 받으면서 이에 들어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고, 다른 새들은 모두 흩어져서 쓰러진 오리를 잡아뜯기 시작했다. 역시 제일 억센 것은 매였다. 한 놈이 두세 마리씩 차지하고, 진달래 밑에서 다른 놈들은 얼씬도 못 하게 가로막고 먹어삼켰다. 제비와 참새는 엄두도 못내고 보들보들 앉아 떨고 있었다.
물 밑의 개구리, 그 중에서도 얼룩이는 개구리로 태어난 것을 새삼 한탄하였다. 수면 가득히 알룩딸룩 네 발을 헤벌리고 고작해야 못생긴 두 눈만 내놓은 동족 개구리들은 볼수록 정나미가 떨어졌다.
새들이 다시 독수리의 호령으로 상공을 한 바퀴 돌고 멀리 날아간 뒤에도 어안이 벙벙해서 그냥 수면에 맥없이 둥둥 떠 있던 개구리들은 얼룩이가 약빠르게 물가의 풀잎에 뛰어올라 자기만이 끄떡없다는 듯이 재롱을 부리다가 바윗등에 나가 사지를 벌리고 큰대자로 쓰러지듯 누워 버린 뒤에야 하나씩 둘씩 부수수 털고 일어나 얼룩이 옆에 가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얼룩이는 아는 바가 있는 얼굴을 하고 하늘만 쳐다볼 뿐, 동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럭저럭 모두들 바윗등으로 나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조금 전에 본 놀라운 광경을 제 소견대로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동무들은 안중에 없다는 듯이 외면하고 있던 얼룩이는 불쑥 일어섰다. 그것은 아까 독수리가 섰던 자리였다. 이렇게 막상 일어서고 보니 자기는 결코 독수리만 못한 존재는 아니었다. 자기가 하늘을 날지 못하는 대신 독수리는 물 속에서는 꼼짝 못 할 것이 아니냐?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너희들도 아까 보았지만 날짐승들은 한 지도자 밑에 얼마나 질서 정연하고 위풍이 당당하냐? 우리들 개구리도 한번 이런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어떠냐?”
바로 턱 밑에 쭈그리고 앉은 멍텅구리 파랑이가 또 주착없이 물었다.
“얼룩아, 지도자가 무에니?”
“지도자란 건 왕이라구두 하구 임금이라구두 하는데, 아까 본 독수리는 이를테면 새들의 지도자요 왕이요 임금이란다.”
저 쪽에서, 역시 파랑이에 못지않은 멍텅구리 검둥이가 바보 같은 초리로 물었다.
“얼룩아아, 왕이란 건 그렇게 막 잡아먹는 거니이? 아이구 무시라아.”
얼룩이는 한 번 픽 웃고 좌중을 훑어보았다. 지도자의 참뜻을 아는 것은 자기만이라는 것이 분명하였다.
“잘못하는 놈은 잡아먹지, 아니 잡아먹어야지.”
“얼룩아아, 어떻게 하는 게 잘못하는 거니이?”
파랑이다.
“지도자의 말을 잘 안 듣고 게으른 짓만 하는 게 잘못하는 거지”
“얼룩아아, 그럼 낮잠 자는 것두 잘못하는 거니이? 어쩐지 무시무시하구나아.”
검둥이다.
“얘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새들이 저렇게 훌륭한 지도자 밑에 일사불란의 질서를 유지하고 단결하였는데, 만약 저마다 멋대로 날뛰는 우리 개구리 사회를 들여다본다면 무어라고 하겠느냐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도 당당한 지도자를 받들고 이 무질서를 질서로 정돈하기를 제의하는 것이다.”
“듣구 보니께 그렇기두 하구나아.”
파랑이다. 모두들 그럴싸하게 구미가 도는 모양이었다.
“여기 반대하는 개구리는 앞발을 들어라.”
발을 드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유독 맨 뒤에 자뿌라져 있던 초록이가 반쯤 머리를 들고 반박하였다.
“얼룩아, 보기두 싫다. 높은 데서 뽐내지 말구 내려와. 네나 내나 마찬가지야. 지도자구 질서구 되지 못하게. 나는 이대루 자뿌라질 자유, 낮잠 잘 자유, 제멋대로 거꾸로 설 자유가 좋다.”
뱃속에서는 화가 치밀었으나 눈앞에 있는 군중은 그것이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만이 다행 이었다. 얼룩이는 초록의 발언을 묵살하기로 하였다. 그는 다시
한번 따졌다.
“얘들아,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이의가 없지? 있으면 앞발을 들어라”
역시 드는 놈은 없었다.
이 때 파랑이가 부수수 일어섰다.
“모두 좋은 모양이구나. 얼룩아, 그럼 니가 그 지도잔가 한 걸 하려무나아. 그리구 내가 좀 낮잠 자두 잡아먹진 말아라아, 증말이야.”
이에 폭소가 터졌다. 모두들 배를 거머안고 웃어 댔다. 특히 초록이는 배를 안고 뱅뱅 돌아가면서 허리를 꺾었다.
“얼룩이는 안 된다. 저번에 검둥이한테두 씨름에 졌지 않아? 게다가 목소리두 가느다란 것이 어디 돼먹었어?”
야무지게 생긴 놈의 반박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아까 날짐승 떼가 오자 제일 먼저 물 속으로 내뺀 것이 바로 얼룩이가 아냐? 그 따위 헝겊 막대 같은 지도자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적어두 독수리보다 몇 배 나은 놈을 골라야 할 거 아냐?”
“옳소!”
우뢰 같은 박수가 터졌다. 얼룩이가 임금될 가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 문제는 보류합시다.”
저 쪽 구석에서 젊은 친구가 외치니 또 박수가 터졌다.
“옳소!”
얼룩이는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바윗등에서 내려와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군중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웃고 나서 바윗등, 나뭇가지, 풀 그늘에 또다시 흩어져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단잠이 들었던 개구리들은 하늘과 땅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듯한 소리에 놀라 깨었다. 사자를 선두로 한 짐승의 행렬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찔하게 쳐다보이는 사자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그 때마다 골짜기는 쩡쩡 울리고 산천초목도 죄다 부르르 떠는 듯하였다. 재빨리 물 속에 뛰어든 개구리들까지도 와들와들 떨었다. 짐승들은 개구리 따위는 왼눈으로도 보지 않고 사자의 지휘 하에 질서 정연히 산을 넘어갔다. 몇 시간 전에 보고 감탄하던 독수리 따위는 문제도 안 되었다. 어느 개구리 할 것 없이 간담이 서늘했다.
약은 얼룩이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얘들아, 이러다간 우리 따위는 짓밟혀 죽을 게다. 어서 위대한 지도자를 골라 모시고 강철같이 단결하자.”
“아무리 위대해두 어림두 없어. 얼룩아, 니가 그래 사잘 이겨 낼 만하니?”
초록이란 놈이 또 빗나갔다. 이에 얼룩이는 일대 결심을 하구 뒷말로 서면서 앞발을 핑핑 냅다 흔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말썽만 부리다가는 앉아서 죽을 판이다. 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어서자! 굳게 뭉치자!”
“옳소!”
그의 열변은 마침내 성공하였다. 군중은 박수로써 찬성하였다.
야무지게 생긴 놈이 일어나 제의했다.
“우리가 여기 앉아서 이러니저러니 떠들고 구린내나는 앞발을 들어 박수를 쳐 보았자 신통한 수는 없을 게다. 즉시 올림푸스 산을 찾아서 제우스 신을 뵈옵고
우리에게 지도자를 달라구 말씀드리는 것이 어떠냐?”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그렇지, 그렇지.”
“옳소!”
찬성으로 들끓었다. 얼룩이는 속으로 불만이었으나 대세에 밀려서 찬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딴 놈이 오면 재상이야 내 것이지ㅡ
어느 누구의 결재도 기다릴 것 없이 모두들 올림푸스 산으로 간다고 나섰다. 얼룩이도 따라나섰다. 초록이만 홀로 뒤에 남아서 탄식하였다
2
채색 구름이 감도는 올림푸스 산 최고봉에 자리잡은 제신(諸神)의 대리석 궁전은 휘황찬란하였다. 문지기만 하여도 눈이 부셔서 잘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연못에서 최고봉까지 꼬박 일 주일 동안 험한 산길을 더듬어오른 개구리들은 기진맥진하였다. 개중에는 도중에 쓰러진 자도 적지 않았다.
궁전이 쳐다보이는 참나무 숲에 도착한 제일진은 아득하게 멀리 산기슭까지 퍼진 개구리 떼를 바라보면서 아픈 다리를 쉬이고 있었다. 개구리로 뒤덮인 이 산은, 기어오느라고 수성대는 그들로 바글바글 끓는 듯하였다. 위대한 광경이었다. 멍텅구리일망정 몸은 건장이어 제일진에 끼인 파랑이는 입을 벌리고 감탄하였다.
―― 우리도 위대하구나 ――
일찌기 개구리의 씨가 지상에 떨어진 이래 먹고 자는 여가를 타서 촌가를 아껴 번식에 노력한 그들의 역사는 여기 대단원을 연출하고 있었다. 감탄한 것은 파랑이뿐이 아니었다. 이 광경을 보는 뭇 개구리들은 자신들의 위대성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입을 놀리면 청산 유수같이 당할 자 없는 얼룩이도 몸을 부리는 실제 행동에는 말이 아니었다. 맨 뒤꽁무니를 가까스로 따라갔다. 그가 제일진이 기다리고 있는 참나무 밑에 도착한 것은 다른 자들이 다리를 쉬고 한참 자고 난 후였다. 말주변이 좋은 그는 물론 대표로 뽑혀서 신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윽고 뭇 개구리가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얼룩이는 파랑이와 검둥이를 거느리고 제우스 신 앞에 나가 국궁 삼배하고 입을 열었다.
“연못의 개구리들은 삼가 지성 지엄하옵신 제우스 신 어전에 아뢰나이다. 일찍이 신등의 조상이 땅 위에 삶을 시작한 이래 광대 무변하옵신 은총을 받자와 이같이 번영을 누리게 되오니 무엇으로써 이 홍은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오리까…….”
찬란한 보좌에 앉아 까딱없이 듣고만 있던 제우스 신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가로 막았다.
“가만 있어, 얘 개굴아. 너희들이 잘 살아가는 것이 내 덕이라 이 말이지?”
얼룩이는 황송하여 땅에 딱 붙었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머리를 들었다.
“황감하오나 그런 줄 아뢰나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긴 하다마는 약간 쑥스럽구나.”
“그런 말씀 더구나 황송하나이다. 이제 신등이 어전에 하뢰옵고자 하는 바는, 백수(百獸)에는 사자가 있어 다수리고, 백금(百禽)에는 독수리가 통치하고 있사온 바, 유독 신등 개구리만은 통치자 없이 제각기 제멋대루 날치는 판국이오니 이를 가련히 여기사 조속한 시일 내에 임금을 내려 주시옵소서.”
제우스는 두 눈으로 멍하니 보고만 있다가 한 손으로 뺨을 만지면서 물었다.
“임금이 없어 불편한 점이 있더냐?”
얼룩이는 한 걸음 바싹 나아가 엎드리면서 목청을 높였다.
“불편하옴보다도 질서가 없음을 걱정하나이다.”
“질서? 무슨 질서 말이냐?”
“상하도 예의범절도 없이 제멋대로 날뛰는 이 현상이 어찌 가탄하지 아니하오리까? 억센 힘으로 가련한 이 무질서, 군중을 꽉 틀어쥐고 질서와 단계를 세워 빛나는 통치를 할 국주를 갈망함은 가믐에 비를 기다리는 심정인가 하나이다.”
“너희들 같이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무질서로 보이리라. 그러나 그 뒤에는 더 높은 질서가 있다. 사자는 사자, 독수리는 독수리, 개구리는 개구리다. 애써 멍에를 쓰자고 덤비는 그 심사를 모르겠구나. 이 땅 위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바로 너희들이니 돌아가 이 뜻을 뭇 개구리에게 선포하고 아예 어리석은 생각은 말라고 하여라.”
얼룩이는 이마의 진땀을 앞발로 씻으면서 애걸하였다.
“그러하오나 임금을 모시고 섬기려는 개구리족의 결의는 이미 견결한가 하나이다.”
제우스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노예 근성!”
얼룩이는 떨였다. 떨면서도 현명한 자기와 자기 동료의 진의를 오해한 것만 같아서 기어드는 목소리보 한 마디 더하였다.
“신등이 행복하옴은 오로지 홍은의 소치로 감읍 불이하옵는바, 이 행복에 금상첨화로 질서를 더할까 하옵는 것이 소원인가 하나이다.”
제우스는 우울한 표정이었다.
“아아, 의식 (意識)의 비극이여, 너는 조작을 쉬지 못하고, 조작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나니 낸들 어찌하랴! 의식에는 이미 불행 의 씨가 깃들었거든·…· 들어 보아라, 너희들이 생각하고 소원하고 행동하였거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도 막을 도리가 없다. 이제 연못으로 돌아가 기다려라. 곧 너의 소원을 풀어 주리라.”
얼룩이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또다시 국궁 삼배하고 물러나와 뭇 개구리에게 성공을 알리니 땅에 엎드려 절하던 구들의 눈에는 눈물이 감도는 자도 있었다.
개구리들은 돌아섰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더듬어 가는 길은 피곤하였으나, 머리에 그리는 개구리 제국의 꿈은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돌아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조반을 마치고 바윗등에 뒹글고 있노라니까 멀리 보이는 올림푸스 산의 흰 봉우리에 무지개가 서더니 검은 것이 하늘 높이 솟자 이어서 이리로 향하여 쏜살같이 떨어져 왔다. 연못이 왈칵 뒤집힐 듯이 물을 뿌리면서 검은 것이 풍덩 빠졌다가 잠시 후에 물에 떴다. 그것은 큼직한 통나무였다.
제우스가 보내 준 자기들의 임금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개구리들은 예전에 날짐승들이 독수리 앞에서 하던 모습을 생각하고 얼룩이의 지휘로 통나무 앞 물 위에 정렬하였다. 정렬이 끝나자 얼룩이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어전에 대령하였다.
그러나 통나무는 말이 없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돌짬에서 네 발을 벌리고 딩굴던 초록이가 어정어정 기어나오면서 껄껄 웃어댔다.
“하하하…… 나무 토막 앞에서 무슨 희극들이야? 그렇게 얌전을 피구 부동자세루 뻣대다간 팔다리가 모조리 재릴 거 아냐?”
얼룩이는 때를 놓치지 않곤 점잔을 빼면서 이 무엄을 극구 힐책하였다,
“비록 말씀이 없다 할지라도 제우스 신이 내리셨으니 우리들이 섬겨야 할 지도자에는 틀림없거늘 이 무슨 광태인고? 썩 물러가라!”
다른 개구리들은 혹시 무슨 화가 미치지나 않을까 속으로 떨면서 감히 한 마디도 못 하였다. 초록이는 앞으로 쓱 나서면서 외쳤다.
“나는 저번에두 말했지만 우리는 이대루 만족이다. 무엇이 부족해서 스스로 밧줄에 얽어매고 굽신거리잔 말이냐? 조작을 집어쳐라, 조작은 모든 것을 망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편의다. 그러기에 제우스 신은 통나무를 보낸 것이다 피곤하면 올라타라구.”
얼룩이는 와들와들 떨었다.
“이 무슨 독선인고? 당장에 처벌이 내릴까 무섭도다! 제우스 신이여, 이 무지를 용서하소서.”
초록이는 허리를 꺾으며 깔깔 웃었다.
“얼룩이가 똑똑한 줄 알았더니 천하에 겁장이로구나. 그렇잖으면 통나무를 업고 출세하려는 거냐? 제우스가 던져도 통나무는 통나무가 아냐? 자 모두들 사지가 쑤실 텐데 올라서 편히 쉬자.”
그는 냉큼 뛰어올라 사지를 뻗고 드러누웠다. 뭇 개구리들은 겁이 덜컥 나고 머리가 아찔해지면서 후들후들 떨었다. 금방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질까 무서웠다. 연못에는 긴장과 공포의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멍텅구리 파랑이었다.
“초록아아, 가만 보니 네 말두 옳은갑구나아. 다리가 아파서 죽을 지경 인데 나 같은 것이 올라가두 괜찮으니?”
“어서 올라오너라, 괜찮구말구.”
파랑이는 꾸물거리면서 나가 통나무 앞에서 한번 몸서리치고, 감히 올라가지는 못하였다.
“초록아아, 증말 괜찮으니?”
초록이는 두말 없이 구의 앞발을 들어 통나무에 끌어 올렸다.
올라선 파랑이는 처음엔 어쩔 줄 모르고 눈만 휘둥그레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검둥아아, 괜찮은갑다아아, 올라오너 라아.”
이번에는 검둥이가 올라갔다. 남은 개구리들은 한층 더 겁이 났다. 얼룩이는 별안간 깨달은 바 있는 듯이 나섰다.
“제우스 신과 우리 대왕께서 당장 벌을 내릴 것이나 선량한 우리들이 한자리에 있으니 이를 가련히 여기사 물러설 여유를 주시고 기다리는 모양이다. 어서 빨리 뭍으로 나가 이 자리를 면하자.”
겁을 먹은 바람이 홱 지나갔다.
개구리들은 앞을 다투어 재빨리 땅에 나가 될수록 멀리 떨어져 엎드렸다. 뒤에 남은 초록이는 얼떨떨해 있는 두 멍텅구리를 달랬다.
“약은 놈들은 어서 구함을 받으라지, 우리는 낮잠이나 자자.”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연못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멀리 풀 사이에 숨어서 망을 보던 개구리들의 눈에 비친 것은 송사리를 잡아다 통나무 위에서 먹는 초록의 패였다. 전보다 더욱 원기 왕성하고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물을 떠난 지 사흘, 물이 그리웠다. 뭍에서 뻣대던 개구리들의 단결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하나씩 둘씩 도망쳐 물로 들어갔다. 한사코 말리는 얼룩이의 노력도 이것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일 주일이 지나고 보니 남은 것은 얼룩이뿐이었다. 물 기운을 잃은 가죽은 말라셔 빳빳하고 입은 타는 것만 같았다.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ㅡ 제우스 신이여, 어찌학오리까? 저에게 구함을 주시옵고 갈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애절한 기도에 하늘은 말이 없고 가죽과 목은 마를 대로 말라 정신마저 아뜩해졌다. 몸은 저절로 연못을 향하여 움직여 갔다.
3
통나무는 무골호인었다. 올라타도 말이 없고, 그 위에서 씨름을 하여도 말이 없었다. 이 쪽 가에서 저 쪽으로 가려면 예전에는 도중에서 한숨 돌릴 곳이 없어 불편하더니, 이젠 쉴 데가 생겨서 좋았다. 연못의 문명은 한 결음 나아간 폭이었다.
개구리들은 통나무를 좋아하고 틈만 생기면 그 위에 올라가 노래부르고 춤을 췄다.
다만 얼룩이만은 불평이었다. 아니꼬운 초록이한테 한 수 진 것이 분하고, 더구나 등신 같은 이 따위 왕 밑에서, 주야로 바라던 재상 감투는 어림도 없었다. 그는 초록이의 눈을 피해 가면서 몰래 선동을 시작하였다. ㅡㅡ이것은 왕이 아니니 그럴 듯한 왕을 개구리족의 총의로 제우스 신한테 청원하자고ㅡ-
그러나 개구리들은 별로 흥미 없는 듯하였다. 그러한 왕이 와도 좋고 안 와도 무방하다는 태도였다. 더우기 전번에 혼나서 올림푸스 산까지 걸어가는 것은 질색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렇게 소원이면 네가 가 보려무나.”
들을 만한 친구들을 붙잡고 으슥한 풀포기 밑에서 간곡히 꾀이려 들면 십상 팔구 이런 대답을 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나가 통나무에 올라가서는 제멋대로 뛰노는 것이었다.
백방 노력이 실패한 얼룩이는 일대 결심을 하고 단신 올림푸수 산을 향해서 떠났다.
제우스 신 앞에 개구리족의 열렬한 총의를 조작하여 고해 바친 얼룩이는 마침내 성공하여 며칠 후에 황새 잔등에 앉아 하늘을 날아 내려왔다.
연못가에 황새가 내리자 굴러 떨어진 얼룩이는 서슬이 푸르기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지존 영명하옵신 우리 대왕께서 지금 도착하셨다. 썩 모여서 정렬하지 못 하느냐!”
이 광경을 본 개구리들은 황겁해서 재빨리 모여들어 그 앞에. 정렬하고 삼가 최경례를 하였다.
황새왕은 목을 빼어들고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얼룩이를 향하였다.
“우선 배가 고프구나, 제일 살찐 놈을 하나 골라 바쳐라.”
얼룩이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네이! 얘 초록아 일루 나와, 대왕 폐하의 어명이시다!”
맨 뒤에 있던 초록이는 눈치를 채고 뒤로 물러서면서 응수하였다.
“살은 니가 더 쩠잖니? 니가 나서면 어떠냐?”
“어명을 거역하는 대역 부도 초록이를 잡아라!”
얼룩이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왕조의 계급 제도에 익숙지 못한 개구리들은 어안이벙벙해서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초록이도 지지 않았다.
“어명이냐, 얼룩이 명이냐? 간악한 모략군은 천벌을 받으리라.”
얼룩이도 분노에 와들와들 떨었다.
“폐하, 저 역적은 담박 철퇴를 내려 무찔러 버려야만 폐하의 왕국에 평화와 단결과 번영이 있을까 하나이다.”
“으---ㅁ, 문제 없다. 이놈 게 섰거라!.”
황새는 획 날아서 초록이 위에 내렸다. 그러나 초록이는 얼른 물 속으로 쏙 들어가서 돌 밑에 숨었다. 황새의 모가지는 길기는 하였으나 물 밑까지는 닿지 못하여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이 때부터 초록이는 왕국 최고의 역적으로 철저한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자리에 돌아온 황새는 노발대발하였다.
“이놈들아,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꼼짝 말고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담박 부수비벼 몰살시킬 줄만 알아라!”
얼룩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새 앞에 나아가 일러바쳤다.
“재상 얼룩이는 삼가 아뢰나이다. 이 모든 것이 신의 부덕의 소치로소이다. 회고하옵건대 역적 초록이는 그 성미가 포악하와 그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자 없고, 그 행패에 화를 당하지 않은 자가 없었나이다. 이제 일일 여삼추로 고대하옵던 대왕께서 강림하사 왕국을 세우고 질서를 마련하시게 되었사오니 초록이는 잡히는 대로 오찰형에 처하는 것이 일벌 백계의 현책인가 하나이다.”
황새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찰이 아니라 그 놈은 잡기만 하면 백찰이라도 해서 꿀꺽 삼켜 버린다. 그건 그렇구 배가 고프다…… 이 줄이 먹을 만하구나…… 꼼짝 말아, 이놈들아!”
황새는 부리나케 덤벼들었다. 닥치는 대로 주워서는 씹지도 않고 삼켜 버렸다. 한 줄에 섰던 열 마리가 모조리 없어지고 말았다.
이 통에 정렬하였던 개구리들은 혼을 잃고 앞을 다투어 물 밑으로 도망쳤다. 날쌘 황새는 미처 내빼지 못한 놈을 수십 마리나 붙잡아 목을 졸라 죽여서 물가에 쌓아 놓고 얼룩이더러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한나절을 물 속에서 개구리 사냥을 하고 나서 황새는 육지에 올라 쌓아 놓은 개구리 시체로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얼룩이는 옆에서 대령하고 있었다.
양껏 먹고 트림을 하면서 황새는 먹다 남은 개구리 다리를 홱 던져 얼룩이더러 먹으라고 하였다. 약간 망설이다가 배고픈 김에 한 입 물어뜯어 보았다. 얼룩이는 깜짝 놀랐다.
동족 개구리의 고기가 이처럼 맛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땅에 떨어진 피 한 방울도 아까와서 혓바닥으로 핥아먹었다. 순식간에 다리 하나를 먹어 버리고 황새의 눈치를 살폈다. 이 쪽을 노려보고 있던 황새는 픽 웃으면서 발톱으로 엉덩이살을 뜯어 던졌다. 기름기 있고 몽실몽실한 것이 다리에 댈 것이 아니다. 참으로 맛이 있었다. 똥구멍은 약간 구리기는 하였으나 눈을 꼭 감고 삼켜 버렸다.
황새는 몸뚱이를 먹고 얼룩이는 찌끼를 먹으면서 첫날에 잡은 놈으로 두 주일은 넉넉히 지냈다. 그러나 15 일째부터는 차츰 식량 걱정이 시작되었다. 간혹 물 위에 뜨는 놈을 다행히 잡는 수가 있어도 엄청나게 큰 황새 배만 채우기에도 부족하였다.
황새는 짜증을 내고 얼룩이는 배가 고팠다. 이에 연못에는 새로운 윤리가 선전되었다. -----만상의 조물주, 우주의 영원한 주인이신 제우스 신께서 파견하신 황새대왕 폐하에게 충성을 다하고 그를 위하여 문자 그대로 희생되는 것은 신자(臣子)된 자의 당연한 의무일뿐더러 최고의 영예요 천국에의 가장 확실한 길이니, 물 밑에 틀어박힌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직직한 돌 밑에서 준동할 것이냐? 알어서 나와 용감성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살아서는 신자로서 최상의 영광을 누리고 죽어서는 영원한 천국의 낙을 받도록 하자.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궐기하자 동지들이여----
얼룩이는 물 안팎을 떠다니면서 외쳤다. 그것도 황새의 주둥이가 미치는 데를 한도로 들어갈 뿐, 무슨 변이 있을까 두려워서 돌 밑까지는 가지 못하였다.
간혹 순박한 개구리가 곧이곧대로 듣고 떠오르면 황새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통째로 꿀꺽 삼켜 버렸다. 얼룩이는 똥구멍살이라도 주지나 않을까 침을 흘렸으나 어림도 없었다. 황새가 날치고 뒤집는 바람에 밝던 물은 모두 흙탕이 되고, 흔하던 송사리 떼조차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제는 해질 무렵에 나타나는 모기를 잡아먹고 연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못은 수라장이었다.
물 밑에 숨은 개구리들의 고생은 말할 나위 없었다. 꼼짝할 수가 없고 큰 기침은 물론,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어쩌다 송사리 한 마리 잡으면 대여섯이서 토막토막 나눠 먹고 견디었다. 참다못해 초록이가 나섰다.
“제우스 신에게 이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것이 어떠냐?”
“그러나 꼼짝할 수가 있어야 빠져 나가지.”
모두들 탄식만 할 쁜, 별 도리가 없었다.
“내가 갔다 오지.”
초록이는 힘 있게 말하였다.
“잘 부탁한다. 조심해라.”
뭇 개구리들은 간절히 당부하였다.
“나두 가지, 나 같은 거야 붙잡혀 죽어두 아까울 거 있니?”
검둥이도 나섰다.
캄캄한 그믐밤을 타서 두 개구리는 조심조심 물 위에 떴다. 공교롭게도 물 위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에 비쳐서 그만 얼룩이의 눈에 띄고 말았다. 얼룩이는 소리소리 질렀다.
“폐하, 저기 두 놈이 있읍니다. 그 역적놈과 살찐 검둥이가.”
달려드는 황새의 발톱을 간신히 피한 그들은 다시 물 밑으로 쑤욱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 위에서는 이리저리 날치고 다니는 황새와 얼룩이 소리로 야단이 났다.
“폐하, 참으로 통분합니다. 역적 초록이를 또 한 번 놓쳤으니 이렇게 분할 법이 어디 있겠읍니까?”
이런 소리도 들려왔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가 수성대는 수리가 멀어지자 틈을 타서 두 개구리는 다시 슬그머니 물 위에 떴다. 저 쪽 물가에서는 얼룩이가 아양을 떨고 있었다.
“폐하의 거룩하신 몸을 괴롭힌 이〔虱〕란 놈을 지금 사형에 처합니다.”
“으―음, 얼룩아 사타구니가 가렵구나, 좀 빨아라.”
“히히히, 폐하의 사타구니는 참 보들보들하셔, 양양양…….”
“아이 시원허다, 자지두 가렵구나.”
“히히히, 양양양…….”
두 개구리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여 헤엄쳐서 반대쪽에 상륙하였다.
4
위난을 모면한 초록이는 검둥이를 데리고 제우스를 찾아 올림푸스 산에 올라갔다. 오랫동안 쫓겨다니느라고 변변히 먹지도 못하여 몸은 배짝 마르고 다리는 휘청거렸다. 연못을 떠난 지 열홀 만에야 신전 앞에 이르렀다.
“연못에서 온 개구리 초록이와 검둥이올시다. 원하옵건대 포악한 황새를 도로 불러 올리시고 통나무 왕을 복위하여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왕이니 지도자니 하는 것을 없이하여 주시옵소서.”
제우스 신 앞에 엎드린 초록의 첫말이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안 될 말이다. 너희들이 원하고 행동하고 이루었으니,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구나.”
“그러하올진대 저희들 개구리족의, 운명은 어찌 되오리까?”
“스스로 마련한 길을 밟을 것이요, 될 대로 될 것이다.”
“이대로 가면 개구리족은 전부 멸망할 것이 아니오리까?”
“그럴지도 모르지.”
“불쌍타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제우스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무엇이 불쌍하다는 말이냐?”
“쓰러져 가는 이 생명들이 어찌 불쌍하지 않겠읍니까?”
초록이의 눈물어린 목소리였다. 옆에 엎드린 검둥이도 앞발로: 눈시울을 어루만졌다.
“허어, 그것은 자기 중심의 망상이로다. 개구리 몇 천 마리쯤 죽어 없어졌다고 하늘과 땅이 뒤집힐 줄 알았더냐?”
초록이는 캄캄하였다.
엎드려서 비통한 소리로 애결하였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험하고 그 문은 좁다 하오니 외람된 소원이오나 차라리 구차한 이 생을 버리고 영혼이나마 천국의 자유 천지로 올 수는 없사오리까.”
“천국? 천국이 어디 있다더냐?”
초록이는 순간, 고개를 들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천만 의외였다.
“천국과 지옥은 지각 있는 온 생명이 나서 죽을 때까지 주야로 잊지 못하는 두 갈래 길인가 하나이다.”
“허허, 그것은 다 의식 조작이다. 천국도 지옥도 아무것두 없다. 없다, 없다, 아---ㅡ 무것도 없다.”
제우스는 핏대를 올리면서 외쳤다. 그의 두 눈에는 불이 번뜩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살아서 착한 일을 한 자나 얼룩이같이 간악 무도하여 동족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자나 관을 덮고 보면 마찬가지란 말씀이십니까? 이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그것이 다 망상이로다. 내 말을 들어 보아라. 개구리가 연못에서 기껏 착한 일을 해 보았자 다른 놈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버러지 새끼나 몇 마리 잡아다가 옆 엣놈의 입에 넣었다 뿐이 아니냐? 또 너희들 눈에 철천의 원수같이 보이는 악독한 놈의 행위랬자 맑던 물을 휘저어서 흙물을 만들었거나 애꿎은 개구리를 황새 밥으로 만들었거나 고 정도가 아니냐? 세상 만사가 다 그런 거다.”
“그러하오나 간사한 놈이 이기고 편히 살라는 법이 어디 있읍니까?”
“간악도 힘이다. 힘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이기는 것은 대자연의 철칙이다.”
“아、제우스 신이여 헬라스의 주시여, 저희들의 운명은 결국 어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초록의 목소리는 애통하였다. 제우스 신은 일어서면서 건너편 산을 가리켰다.
“저 산에 핀 노란꽃을 보아라, 지금 시름시름 꽃잎이 지고 있다 . 저것이 만물의 운명이다.”
돌아선 초록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러나 제우스 신은 만물의 조물주요 그 운명을 맡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아니다. 만물은 만든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어떤 교차점에서 저절로 태어났다가 때가 오면 저렇게 지는 것이다.”
“저희들은 제우스 신을 저희들의 주, 전지 전능의 신으로 알았움니다.”
“비극의 근원은 의식에 있다. 내가 어찌 전지 전능의 신일 수 있겠느냐? 나는 오히려 의식의 세계에 돋는 버섯이다. 의식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다. 비근한 예를 들자. 너 초록 개구리야,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아라, 네 눈에는 내가 초록 개구리로 보이지?”
초록이의 눈에는 틀림없이 휘황찬란학 빛을 발하는 초록 개구리로 보였다.
“황송하오나 그런가 하나이다. ”
“그렇지, 다음은 너 검둥 개구리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느냐?”
“저와 같이 거멓게 뵈는뎁쇼.”
“그런 법이다. 그뿐 아니라 저 아래 널리 퍼져 사는 사람이라는 동물이 있는데 이 동물들의 눈에는 내가 사람 모양으로 보인단 말이다. 그러기에 그 자들은 자기들과 꼭 같은 꼬락서니를 한 대리석상을 신전에 모시고 굽신거리거든, 소는 소, 닭은 닭, 개는 개의 제우스를 가지고 있으니 내 어찌 유일자일 수 있겠느냐?”
초록이는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면 결국은…….”
“결국은 나는 없는 것이다. 너희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의식의 조작이다. 의식에 뿌리박은 노예 근성의 조작이다.”
제우스는 옆을 향하였다. 그가 화를 낼 줄만 알고 두 개구리는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제우스는 빙긋이 웃으면서 돌아앉았다.
“하하 너희들은 자기 환상에 떠는구나. 본래 의식 이란 것은 석고같이 융통 자재한 것이었다. 허나 바로 이 점에, 이 융통성에 너희들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스스로 만든 것을 부술 수 있고 때릴 수 있고, 잡아먹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개구리는 더욱 무서웠다. 혹시나 제우스가 함정을 만들어 놓고 빠뜨려서 영겁의 지옥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은 아닌지? 이마를 땅바닥에 조아리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그러하오나 제우스 신께서는 우주의 영원한 최고심인 줄 아옵나이다.”
“아직도 꿈을 꾸는구나. 너희들 각자가 제각기 나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느냐?·…·그뿐이 아니다. 머지 않아 혜브라이의 군신 (軍神)이 눈부시게 단장하고 에흐바라는 이름으로 이 헬라스 땅에 들어와 온 생령의 의식을 점령할 때, 나는 완전히 죽어 버리고 어린이의 옛말책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의식에서 태어나 의식을 파먹고 사는 존재이거든, 빤한 일이 아니냐? 그러기에 헤브라이의 군신은 현명하게도 이렇게 말하지 않느냐? 나는 너희들의 마음 속에 있다고…….”
“그러면 신성한 올림푸스 산과 신들은 어찌 되오리까?”
“신전과 신은 네 마음 속에 있고 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림푸스 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미래 영원히 까마귀 까치가 멋대로 날고 지렁이와 굼벵이가 꾸물거리는 그저 산이다.”
“이 무슨 황공하고 슬픈 말씀이오니까.”
초록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섬기지 않고는, 굽신거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노예 근성이여, 의식의 비극이여 ! ……헤브라이의 신을 섬기다가 섬기는 데 지친 의식은 20 세기 후에 이즘이란 것을 꾸며내 가지고 그 밑에 굽신거리고, 이 있지도 않은 허깨비 같은 새로운 신의 명령이라 하여 피를 흘리고 쓰러지리라. 간단 없는 의식의 조작이여, 네 죄가 진실로 크도다.”
제우스는 장탄식을 하였다.
별안간 제우스는 땅을 구루며 버럭 일어섰다.
“너 두 개구리는 일어서라!”
위엄 있는 일갈에 초록이와 검둥이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나한테 침을 뱉고 물어 뜯어라!”
두 개구리는 주춤하였다.
“겁화가 무섭지 않단 말이냐! ”
“무엄하게도 감히 명령을 거역 할 작정이냐?”
위세에 눌려서 두 개구리는 반사적으로 돌진하여 침을 뱉고 물어 뜯었다. 정신을 잃고 닥치는 대로 네 발로 할퀴고 갈기고 찢었다.
숨을 돌렸다. 크게 눈을 한번 깜빡이고 나서 초록이는 앞을 응시하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제우스도 신전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돌멩이가 있을 뿐이었다. 겁을 집어먹고 쓰러져 팔딱이는 검둥이의 두 눈이 돌짬에서 멍하니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초록이는 공중을 향하여 한번 힘껏 올려뛰었다. 땅에 뚝 떨어졌다. 다시 뛰었다. 다시 떨어졌다. 천지는 아무 변함 없고 무관심하였다.
도달할 끝이 없는 망망한 하늘 아래 시초도 종말도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초록이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 ◈작가 연보
김 성 한
1919 함경 북도 풍산(豊山)에서 출생.
일본 동경 제대(東京帝大)를 중퇴.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 사학과를 졸업 (M.A.).
1950 단편 〈無明路〉 가 「서울신문」 신춘 문예에 선하여 문단에 데뷔. 〈김 가성론〉 〈자유인〉 발표.
1955 〈암야행〉 〈제우쓰의 자살〉 〈오분간〉 〈개마고지의 전설〉 발표.
1956 〈극한〉 〈바비도〉 발표.
1957 〈방황〉 (귀환〉 〈달팽이〉 발표.
1958 〈폭소〉 발표. 「思想界」 주간을 거쳐 동아일보사에 입사,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등 역임. 1981 동아 일보사 퇴직 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음. 장편으로 〈이성 계〉 〈이마〉 〈요하〉가 있으며, 〈바비도〉로 제 1 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고, 〈오분간〉으로 제 6 회 자유 문학 상을 수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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