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와 관련 있는 어휘
비는 사람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 만물이 대지 위에 번성할 수 있게도 한다. 그러나 때론 너무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나기도 하고, 때론 너무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겪곤 한다. 여름은 다른 계절과는 달리 비가 많이 오는 때로서 이참에 이러한 비에 관련된 어휘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양에 따른 비
ㄱ. 소나기, 산돌림 ㄴ. 웃비 ㄷ. 작달비 ㄹ. 장대비(長-) ㅁ. 발비 ㅂ. 억수 ㅅ. 궂은비 ㅇ. 장맛비 ㅈ. 큰비/호우(豪雨)/폭우(暴風雨)
소나기는 소낙비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갑자가 세차게 쏟아지다 곧 그치는 비’이다. 곧 시간으로는 짧게 양으로는 많이 내리는 비다. 그리고 이러한 소나기가 이러저리 돌아다니면서 올 때 그러한 비를 산돌림이라 한다. ‘소나기’와 비슷한 어휘로는‘좍좍 내리다가 일시 그치는 비’인 웃비를 들 수 있다. 그밖에 양적으로 볼 때 비슷한 어휘로는, ‘굵고 거세게 퍼붓는 비’인 작달비와‘빗발이 굵게 좍좍 쏟아지는 비’인 장대비, 그리고‘빗방울의 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인발비와‘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인 억수 등이 걸러진다.시간적 개념을 기준으로 보면, 반의어로는‘끄느름하게(날이 흐리어 침침하게) 오랫동안 내리는 비’인 궂은비와‘여러 날 계속하여 내리는 비’인 장맛비가 있다. ‘장맛비’는 결국‘오래도록 많이 쏟아지는 비’인 큰비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이 비들의 공통점은 많이 내리는 비라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내리는 양이 적은 비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의 비가 있다.
ㄱ. 가랑비 ㄴ. 는개 ㄷ. 보슬비, 부슬비 ㄹ. 안개비 ㅁ. 이슬비
가랑비는 한자어로는 세우(細雨)라고 이르는 비로 이슬비보다 굵으나 가늘게 내리는 비다. 곧‘이슬비’는‘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로 굵기는‘는개’와‘가랑비’사이라 할 수 있다. 안개비는‘안개같이 가늘게 오는 비’로‘분무기에서 내뿜는 물방울 크기로 오는 비’를 일컫는다. 는개는‘안개비’보다 조금 굵고‘이슬비’보다 좀 가는 비이다(안개비<는개<이슬비<가랑비). 보슬비는‘바람 없이 보슬보슬 조용히 내리는 비’이고 ‘부슬비’는‘부슬부슬 내리는 비’다.
시간과 계절에 따른 비
ㄱ.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ㄴ. 새벽비, 저녁비, 밤비 ㄷ. 백중물, 칠석물 ㄹ. 보름치, 그믐치 ㅁ. 모종비, 목비, 못비 ㅂ. 복물
ㄱ과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어휘들이지만 그 느낌은 무척 차이가 난다. 우리 속담에‘여름비는 잠비, 가을비는 떡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들은 일과 관련하여 색다른 느낌을 안겨 준다. 곧 가을에 비가 오면 들에 나가 일을 할 수 없고, 곡식은 넉넉하니 집 안에서 떡이나 해먹고 지내지만 여름에는 그저 잠만 자게 된다는 것이다.
백중물은 음력 칠월 보름인 백중날을 앞뒤로 하여 많이 오는 비이고, 칠석물은 음력 칠월 칠일께에 크게 오는 비다. 보름치는 음력 보름께에 비나 눈이 오는 날씨를 가리키고, 그믐치는 음력 그믐날께에 오는 비나 눈을 말한다. 모종비는‘모종하기에 알맞게 오는 비’또는‘모종하기에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다. 목비는 모낼 때쯤 한 목 내리는 비이고, 못비는 모를 다 낼 만큼 충분히 내리는 비다. 모두가 농사에 긴요한 비들이다. 복물은 복날(伏-) 또는 복날 전후에 오는 비를 말한다.
느낌에 따른 비
ㄱ. 단비 ㄴ. 약비 ㄷ. 찬비 ㄹ. 궂은비
단비는‘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다. 불같이 내리쬐는 햇볕에 시들어가는 곡식들이 한 줄기 단비에 새 힘을 얻은 듯이 싱싱해진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파릇파릇 싱싱한 모습은 농부의 미소가 아닌가. 이러한 비는 바로‘요긴한 때에 내리는 비’인 약비인 것이다. 찬비는‘맞으면 추위를 느끼는 비’다. 궂은비는 앞에서 장맛비와 함께 다뤘지만 사실 그 분위기가 더 중요시 되는 낱말로‘지겹게 내리는 비’인데‘축축하고 을씨년스러운’날씨라는 뜻과 함께 쓰인다.
정도에 따른 비
ㄱ. 여우비 ㄴ. 흙비 ㄷ. 눈비 ㄹ. 바람비. ㅁ. 줄기, 줄금 ㅂ. 먼지잼(-하다) ㅅ. 호미자락 ㅇ. 보지락
여우비는 그야말로 여우같은 비로, 볕이 나 있는데 잠깐 오다 그치는 비이고, 흙비는‘흙먼지가 많이 섞이어 내리는 비’이고, 눈비는‘눈 속에 섞여 내리는 비’이다. 이런 경우는 실제로 눈인지 비인지 헷갈리겠지만 아무래도 눈에 띄는 눈이 먼저인 듯싶다. 바람비는‘바람에 날려 흩뿌리는 비’‘줄기’는 비가 한 차례 쏟아지는 것을 단위로 일컫는 말이다.
먼지잼은 비가 겨우 먼지가 날리지 아니할 만큼 온 것을 말한다. 곧‘비가 먼지를 재운다’는 어원을 갖는다. 호미자락은 빗물이 땅에 스며든 정도가 호미날의 길이만큼 된다는 것이요, 보지락은 빗물이 땅에 스며든 정도가 보습(쟁기에 붙은 삽 모양의 쇳조각)날이 들어간 만큼 된 것을 말한다. 따라서“봄비가 한 보지락 내렸구나”와 같은 쓰임새를 만나게 된다.
비오는 꼴
ㄱ. 긋다 ㄴ. 퍼붓다. 내리퍼붓다, 들어붓다, 들이퍼붓다 ㄷ. 질금거리다, 찔끔거리다, 지짐거리다 ㄹ. 오다, 내리다, 떨어지다, 쏟아지다, 뿌리다, 휘뿌리다 ㅁ. 빗방울 듣다 ㅂ. 복물 지다
비를 긋는다 하면 비를 잠시 피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긋다’가 자동사로도 쓰여‘비가 긋다’하면‘비가 잠깐 그치다’라는 뜻이 된다. 퍼붓다는 비, 눈 따위가 억세게 마구 쏟아지는 꼴을, 내리퍼붓다는 비나 눈이 계속해서 많이 오는 꼴을, ‘들어붓다’는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는 꼴을, 들이퍼붓다는 비나 눈이 마치 퍼서 붓듯이 마구 쏟아지는 꼴을 말한다. 비가 질금거리다라고 하면‘비가 조금씩 오다
말다 하다’는 뜻이 된다. 찔끔거리다는‘질금거리다’의 큰말이다. 지짐거리다는‘비가 오다 멎었다 하며 자주 오다’는 뜻이다. ‘조금씩 오는 비가 자꾸 내렸다 그쳤다 하는 모양’을‘지짐지짐’이라고 한다. 빗방울 듣다는‘빗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다’또는‘비가 오기 시작하다’는 뜻이다. 듣다라는 동사는 ‘소리를 느끼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와 같이‘빗물이나 눈물 따위가 방울져 떨어지다’라는 뜻으로도 잘 쓰인다. “빗방울이 뚝뚝 듣는 소리”하면 곧 그런 뜻이 된다. 복물 지다는‘복날 또는 복날을 전후하여 비가 많이 오다’라는 뜻이다.
상징어
다음은 비오는 현상을 나타내는 상징어들이다.
ㄱ.죽죽(여러 줄로 고르게 자꾸 이어지는 꼴)
ㄴ. 좍좍, 쫙쫙(굵은 빗방울이 자꾸 쏟아지는 꼴)
ㄷ. 줄줄(굵은 물줄기 따위가 잇달아 순하게 흐르는 소리, 또는 그 꼴. 소나기가 줄줄 내린다)
ㄹ. 솨솨(잇달아 비바람이 치거나 물결이 밀려올 때 나는 소리)
ㅁ. 뚝뚝(잇달아 떨어지는 소리)
ㅂ. 후둑후둑(후드득후드득, 성기게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따위의 소리)
ㅅ. 주록주룩(굵은 물줄기 따위가 자꾸 내리거나 흐르는 소리, 또는 그 꼴)
ㅇ. 졸금졸금(물 따위가 조금씩 나오다 멎다 하는 꼴)
ㅈ. 질금질금, 찔끔찔끔(비가 잠깐 아주 조금 내리다 멎는 꼴)
ㅊ. 보슬보슬, 부슬부슬(눈이나 비가 가늘고 성기게 소리없이 잇달아 내리는 꼴)
그 밖의 낱말
그밖에 비와 관련된 어휘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ㄱ. 빗물(비가 와서 괸 물)
ㄴ. 빗밑(비가 개기 시작하여 완전히 멎을 때까지의 과정)
ㄷ. 빗발(비가 내려칠 때 줄기 진 것처럼 보이는 빗줄기)
ㄹ. 빗방울(비로 떨어지는 물방울)
ㅁ. 빗소리(비가 내리는 소리, 또는 빗발이 세차게 바람에 휘몰리는 소리)
ㅂ. 빗속(비가 내리는 속)
ㅅ. 빗줄기(줄이 진 것처럼 보이게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빗발, 또는 소나기의 한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