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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로마서(4) /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죄!”
☞ 말씀 : 로 마 서 2장 1절 - 16절 (신약성경 p.240)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능력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어지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가장 변화되기 힘든 사람들이 누굽니까? 오래 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래 될수록 영혼의 껍데기가 너무나도 두터워서 쉽게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앞의 로마서 1장 18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요.
오늘 본문 말씀은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범죄를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로마서 1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지은 죄에 대한 고발이라면,
오늘 본문 말씀이 들어 있는 2장의 말씀은 이미 믿고 있는, 성도들이 지은 죄에 대한 고발입니다.
성경은 교회 좀 오래 다녔다고 하는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의인의식” -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범죄” 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체험하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죄에 대한 말씀을 선포해도, 죄에 대한 말씀은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 심각하게 선포하는데도 불구하고 ‘나 정도 믿으면,
잘 믿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의인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전혀 불안감이 없습니다.
이런 의인 의식에 사로잡힌 분들은 죄에 대한 설교는 초신자들이나, 잘못 믿는 다른 사람들에게나,
해당이 되는 말씀이지, 자신과 같이 잘 믿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래서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찌할꼬?’ 하는 마음으로 회개의 무릎을 꿇지를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은 이렇게 크게 책망하십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사야서 6장 9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저주요. 심판입니다.
설교를 하고 나면, 성도들이 목사인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저를 바라보면서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토를 달기를 ‘오늘 설교는 우리 남편이 꼭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인간이 교회를 안 나와서,
우리 셀 목원들이 들었으면, 우리 항존 직분자들이 들었으면 좋았을텐데요.” 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 옳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은 내겐 해당이 없고,
누가누가 듣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 시킵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설교합니다.
꼭 안 되는 집구석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적용시킵니다.
아내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당신 태도는 도대체 뭐요?” 하는 식으로 덤빕니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했는데, 당신 태도에서 순종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그러면서 괜히 목사 설교 때문에 부부가 집에 가서 싸웁니다. 설교가 부부싸움의 불씨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말씀은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축복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게 회개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게 찔림이 있으면 그게 은혜 받은 것이요. 그것이 내게 축복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예루살렘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래, 맞다. 제사장들이 회개해야 한다. 그래, 맞다. 바리새인들이 회개해야 한다.” 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마음이 찔려 이르되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까지 선포하였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목사인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먼저 적용하지 않고,
전부 성도들에게만 적용하려고 준비하면, 저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성도들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할 때에, 먼저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먼저 회개하고, 내가 먼저 변화를 받고, 내가 먼저 은혜를 받은 다음에,
성도님들 앞에서 준비된 말씀을 선포하면 그 선포하는 말씀에 힘이 있고, 모두가 은혜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변화시킨 그 능력의 말씀이, 설교자인 저의 가슴속에서 먼저 불덩이가 되어서,
저의 심장을 뜨겁게 되고 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선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의인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의인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한데,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예민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허물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만 크게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말세야 말세!” 라는 말을 많이 하고, 지옥과 마귀에 대한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자기 죄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남의 허물을 보면서 그런 말을 내뱉습니다.
“목사가 사랑이 있어야 되는데, 요즘 목사들은 사랑이 없어! 역시 말세야 말세!”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장로가 어떻고, 권사 집사가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하면서 정죄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정도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을만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죄에 대한 애통함도 없고, 죄에 대한 회개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독선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무서운 교만입니다.
우리는 “내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교만하고,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사랑하고,
내가 이렇게 거룩하지 않은 것을 보니, 정말로 말세구나! 회개해야 겠구나!"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혼미해져 가는데, 내가 기도하는 일을 쉬고 있구나,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구나. 내가 회개해야지, 정말로 말세구나!" 이렇게 나와야 정상적인 성도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 말씀에 보면, 교만으로 똘똘 뭉친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한마디로 교만한 기도입니다.
반면에 세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는 전혀 보지 않고, 남의 죄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없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 그래서 사죄의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성경은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의 기도는 거절당했는데,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심이 찔리도록 우리의 죄를 지적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은 의인이라는 혼자만의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은혜는 모든 말씀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고, 그렇게 믿는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누가 으뜸이 되는 지도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많이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는 사람입니다.
콜롬비아신학교의 스티븐 옥포드 교수는 “진심으로 존경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꿇은 무릎, 기도하다가 젖은 눈물, 깨어진 심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눈이 젖도록 많이 울어야 합니다. 깨어진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살리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에서는 절망의 말이 아닌 소망의 말, 저주가 아닌 축복의 말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어떤 성도님이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떤 권사님이 위로한답시고, 병원에 문안 갔습니다.
그런데 환자에게 하는 말이 기가 막힙니다. “아이고 으짜까, 내가 얼마 전에 이 병으로 죽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 이거, 애들이 불쌍해 어떻게 하지?” 하면서 안됐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병을 고치겠다고 병원에 온 사람더러 죽으라는 말과 똑같은 저주에 가까운 무서운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죄받았구만, 회개해야 돼, 마귀의 역사야!’ 하면서 선지자인양 말을 해댑니다.
정말 존경받는 그리스도인라면 환자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해도 믿음을 붙들라고 말해야 합니다.
“성도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죄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곧 일어날 것입니다." 이게 성도의 권면입니다.
또 대학 졸업을 앞둔 젊은이에게 "그 과 나와 가지고 취직도 안 된다더라." 이것은 죽이는 말입니다.
시집 못간 노처녀에게 "요즘에는 스물다섯만 넘어도 좋은 데 시집가기는 힘들다더라." 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너는 가능성이 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다. 너는 지금부터 준비하면 하나님이 쓰신다."
이것이 성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살리는 말을 하며 삽시다.
그러면 우리 주변의 낙심한 심령들이, 다시 살아나는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잠언 18장 21절 말씀을 보면 “죽고 사는 권세가 우리 혀에 달려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7절을 보면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에는 살리는 열매도 있고, 또 심판도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임과 동시에 들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증거합니다.
광야에서 말끝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낮 죽겠다 죽겠다 하니까, 하나님이 죽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밤낮 “나는 망합니다. 나는 망합니다.” 하니까, 그 말대로 하나님이 망하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안 됩니다. 나는 안 됩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안 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축복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고,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흥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면 이제부터는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회개치 않는 자의 대표적인 특징이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택한 백성과 버림받은 백성의 구분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 매 맞으면 회개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백성은 하나님께 맞으면 맞을수록 고집부리고, 더욱 강팍해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무서운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재앙이 내리면 내릴수록 더욱 강팍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집 부리면 바로 왕처럼 바로 망하고, 망해도 완전히 망합니다.
십자가상의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한 강도는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그리스도, 곧 구원자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고 죽어가면서도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버림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버림받은 자들은 끝까지 발악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제일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고집 센 사람입니다.
황소고집이 있는 사람은 쉽게 믿음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새롭게 변화시키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시도하십니다.
말씀으로 안 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채찍으로 치십니다. 처서도 안 되면 하나님이 부러뜨리십니다.
이사야 1장 5절, 6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고집 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패역하느냐?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 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아멘!
순종하지 않으면 목이 굳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을 부러뜨려서라도 회개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회개하는 자, 돌이키는 자,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진짜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다윗의 위대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골리앗을 물리친 용맹, 블레셋을 물리친 승리에 있지 않습니다.
다윗의 위대성은 그의 회개에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도둑이 바로 당신이요.” 할 때,
더 이상 한마디 변명하지 않고 그대로 무릎을 꿇은 회개가, 다윗을 성군으로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자는 죄 짓지 않는 자가 성자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는 자가 진짜로 성자임을 명심하십시오.
미국에 미키 쿠로스라는 한때 뉴욕 암흑가의 왕초였던 깡패 출신의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반인들은 물론 경찰의 간담까지도 서늘하게 하는 음란, 방화, 살인, 강도를 행하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손으로 갖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돈, 여자, 술, 모든 것을 다 가져보았습니다.
그런데 밤에 잘 때면 방문에 열쇠를 몇 겹으로 하고, 베개 밑에 항상 권총을 넣고서 잠을 잤습니다.
그는 항상 부하의 배신을 감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끊임없는 불안과 초조 가운데 살았습니다.
마음의 고독과 슬픔, 괴로움으로 날마다 몸부림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평강이 없었던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입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을 다니다가 사법용어로 공소시효 - 어떤 형벌을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고 생각하여 자진해서 자수를 했는데, 날짜를 잘못 계산해서 3일 일찍 자수했습니다.
그래서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경우를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 사람 참 재수 없다.’ ‘그 사람 참 안됐다.’ ‘참 안타깝다.’ 이런 말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범인으로 잡힌 그 사람은 “참 시원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지 아는가?
이제 잡혔으니, 비록 내가 있어야 할 곳이 감옥이라도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겠구다.”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에게 임하는 복을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의인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 존귀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강이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에서 보게 되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 여러분! 진심으로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염려, 불안, 초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겨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 (마 11:28)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오직 믿음으로 변화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므로 변화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 평안을 마음에 한 가득 가지는 변화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