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손녀와 4살 손자가 집에 온다니 설렌다. 녀석들이 집에 들어서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르며 품에 안기면 너무 좋다. . 그러나 끝없이 함께 놀아달라는 녀석들의 체력을 버텨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잘 놀고 돌아간다고 하면 더 좋은 것도 사실이다.
오늘 드디어 녀석들이 놀러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하고 안기고 나면 본업이라도 해야 된다는 듯 바로 놀이에 들어간다. 우리 집은 놀이터로, 집안 물건들은 놀잇감으로 그리고 녀석들은 전문 놀이패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내 뜻과는 관계없이 녀석들의 놀이 파트너가 된다. 그러면 집안 물건들은 곧 벌어질 야단법석을 알기에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녀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괴물 놀이부터 시작된다. 나는 괴물이 되어 녀석들을 잡겠다고 뒤꽁무니를 쫓아간다.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잡히지 않으려 괴성을 지르면서 거실, 침실, 부엌, 서재 등으로 달아난다. 이때 녀석들의 손이나 발에 걸리는 물건들은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녀석들은 이부자리 속으로 숨는 것을 좋아한다. 눈만 가리고 있으면 내게 안 보인다는 것인지 몸은 그대로 놔두고 머리만 이부자리 속으로 파묻는다. 이 때 이부자리는 와르르 방바닥으로 무너진다. 그런데 그것이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는다.
괴물놀이로 조금 지치면 녀석들의 다음 놀이순서는 집안 물건들에 대한 점검 내지는 탐사 활동이다. 전에 왔을 때 있었던 것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혹시 그 사이 못 보던 새로운 물건이 생겨났는지 등을 직접 만져보며 확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아노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러시아 마트로시카 인형이 하나둘 뱃속에 품고 있던 조그만 인형을 뱉어내더니 결국 10개가 다 바닥에 나딩군다. 책장에 놓여있던 끈이 달린 쌍안경은 녀석들 둘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방바닥에 내팽개진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앉아서 자장가를 연주하던 오르골도 굴러가면서 연주하는 묘기를 보여주게 된다. 레고로 만들어진 공룡 모형은 형체가 없어지면서 원형인 레고조각으로 되돌아간다.
그 다음에는 계단에서 공 던지고 받기 놀이이다. 집에 있는 10여 개의 테니스공과 두 개의 아이들 용 축구공을 찾아내서 들고 온다. 그리고 녀석들이 계단 위에서 공을 굴리면 아래서 내가 받고 이것을 다시 위로 던져서 녀석들이 받고 다시 굴리기를 되풀이하는 놀이다. 공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퉁퉁 튀는 모양새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느라고 정신이 없다. 공놀이도 뉘가 나면 녀석들은 소파에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앉아있던 파랑이, 노랑이, 빨강이, 고양이 인형을 가져와서 이것도 계단에서 굴려 버린다. 그런데 인형은 공과 달라서 구르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 계단에 앉거나 누워버린다. 이런 모습까지도 재미있다고 깔깔대고 웃는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물건을 던지고 굴리는 것 자체가 녀석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가만히 있는 물건에게 잠깐 그 자리를 떠나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높은 곳에서 이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하는 물건들은 속으로 “제발 애들아 우리도 어떻게 좀 움직여 줘”할 것이 틀림없다.
녀석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안의 온갖 물건들이 정신을 잃고 뒤죽박죽이 된다.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퍼지면서 우리 둘만 지내던 조용한 집에 사람이 살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아이들이 있어야 사람 사는 것 같다.”라는 옛말이 틀림없다.
어떻든 녀석들은 뭐가 그리 재미가 있는지 놀고 또 놀고, 웃고 또 웃는다. 녀석들이 하도 웃으니 나도 웃는다. 녀석들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신통한 것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은 전혀 손을 데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서리 진 책들의 모양새가 별로 손대고 싶지 않아서일까. 하여간 책은 항상 그대로여서 다시 정리할 필요가 없다.
한참 놀다 보니 배가 고파졌는지 녀석들이 만두를 달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매운 김치만두밖에 없다. 그래서 집에 있는 만두는 매워서 너희가 먹기 어렵고, 맵지 않은 만두는 가게에서 사 와야 한다고 했다. 만두는 나중에 먹고 지금은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어떻겠냐고 언질을 주었다. 그렇지만 녀석들 생각은 전혀 달랐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지금 사와”라고 하지 않는가! 녀석들에게는 “나중에”라는 것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라 참을성이 없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들에게는 “지금 바로”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나중에"라는 말은 녀석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인 셈이다. 시간 공간의 개념, 어떤 사물이나 움직임에 대한 언어적 표현 등은 그들이 알 수 없다. 그것들은 모두 어른들이 만든 인위적인 개념이므로 아이들을 옭아맬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녀석들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개념이나 안과 밖이라는 공간의 개념, 도덕 윤리 등의 사회적 개념 등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이 과연 “나중에”에 이르러 이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항상 지금의 재미가 중요하지 기억하기 어려운 과거의 약속이나 무슨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미래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녀석들과 함께 지내려면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지 않으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아니 차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눈앞에 벌어지는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다 새로운 발견이고 새로운 놀이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고정관념 내지는 상식이나 형식에 갇혀버린다. 이런 고정관념이 없이 현재의 지금 이대로를 보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매우 행복하고 재미있는 것이다.
야단법석을 떨던 녀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나는 바로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서있을 수 있도록 되돌려 놓는다. 이불을 개서 정리하고 마트로시카 인형 10개를 다 찾아내서안에 넣은 다음 피아노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사방에 흩어져있는 레고들을 모아서 상자에 넣는다. 계단에 던져진 인형 들은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않힌다. 이렇게 물건들을 전에 있던 대로 정돈을 해 둬야 녀석들이 다음에 왔을 때 또 마음껏 흩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오늘의 즐거움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